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박예슬(마산제일여중 3) 학생.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박예슬(마산제일여중 3) 학생. ⓒ 김연옥
나는 얼마 전 뜻하지 않게 티셔츠 한 장을 얻었다. '소통과 화합을 위한 186 김주열 대장정' 행사 홍보용이라 티셔츠 앞면에는 그 행사를 알리는 글자가 검은색으로 쓰여져 있다. 지난 11일에 이미 행사가 끝난 데다 일상생활에서 입기에는 왠지 무거운 느낌이 들어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 반의 박예슬(마산제일여중 3) 학생이다. 그 학생은 밋밋한 흰 운동화나 가방 등에 아크릴 물감으로 예쁜 그림을 그려 넣는 남다른 재주가 있다.

친구의 밋밋한 흰색 운동화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친구의 밋밋한 흰색 운동화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었다. ⓒ 김연옥
그래서 내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달라고 제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 지역주의를 극복하여 한마음이 되자는 행사의 의미를 곱씹어 생각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학생의 깜찍한 솜씨 또한 두고두고 내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연하게 찾은 숨은 그림 솜씨

지난 21일 토요일 우리는 수업을 마치고 일단 중국집에 가서 허기진 배를 채운 뒤 다시 학교로 올라갔다. 박예슬 학생은 티셔츠를 넓게 펼쳐 놓고 천천히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미술학원 한번 다녀 본 적이 없어 자신에게도 그런 숨은 솜씨가 있다는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다.

친구의 흰색 가방에도 그림을 예쁘게 그려 넣어 산뜻함을 주었다.
친구의 흰색 가방에도 그림을 예쁘게 그려 넣어 산뜻함을 주었다. ⓒ 김연옥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새 운동화에다 인기 캐릭터인 스폰지밥을 심심풀이 삼아 그려 본 게 친구들의 시선을 끌게 되었고 예쁘다는 말도 계속 듣게 되자 자신감이 생겼다는 거다. 그 후 몇몇 친구들이 자연스레 부탁을 하여 흰색 운동화나 밋밋한 가방 등에 이따금 그림을 그려 주게 되었다.

박예슬 학생은 "물감을 풀 때 물 조절을 잘해야 색이 번지지 않아요, 그리고 서로 다른 색을 칠하거나 덧칠을 하는 경우 더욱 섬세함이 필요하다"며 하나하나 색칠하고 헤어 드라이기로 그때그때 말려 줘야 하기 때문에 보통 7시간 정도 걸리는 힘든 작업이라고 말한다.

"일단 스케치를 끝내고 나면 물감으로 색칠을 해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머릿속이 그저 텅 빈 느낌입니다. 헤어 드라이기로 자주 말리면서 오로지 색칠에만 집중한다"는 그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기도 하지만 친구들이 완성된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피로를 잊을 수 있다 한다.

네일 아티스트가 꿈인 예슬이

ⓒ 김연옥
나는 지금 중학교 선생이다. 오랜만에 담임도 맡았다. 우리 반 학생은 모두 36명. 그들과 밥 한 끼 같이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끼리 둘 또는 셋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내 나름대로 '즐거운 식탁'이라 이름을 붙여 보았다.

그 '즐거운 식탁'의 첫 손님이 박예슬 학생이었다. 만약 그런 자리가 없었다면 어쩌면 그 아이의 숨은 그림 솜씨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지 모른다. 사람들을 예쁘게 꾸며 주는 일이 즐겁다는 그녀의 꿈은 네일 아티스트다. 손톱이란 좁은 공간에 매니큐어로 예쁜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을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고 한다.

드디어 티셔츠 그림이 완성되었다!
드디어 티셔츠 그림이 완성되었다! ⓒ 김연옥
드디어 티셔츠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시간이 오래 걸려 곁에서 그림 작업을 그저 지켜 본 나도 힘들었는지 그 순간 기쁘기 그지없었다. 박예슬 학생은 이제 병뚜껑으로 손전화 고리를 만드는 작업도 할 생각이라고 내게 귀띔해 주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