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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 3월 20일 오전 용산 한미연합사령부 앞에서 주한미군의 부동산 투자에 항의하며 불용액 8000억원 환수를 촉구하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 3월 20일 오전 용산 한미연합사령부 앞에서 주한미군의 부동산 투자에 항의하며 불용액 8000억원 환수를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주한 미군의 태도가 적반하장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제공한 방위비 분담금 가운데 약 8000억원을 은행에 예치해서 1000억원의 이자를 받았으면서도 주한미군은 또 다시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과거에는 "돈이 없어 주한미군 고용원을 줄일 수 밖에 없다"는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미군기지 재배치 계획을 재검토하겠다"라며 거의 협박하는 수준의 발언까지 나왔다.

"주한미군과 가족들 고통을 묵인할 수 없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24일(현지시각)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지난해 말 한미 양국은 2007~2008년도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맺었으며, '동등한 비용분담'이라는 목표에 이르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며 "미국은 동등한 분담이란 주한미군의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비(NPSC, non-personnel stationing costs)를 50 대 50으로 부담해야만 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운을 뗐다.

그는 "2006년의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NPSC의 38%에 불과하며 2007년은 7255억원(7억7000만달러)이지만 역시 41%에 불과하다"며 "방위비 분담금의 부족으로 자금에 제약을 받고 있다, 나는 전투준비 태세와 주한미군 및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이 고통을 겪는 것을 묵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벨 사령관은 "더 공평한 분담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는 미 행정부에 미군기지 재배치 및 통합 계획의 재검토를 포함해 일련의 재정적 조치를 건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 정부는 지난달 20일 미군 기지의 오산과 평택으로의 이전을 위한 시설종합계획(마스터플랜)에 합의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오는 2012년까지 기지 이전 관련 공사를 완료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벨 사령관의 발언은 이 계획을 다시 재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이는 한국 정부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오는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과 맞물려 있는 이 계획이 어긋나면 또 다시 큰 논란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자는 받았지만 소득세는 안 내... 세금 120억원 탈루

24일(현지 시각) 미 상원 청문회 서면 답변자료에서 "주한 미군 재배치 계획 재검토" 발언을 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24일(현지 시각) 미 상원 청문회 서면 답변자료에서 "주한 미군 재배치 계획 재검토" 발언을 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 연합뉴스 최재구
벨 사령관은 방위비 분담금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

<신동아> 5월호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방위비 분담금 가운데 약 8000억원 정도를 영내 은행인 '커뮤니티 뱅크'에 예치해놓고 있다.

이 '커뮤니티 뱅크'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서울 지점에 원화양도성예금증서로 돈을 재입금했다. BOA 서울지점은 이 자금에 대해 연간 4.3~4.5% 수준의 이자를 지급했다.

<신동아>는 "지난 2002년부터 BOA가 커뮤니티 은행에 지급한 이자는 1000억원 정도로 매년 9월말 정산해 미 국방부에 지급한다"며 "지난해에만 미 국방부에 들어간 돈이 300억원이었고, 이 돈은 한국과는 상관없는 다른 곳에 사용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주한미군과 관련된 곳에만 사용하게 되어있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명백하게 위배하는 것이다.

또한 <신동아>는 "더구나 BOA 서울 지점은 커뮤니티 뱅크에 이자를 지급하면서도 소득세를 원천징수하지 않았다"며 "그동안의 이자 1000억원의 12%인 120억원 정도를 탈루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커뮤니티 뱅크는 BOA의 군사부문금융이다. 커뮤니티 뱅크와 BOA는 법인상 별개이지만 일종의 계열사 관계인 것이다.

벨 사령관도 한국 정부도 거짓말쟁이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서 방위비 분담금이 미군 계좌에 쌓이게 된 것일까?

한미 양국 정부는 지난 2004년 9월 주한미군 기지를 오산과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서울에 있는 용산 미군기지는 한국이 먼저 이전을 요구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부담하고, 의정부와 동두천 등 한강 이북의 미 2사단 기지는 미국이 먼저 이전을 요구했기 때문에 미국이 부담한다고 했다.

원래 주한미군 기지의 이전은 2008년까지 완료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미 협의과정에서 진행이 늦어졌고, 지난 달 20일에야 기지 이전을 위한 시설종합계획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르면 2012년까지 공사를 완료하는데 총 10조원 비용 가운데 한국은 5조5905억원을 부담한다. 나머지는 미국 부담인데, 바로 이 돈을 주한 미군이 방위비 분담금에서 받아 사용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가 지난 2002년부터 미군 기지 이전용으로 미리 지급했던 방위비 분담금이 공사가 늦어지면서 쌓이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방위비분담금이 부족해 한국인 노동자를 해고해야 한다는 벨 사령관의 말도, 미 2사단 이전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도 모두 거짓이었다.

