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절차탁마 대기만성> 중 성서 관련 글인 '독서법과 판본학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의 새로운 이해', <요한복음 강해>와 <기독교성서의 이해>는 학문적 정치성이 돋보이는 부분과 억측과 단순화, 선정주의적이고 즉흥적인 담론이 뒤섞여 있다. 도올의 주장 가운데 일부는 치열하고 견실하지만, 일부에는 학자적 객관성이 사라진 객기와 흥분이 앞선다."
도올 김용옥(세명대 석좌) 교수의 <요한복음 강해>가 한국교회 안팎에서 열광적인 호응과 기독교계 일각의 마녀사냥식 대처를 불러온 가운데, 김회권(숭실대 기독교학) 교수가 '차분하고 학문적인 숙고가 담긴 반론'을 펼쳤다.
김 교수는 4월 24일 숭실대 인문과학연구원 주최로 열린 제1회 숭실인문학포럼에서 '회권, 도올을 깨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350여 명의 청중이 참석해, 대표적인 복음주의 진영 성서학자가 도올의 성서 이해를 치밀하게 비평하는 강연을 경청했다.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도올의 <절차탁마 대기만성>, <요한복음 강해>와 <요한복음 강해>의 서론 격인 <기독교성서의 이해>를 두 번 정독했다는 김회권 교수는, 두 권의 핵심 주제로 △신약과 구약의 급진적인 단절 △신구약 단절의 표본인 요한복음의 영지주의 △경전절대주의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기독교 정경화 과정에 대한 쟁변(爭辯)을 꼽았다.
김 교수는 세 주제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기에 앞서 도올의 학문적인 문제의식, 두 권의 책에서 도올이 제기하는 새로운 도전과 깨달음, 정당한 토론거리를 풀어놓았다.
도올의 학문 정신은 경전절대주의에 대한 도전
이 두 권을 비롯해 도올의 사상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정신은 '경전절대주의에 대한 반발'. 김 교수는 도올이 성경의 권위를 부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성경을 경직되고 폐쇄적인 태도로 우리 시대에 적용하는 교조주의적 태도와 싸우고 있다는 말했다.
이러한 도올의 학문적 태도는 20년 전인 1987년 펴낸 <절차탁마 대기만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도올이 경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경전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치밀하게 연구하는 공세적 자세를 취한 점을 김 교수는 높게 평가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최근에 나온 두 권의 책은 도올의 경전절대주의 해방 프로젝트의 기독교 버전인 셈이다.
김 교수는 도올이 신약성경 27권이 낱권으로 있다가 성경으로 묶이는 정경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은 세부적인 내용은 논쟁의 여지가 있음에도 전체적으로는 정교하고 역동적이어서 어떤 교회사가보다 탁월하게 전개했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도올이 복음서의 역사성 문제를 괄호 안에 묶고 네 권의 복음서를 비교 분석하는 설명도 돋보인다고 긍정했다.
무엇보다 동양적이고 한국사적 지평과 성서적 지평을 병렬하는 이해, 초대 교회에서 복음서를 낭독한 예배와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유비하는 해안, 잃어버린 한자어와 한자어체 우리말(가령 한우충동, 단장취의, 비정, 힐구, 논구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신학을 펼치는 능력은 도올이기에 가능하다고 높이 샀다.
아울러 김 교수는 도올은 마음으로는 전통에 머물기를 원하나, 전통주의의 제방을 쉼 없이 범람하며 논술하는 규범 너머의 자유를 그리워하는 불꽃같은 인문학적 열정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도올이 내린 판단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의 지성적인 허기와 새로운 시야를 인정해야 하며, 그의 주장들도 파괴적인 방향으로 일주하지 않도록 성실한 반향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도올의 장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김 교수의 견해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는 도올이 학자로서의 성실성과 진지함을 상실했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소박하고 단선적인 구약 이해
우선 도올의 구약 이해는 매우 소박하고 단선적이며, 어떤 경우에는 사실 인식의 무지와 오류를 드러낸다는 점. 김 교수는 도올이 폐기되어야 할 구약 율법을 지칭할 때마다 그것이 단지 신약에 와서 발전적으로 해체된 제례법만이 가리키는 게 아니라 구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이 구원사를 통틀어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개돼지처럼 한 텐트 안에서 근친끼리 음욕을 충족시키고 금송아지나 만들어 광란의 춤이나 추고 있었던 유대인들을 질서 있게 데려다 정착시키기 위한 방편은 오직 율법밖에 없었다. 인간을 구속하는 온갖 타부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하나의 법칙이었다. 야훼라는 유일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 그것이 강요되는 원리의 세계였다. 원래는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한 방편이었던 것이 절대화되고 조례화되어 그 의미나 전체적 도덕 원리는 무시되었다. 율법을 통해 생명을 부여하려는 하나님의 의지는 사라지고 단지 율법이라는 세부조항의 형식적 권위만이 살아남은 것이었다. 예수가 본 유대인의 현실 중에서 가장 절박한 것은 메시아의 도래나 천국의 도래가 아니고 어떻게 율법에 얽매여 사는 인간을 해방시키느냐 하는 과제상황이었던 것이다."(<기독교성서 이해> 231~232쪽)
"제발 기독인들이여! 성경 헛 읽지 말라! 성경 그 자체에 유대인과 야훼의 잔악함이 다 그대로 쓰여 있다. 이것이 율법이다! 과연 일요일 일 좀 했다고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할까? 이것이 위대한 종교의 모습인가? … 과연 일요일 여호와 하나님께 돌로 쳐 죽임을 당하지 않을 자가 대한민국 기독교인 중에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 <기독교성서 이해> 235쪽)
이 외에도 도올이 구약과 율법, 구약의 하나님을 비판하는 주장은 두 권의 책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도올의 주장이 안식일 계명이 국가보안법처럼 중대하게 간주되었을 당시의 상황을 방영하는 구절(느 13장)들을 교조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희화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서 본문을 역사적 지평 위에서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억측이 나온다는 것이다.
