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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T' 뒷면까지 빼곡히 적혀있는 메시지들. 버지니아텍 상징 색깔인 주황색과 마룬색 풍선이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을 위로하는 듯하다.
ⓒ 김규영

버지니아 공대 잔디밭에 희생자들의 추모석이 놓여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필자를 이 사건에서 해방시켜 줄 소식이 들렸다.

32명의 희생자들의 추모석과 함께 이 사건의 용의자 조승희의 추모석도 함께 놓여 있고, 그 추모석도 역시 다른 희생자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꽃들로 덮였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서 며칠 동안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것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오마이뉴스>에 이번 사건에 대한 글을 쓰고 한국 방송국에서 요청한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이번 사건이 왜 일어났을까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사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생긴 명치 끝 응어리가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미국에 살고 있는 1.5세들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조승희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조승희의 모습에서 필자가 만났던 1.5세의 아픔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1.5세의 어려움을 결부시키려는 마음이 생겼다.

어떤 경우에도 무고한 목숨을 살해한 범죄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지만, 조승희가 그렇게 하기까지 겪었을 힘들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도 역시 우리가 안타까워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승희의 추모석에는 바바라라는 학생이 쓴 추모의 글이 적혀 있었는데, 그 글이 필자의 마음을 대변해줬다. 특히 누구보다도 가장 힘들어 할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살해한 살인자인 조승희의 추모석을 희생자들의 추모석과 나란히 세워놓고 그의 죽음도 함께 애도하며 그의 가족들의 치유를 바라는 바바라의 모습에서,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바바라는 조승희를 살인범으로 보기에 앞서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던 급우로 여기고 그를 돕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또 이번 사건에서 다친 가레트 학생이 CBS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서 조승희는 결코 외롭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총알이 다리에 박혀 있는데도 그는 조승희를 용서해야 하고 자신은 조승희를 용서한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가레트는 조승희에 대해 악한 감정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를 만났더라면, 그래서 그에게 다가갈 기회가 있었더라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만약 누군가 그에게 다가갔다면 이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치유를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는 용서하는 것이고 조승희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누구도 감히 하지 못하는 말을 이 사건의 희생자인 가레트가 한 것이다. 어쩌면 가레트의 말대로 조승희가 생전에 가레트 같은 친구들을 만났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승희가 생전에는 친구도 없는 외톨이였지만 죽어서는 가레트나 바바라 같은 친구가 있기에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 동안 나를 짓눌렀던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버지니아공대도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다친 가레트의 말처럼 이번 일을 치유하는 것은 조승희의 안타까움을 이해하고 그의 '범죄행위'가 아닌 '그'를 용서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바바라와 가레트에 관한 기사를 접하면서 미국이 아닌 미국 교육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인데도 이런 성숙한 태도와 가치관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버지니아공대 학생들이 하늘로 띄워보낸 33개의 풍선처럼 이제는 훨훨 날려보내고 일상의 생활에서 희생자들의 몫까지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태그:#버지니아텍, #친구, #희생자, #조승희,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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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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