주한미군 숫자·방위 기여도 줄었는데, 분담금은 늘어

지난 2004년 12월 8일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위한 제2차 협상.
지난 2004년 12월 8일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위한 제2차 협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주한미군기지 이전 협상 초기부터 시민단체들은 "미 2사단 이전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 등으로 결국 한국 정부가 부담할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으나 정부는 "그런 일은 없다"고 부인해왔다.

그러나 벨 사령관이 지난 1월 18일 외신기자클럽 강연에서 "서울 북부의 미 2사단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돈의 절반은 방위비 분담금에서 나올 것"이라고 발언한 뒤에는 정부는 말을 바꿨다.

지난 2월 김규현 국방부 국제협력관은 <한겨레> 기사에서 "미군기지 이전 협상 처음부터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기지 건설을 위해 쓴다는 것을 전제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주한미군 숫자가 3만7000명에서 2만5000명 수준으로 줄어들고 동북아기동군으로 변하면서 한국 방위에 대한 기여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방위비 분담금이 줄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위비 분담금이 올해 7725억원으로 2006년보다 6.6% 늘어난 것은 미군기지 이전 사업에 쓰일 돈을 한국이 대주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가재정법에도 어긋난다.

국가재정법은 회계연도 독립원칙에 따라 예산의 이월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이월이 있을 경우 그 사유를 명시해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2005년도 방위비 분담금 차년 이월액은 980억원에 불과하다. 미군이 예치한 8000억 원 중 상당액은 국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불법 이월이다.

왜 미국은 협박에 나섰나

지난 2004년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을 위한 제2차 협상장에 놓여진 태극기와 성조기.
지난 2004년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을 위한 제2차 협상장에 놓여진 태극기와 성조기. ⓒ 오마이뉴스 권우성
벨 사령관이 24일 "미군 재배치 재검토"라는 폭탄성 발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05년 3월 10일 리언 라포트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 하원 세출위원회 증언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주한미군을 항구적인 시설로 이전하는데 80억 달러가 들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현재 분석에 따르면 ▲한국 정부 부담이 전체의 53%(42억4000만 달러) ▲민간 업자에 의한 임대건물 건설 투자금이 20%(16억 달러)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21%(16억8000만 달러) ▲미군 시설 예산 6%(4억8000만 달러) 등이다"

중요한 것은 미군 시설 예산의 부담은 6%에 불과하다고 말한 부분이다. 주한 미군은 몇년 전부터 미 의회에 기지 이전 사업에서 자신들의 부담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라포트 사령관이 추정했던 미군기지 이전 비용은 80억 달러였지만 현재는 100억 달러로 늘었다. 이제 와서 비용 충당에 차질에 생기니까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군기지 재배치를 포함한 일련의 재정적 조치를 건의할 수 밖에 없다"는 벨 사령관의 발언은 두 가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단은 방위비 분담금의 부족으로 기지 이전 사업이 모자라니 미 의회에서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들은 이같이 해석하지 않고 있다.

송민순 "투명하게 계산했다, 미국이 답할 차례"

무소속 최재천 의원은 "미국의 장기예산은 대단히 계획적이고 엄격하게 집행된다"며 "이미 의회에 보고해놓고 추가 예산을 요구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따라서 벨 사령관의 발언은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외교적 협상의 대상을 자신의 신분과 권한을 벗어나 이렇게까지 말한 것은 협박 수준의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방위비 분담금이 미군 기지 이전사업에 전용된다는 사실을 묵인해왔던 정부의 태도가 이런 사태를 불렀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유영재 미군문제팀장 역시 "이같은 발언은 '돈이 없이 미군기지 재배치를 하지 못하니 그 만큼 미군 숫자를 감축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며 "사실상 방위비 분담금을 강제하기 위한 협박"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25일 정례브리핑에서 벨 사령관의 발언과 관련 "현재 한미 방위비 분담 체계나 산정 방식에 대해서 투명하게 계산하고 책임성있게 집행하자고 미국에 제안해 놓은 상태"라며 "이제 미국이 답을 할 차례로, 불확실한 부분은 새로운 방식에 의해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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