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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와 상추
열무와 상추 ⓒ 정현순
"같이 갈 거야?"
"지금?"

22일 일요일, 난 모자까지 쓰고 남편을 따라 나섰다. 3주 전부터 땅을 고르고 주말농장을 다시 시작한 남편이 무슨 할 일이 있다고 한다. 난 "그럼 상추 좀 뜯어 올까?" 했더니 남편은 "상추 심은 지가 얼마 안 되어서 뜯을 것이 없어. 그렇게 빨리 먹을 수 있으면 좋게"한다. 그래도 다시 시작한 주말농장이 궁금했다. 주말농장에 도착했다. 상추는 아직 얼마 안 된 아주 어린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열무라고 했다.

정성스럽게 상추 돌보기
정성스럽게 상추 돌보기 ⓒ 정현순

검은 비닐을 입은 상추밭
검은 비닐을 입은 상추밭 ⓒ 정현순
그날 할 일은 상추를 검은 비닐로 덮어 주는 것이었다. "얘네들도 따뜻하게 해주어야 맛있는 상추를 빨리 먹을 수 있어" 한다. 2년 전 주말농장을 했을 때는 다 익으면 가서 고추, 옥수수, 가지 등을 따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닐 덮는 것을 같이 했다. 비닐을 덮고 비닐이 날아가지 못하게 돌이나 흙으로 비닐을 덮어 주어야 했다. 난생 처음 농사짓는 흙을 만져보게 된 것이다. 옆에서 보조하는 것이지만 정말 힘들었다.

평소 거리를 거닐다 보면 발부리에 부딪쳐 쓸데없는 돌이라 생각했는데 농사지을 때는 돌도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상추 위에 검은 비닐을 덮고 상추가 있는 곳을 찾아 얼굴을 내밀게 하고 있었다. 행여 상추에 상처라도 낼까봐 아주 조심스럽게 한다. 나도 하고 싶어서 "내가 한번 해볼게"했더니 남편은 "안돼, 자기는 덜렁거려서 상추가 다쳐. 집에서 화초에 정성 쏟는 것처럼 밭에도 정성을 쏟아야 해"한다. 그 말이 맞지 싶었다. 난 그 사이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열무밭에서 만난 새싹들
열무밭에서 만난 새싹들 ⓒ 정현순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의 모습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의 모습 ⓒ 정현순
초록의 작은 열무가 삐죽이 나온 곳을 찬찬히 보았다. 나오려고 땅위를 노크하는 작은 새싹들이 눈에 띄었다. 신기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몇 장이나 찍었는지. 한동안 거기에 정신을 빼앗겼다. 또 다시 허리를 구부려 주변을 샅샅이 보았다. 깊은 땅을 뚫고, 딱딱한 돌덩이를 뚫고 올라오는 새싹들이 보였다. 생명이 움트는 모습들이었다. 실오라기 같이 가느다랗고 좁쌀만큼 작은 새싹들이었다. '쑥쑥' 땅을 뚫고 돌 사이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고추, 고구마 등을 심을 밭
고추, 고구마 등을 심을 밭 ⓒ 정현순
얼마 만에 허리를 펴고 일어나니깐 남편 혼자 다른 밭에 비닐을 치는 것이 보였다. 아마 내가 그것들에게 정신을 빼앗긴 것을 본 남편이 일부러 부르지 않은 것 같았다.

"왜, 안 부르고 혼자 해"
"구경 다 했어?"

그곳엔 고구마, 고추, 가지 등을 심을 거란다.

"이렇게 비닐을 치고 구멍을 내서 심어야 하는 건데. 상추는 그냥 심어서 비닐을 나중에 쳐 준 거야"하면서 설명을 해준다.

"비닐을 치면 풀이 안 자라서 좋은 건가?"
"그런 점도 있고."

적은 양의 농사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힘든데 대량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주말농장에 검은 비닐을 입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칼국수를 먹었다. 몸을 움직여 일을 해서인가 칼국수 맛이 끝내줬다. 다음 주에는 상추와 열무가 얼마나 자라 있을까?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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