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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를 털고 일어 난 '순희 엄마'의 최근 모습
병마를 털고 일어 난 '순희 엄마'의 최근 모습 ⓒ 오창경
"일거리 있으면 나도 불러. 이제 일 해도 된대."

어눌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2년 전(2005년 8월) '순희 엄마, 힘내세요!'라는 기사로 소개했던 우리 동네 김영자(51) 여사입니다.

"정말이야? 의사 선생님이 확실히 그렇게 말했어? 정말 아픈 데 없어?"

우리 윗집에 사는 순희 엄마에게 병마가 찾아 온 것은 2년 전이었습니다. 단순한 감기 몸살인줄 알았는데 '백혈병'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이 내려지고, 순희 엄마는 무균실에서 투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쇄골 아래 구멍을 뚫어 주사약을 넣고, 핏기 없는 얼굴로 투명 비닐커튼 안쪽에 갇혀 투병하던 순희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2년 만에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해 돌아온 것입니다.

순희 엄마는 청각 장애가 있는 장애인입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몸짓과 어눌한 발음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그녀에게 불치에 가까운 병마까지 찾아온 현실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장애인으로서 백혈병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병마라고 여겼습니다.

일반인들에게 '백혈병'이라는 병은, 멜로드라마에서 많이 본 탓인지 걸리면 반드시 죽는 병으로 인식되어 있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때문에 순희 엄마의 생환은 달리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온 '순희 엄마'

20여년 전 여고 시절에 읽었던 로맨스 소설이 생각납니다. 삼각관계로 고민하던 여주인공이 어느 날 불치병에 걸리고 그로 인해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얻지만, 결국 우아(?)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그 여자의 병 이름도 백혈병이었습니다.

감성이 고조되고 심성이 여린 사춘기에 누구나 한 번쯤 백혈병에 걸려 주변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죽고 싶다는 상상을 했을 것입니다. 작가들이 대체로 드라마나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 백혈병이라는 소재를 자주 차용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백혈병이 다른 병에 비해 환자의 상태가 깨끗하고, 골수가 죽어 핏기가 없는 모습으로 비춰져 동정심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0여년 전에는 백혈병이 치료 방법이 없어 걸리면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불치병이었지만 오늘날의 현대 의학은 '골수 이식'이라는 치료법을 찾아냈습니다. 면역력을 잃고 암세포에 의해 죽어가는 골수 대신 새 골수를 이식시키는 방법입니다. 백혈병 환자의 골수와 건강한 기증자의 골수가 거부 반응 없이 잘 맞기만 하면 백혈병은 완치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어릴 적 미국에 입양되었던 한국의 입양아가 청년이 되어 백혈병에 걸렸고 고국에서 그에게 맞는 골수 기증자를 찾아서 완쾌되었다는 미담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지요.

무균실에서 투병하던 '순희 엄마'
무균실에서 투병하던 '순희 엄마' ⓒ 오창경
바로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우리 동네 순희 엄마에게도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병명이 백혈명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우리 동네에서는 누구도 그녀가 골수 이식을 통해 살아 돌아오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비닐 커튼이 내려진 무균 병동에서 수척한 얼굴에 항암 치료로 민머리가 된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그녀의 회복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항암 치료가 끝난 어느 날 동네에 나타난 그녀의 몰골은 먹물에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피부마저 검붉게 변해버려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인 게 사실이었습니다.

거기에 면역력이 약해져 항상 모자와 마스크를 써야했던 그녀의 모습은 도저히 인간의 형상으로는 봐줄 수는 없었습니다. 환자의 골수에 맞는 기증자는 가까운 혈연관계에서 부터 찾기 마련입니다. 다행히 순희 엄마의 골수와 순희 엄마 남동생의 골수가 잘 맞아서 기증자를 찾느라 투병 기간이 길어지는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순희 엄마가 남동생에게서 골수 이식을 받고 남동생의 건강한 골수가 순희 엄마의 골수에 자리를 잡는 기간 동안은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만큼 참담했습니다. 목숨 줄이 이어지느냐 끊기느냐 기로에 선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의 심정 또한 타들어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골수 이식을 하고 퇴원을 한 순희 엄마는 집에서 두문불출 투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혹시 있을 감염을 우려해 이미 집안을 소독하고 동네 사람들의 왕래도 피했던 그녀가 이렇게 화창하게 꽃 피는 봄날 다시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일거리 있으면 나 좀 불러 줘. 심심해 죽겠어. 이제 병원에는 한 달에 한 번만 가면 돼."

청각 장애 때문에 가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대신 눈치가 빠르고 손끝이 깔끔하고 음식 솜씨가 있어 근동의 스카우트 대상 1순위였던 그녀였습니다. 마음씨 또한 넉넉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이웃들까지 꼭 챙길 만큼 바지런했던 그녀였는데 투병 생활 동안 얼마나 그런 일상들이 그리웠을까요?

우리 동네 순희 엄마, 김영자 여사는 백혈병이라는 병마와 싸워서 이기고 돌아왔습니다. 주변에서 '암'이라든가 하는 질병에 걸린 사람이 회복된 경우보다 마지막을 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순희 엄마의 생환은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난치병 치료에 있어 현대 의학을 불신했던 고정 관념이 순희 엄마를 통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제 백혈병은 '걸리면 다 죽는' 불치병이 아니라 체질에 맞는 골수만 있으면 살 수 있는 병이라고 인식을 바꾸고 희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순희 엄마의 건강이 궁금했던 분들, 순희 엄마의 새로 시작된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 전원주택라이프 5월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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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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