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에는 읍성이 두 개가 있다. 모양성이라 불리는 고창읍성과 무장읍성이 그것인데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이나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성들이다.
하지만 이들 고창의 읍성들은 성곽과 성내의 건물 등 거의 전부를 복원하다시피 하는 여타의 성들에 비해 성곽이나 건물의 보존이 잘 되어있어 고풍스런 느낌이 한층 더 드는 곳이다.
흔히 읍성(邑城)이라 하면 고려 말에서부터 조선 초, 중기에 이르기까지 왜구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해변가의 큰 마을에 설치한 평지성을 말하는데, 고창읍성과 무장읍성 역시 조선시대 초기에 이러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성곽의 보존이 잘 되어있고 바깥의 철쭉 군락이 고성의 멋을 더한다. 아랫쪽으로 어렴풋이 고창읍내가 내려다 보이는데 평지성과 산성의 특징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성곽 주변으로 심어진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성의 오른쪽, 즉 소나무 숲 쪽이 성의 내부인데 정월 대보름 날에 부녀자들의 답성놀이로 유명하다.
이 성곽은 구역을 정해 주변 마을에서 책임을 지고 철저하게 관리되어 온 곳이다. 틈틈이 끼어넣은 작은 돌들이 엊그제 그랬던 것처럼 빽빽히 꽂혀있다. 구멍난 두 개의 긴 돌은 아마도 이 성을 축조할 당시에 주변에서 이미 폐사된 절집의 당간지주를 옮겨와서 쌓은 듯하다.
고창에서 서쪽으로 약 20여km를 더 가면 무장면이 나오고 면소재지에 위치한 무장읍성이 나온다. 성의 규모는 고창읍성보다는 다소 작은데 성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객사 건물은 다른 여느 읍성과는 달리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높이가 전부 제 각각인 진무루의 기둥들. 울퉁불퉁한 바닥을 그대로 두고 길고 짧은 주춧돌을 깐 다음 그 위에다 자연스럽게 기둥을 세웠다. 요즘의 방식대로 한다면 많은 양의 시멘트를 부어 바닥을 평평하게 하고 난 다음에 동일한 높이의 기둥을 세웠을 테지만, 이와는 반대로 바닥의 형태를 그대로 두고 기둥의 길이만 들쭉 날쭉하게 하여 재미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중앙 정부에서 내려오는 손님을 맞이하던 객사 건물. 보존 상태가 좋고 전주객사와 그 모양이 흡사하다. 중앙에 맞배집으로 본 건물을 짓고 좌우 양측으로 날개를 달듯이 약간 작고 낮은 규모의 팔작집을 지어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좋고 좌우의 대칭이 잘되어 있다.
난간이나 마루판 등 많은 곳에 보수의 흔적이 보이고 간혹 오랜 세월의 숨결을 엿볼 수 있는 부재들을 볼 때면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그들의 조선 문화 말살정책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잘 버텨온 것 같아 참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옹이가 빠져 나온 부분으로 어른 주먹이 들락거릴 정도로 깊게 패어있다. 이 객사는 본래 선조 14년(1581)에 건립된 것인데 아마도 이 기둥을 비롯하여 나무 주름살이 깊이 패인 부재들은 그 당시의 것, 그대로 일 것이다.
무장읍성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얼마를 가다보면 20만평 규모의 넓은 보리밭이 있고 이곳에서 해마다 청보리밭 축제를 하고 있다. 보리를 베고 난 초여름 이후에는 이 자리에다 메밀을 심어 가을에는 메밀꽃으로도 유명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