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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밤 당선이 유력한 김홍업 후보가 지지자들로부터 받은 축하 꽃다발을 목에 걸고 이낙연 의원,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전병헌 의원 등과 함께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 차광석

"아들이 계속 출마를 고집하고 당선까지 된다면 호남은 김대중 일가를 버릴 수밖에 없다. 홍업씨가 당선된다면 개인과 가족의 일시적 즐거움은 될지언정 지역민과 한국인의 사랑과 존경을 영원히 포기해야 할 것이다. (21일 광주전남 59개 시민·사회단체 성명)"

"솔직하게 김홍업이는 DJ 아들이라고 나온 것 아니여? 우리보고 대를 이어서 충성하라는 거여, 뭐여? 인자 바꿔야제. (이재구·57·무압읍)"


"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던 김홍업 후보가 호남 민심을 분열시켰다. 비난 속에 결국 당선은 됐지만, 그를 비난하고도 지지했던 지역민들은 "호남인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날"(<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주전자' 댓글) 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에 대한 애증으로 김홍업 후보를 당선시켰지만 무안·신안 주민들은 긴 한숨이 절로 난다.

"세습정치 반대"와 "미워도 다시 한번"... 갈라진 민심

선거기간 동안 DJ 일가를 향한 비난은 "지역주의에 기댄 세습정치"로 모아졌다.

지난 14일 무안읍 장터에서 이재구씨는 "솔직하게 김홍업이는 DJ 아들이라고 나온 것 아니여? 우리보고 대를 이어서 충성하라는 거여, 뭐여?"라며 "DJ가 출마를 막았어야지"라며 역정을 냈다.

광주전남지역 59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1일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걸어왔던 민주화의 길은 인정하지만 세습되는 구태정치는 과감히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촉구했다.

▲ 24일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김홍업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 "DJ의 마지막 정치적 명예를 훼손하고 전국적으로 망신주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며 "고향에서 명예를 지키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그도 그럴 것이 호남에서 DJ 일가의 '지역구 물려받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DJ는 자신의 지역구인 목포를 '가신'으로 불리던 권노갑 전 고문에게 물려줬고, 권 전 고문은 다시 DJ의 큰아들인 김홍일씨에게 물려줬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DJ를 의식해 의정활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좋지 못한 김홍일씨에게 전국구를 선사했다. 김홍일씨는 비리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여기에 한화갑 전 대표의 지역구였던 무안·신안을 홍업씨에게 물려주려 했다. 이 시도는 결국 성공하게 됐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 비난 여론보다 우세한 탓이다. 25일 무안읍에서 만난 김용한(69)씨는 "DJ를 모욕하면 안 되제, DJ 죽이겠다고 했던 박정희 딸 박근혜는 의원도 하고 대통령 하것다는데, 왜 홍업이는 안 된다고 해?"라며 "홍업이가 당선되면 욕들도 많이 하것지만 DJ 생각하믄 그럴 수 없제"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DJ의 마지막 정치적 명예를 훼손하고 전국적으로 망신주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며 "고향에서 명예를 지키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지역정서를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절반에 그친 지지율... "김홍업은 사실상 졌다"

30여년 넘는 세월, DJ와 정치적 동지였던 무안·신안은 고심 끝에 김홍업에게 절반의 지지를 보냈다.

김홍업 민주당 후보는 49.7% 지지에 그쳤다. 남은 절반은 무안군수를 지낸 이재현 무소속 후보(30.33%)와 강성만 한나라당 후보에 돌아갔다. 특히 한나라당 후보는 두자릿수(11.87%) 지지를 얻어 선전했다. 이는 DJ에 대한 지지가 이전만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사실상 진 것"이라고 머쓱해 했다. 정찬영 조선대 교수는 "DJ 후광을 입은 아들이 고향에서 얻은 지지율로는 형편없는 수준"이라며 "도무지 기뻐할 수도 없고 이해도 안 되고 허탈하다, 호남 민심이 딱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25일 저녁 무안읍에서 만난 김아무개(56)씨는 "김홍업 당선되면 비난할 것이 뻔하지라, 쬠 심난하요"라며 "지금까지 무턱대고 DJ 지지해준 것은 아니었는디 이번에 이겨버리면 호남이 'DJ의 막대기'라고 하고 걱정되지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의 재보선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도 아이디 '빅뱅'의 네티즌은 "호남인들에게 천추의 한을 또다시 심어준 민주당과 김대중"이라며 "대통령 아들 '끗발'을 이용해서 수십억원 뇌물을 받은 전과자가 어찌 정치의식이 높은 호남에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김홍업측 한 관계자는 "반대여론이 있다는 것은 호남이 자존심을 세워 준 것"이라며 "선거 결과도 고심의 일단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DJ의 호남 영향력, 유지할 수 있을까

▲ 24일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장터에서 무안·신안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유세를 무심히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3일째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장터를 찾아 유권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기호 3번 김홍업 후보를 부탁한다"며 김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유세를 마친 이 여사는 휠체어를 타고 자가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지원 실장과 김 후보가 배웅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DJ의 여전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하게 됐다는 평가도 있다. 김홍업씨 당선을 두고도 "호남에 치욕적인 일"이라는 평가와 "대통합의 길로 가라는 민심의 확인"이라며 옹호하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는 김홍업씨가 통합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정찬영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DJ의 영향력을 재확인하기도 했지만, DJ 일가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면서 "김홍업씨가 상처입은 호남민심에 어떤 약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때, 김재석 광주경실련 사무처장은 "당선 여부를 떠나서 호남에 대한 DJ의 정치 영향력은 현저하게 낮아질 것"이라며 "'통합신당'이란 민심을 통합해 가는 것인데, DJ와 김홍업씨가 과연 그랬느냐"고 했다.

그는 "김홍업씨가 당선되면 당장 통합이라도 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의한 상징성'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잘라말했다.

반면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김홍업의 당선으로 통합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실질적인 역할에는 제한이 될 것이고 신중하게 처신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DJ 아들 아닌 정치인' 김홍업의 첫 행선지는 동교동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 김홍업 당선자의 표정은 환하지 않았다. 지지자들의 환호성과는 반대로 그의 당선 세리모니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DJ의 후광과 멍에'에 대한 질문에 "DJ의 아들이 아닌 정치인 김홍업으로 봐달라"고 당부하고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안 신안 주민들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약속했던 김홍업씨의 '신중한 처신'은 동교동 행으로 나타났다. "DJ의 아들이 아닌 김홍업"이라던 김씨가 당선자 신분으로 처음 찾은 곳은 '민주당' 중앙당사이고, 후광을 비춰준 아버지의 집 '동교동'.

상처입은 호남 민심에 머리를 조아리기 전에 민주당과 동교동을 먼저 찾아 '만세'를 부르고 '감사'의 절을 올리는 행동는 '후광을 업은 자'의 오만으로 비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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