오히려 구약의 율법 제정은 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깊은 배려와 융통적인 적용 감각 이래서 이뤄졌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민수기 27장과 36장에 나오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버지의 땅을 상속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딸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하지 못한 당시 풍토에 맞서 슬로브핫의 딸들을 비롯해 므낫세 지파가 모세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계명을 달라고 시위하자, 모세는 딸에게도 땅을 상속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판례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구약 율법 중 어떤 것은 백성들의 실제 상황과 요구를 충분히 고려하여 제정되었다고 말하며, 대개의 경우 구약 율법은 죽음을 대가로 지불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절대법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잔인한 구약의 신? 반론도 수두룩하다
도올은 구약의 하나님을 잔인한 신이라고 말하자만, 김 교수는 구약에서도 얼마든지 정 반대의 모습이 숱하게 나온다고 반박한다. 이사야, 예레미아 등 구약 예언자들이나 시편과 모세 오경 등을 읽어보면,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에 상처 입고 인간의 폭력 사정권에서 박해 받는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도올은 히브리 성경 자체가 유대교(예루살렘) 중심으로 편찬된 편견으로 가득 찬 문헌이라고 규정하고 구약 역사가 이스라엘의 추악한 배교 역사라고 단정하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이러한 점이 구약 성서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스라엘 민족만이 자기의 배타성과 추악한 자기중심성을 기록물로 남겼다는 것이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야수적 정직성과 고백이 있을 뿐 자기의를 자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위대한 승리, 이스라엘과 인류의 죄와 불순종, 패역과 타락을 초극한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의 승리(치드코트 아도나이)를 노래한다. 구약은 메시아를 앙망하고 기다린 이스라엘 민족의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이나 초인적인 성실, 신실한 의리지킴을 현양하지 않는다. 도올의 구약에 대한 편견은 아마도 폭력과 억압을 동반한 율법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김 교수는 "변덕스럽게 폭발하는 화염 같이 진노하시는 야훼에 대한 혐오어린 도올의 반감은 토론이 필요한 분야임에 틀림없다"며, 도올과 같은 구약의 하나님 이해에 대한 기독교 내부의 진지한 논의를 제안했다.
또 도올은 요한복음을 구약과의 연속선상에서 보는 게 아니라 당시 헬레니즘 사상의 공기와도 같은 영지주의 조류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김 교수는 이 주장 역시 한편으로 치우쳤다고 지적했다.
가령 요한복음 15장 1~17절에 나오는 예수는 참포도나무이며 그를 믿는 사람은 가지라는 포도나무 비유. 도올은 만대아교, 지중해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생명나무 신화, 중동과 동방 문명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유기체 사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예수는 자신이 들포도나무인 이스라엘과 다른 참포도나무임을 강조한 것이라며, 도올이 신구약의 단절이라는 교조적인 경직성을 벗는다면 (예수의 비유와 관련 있는) 이사야 5장과 예레미아 2장을 금방 떠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요한복음 10장 등에 나오는 "나는 선한 목자"라는 예수의 말씀도 에스겔 34장에 나오는 거짓 목자와 비교 속에서 읽어야 제대로 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요한복음이 이런 식으로 구약과 대화하고 있는데, 불행히도 도올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시온에 연민을 느낀 나머지..."
도올이 신구약의 철저한 단절을 논한 근거는 복음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강조였다. 김회권 교수에 따르면, 마르시온은 복음의 자유와 해방을 율법의 틀 안에서 심화시키기보다는 헬레니즘의 영지주의 안에서 구체화하려고 하려가 신구약의 급진적 단절을 초래하였다.
도올이 옹호하고 김회권 교수가 비판하는 영지주의적 중심 사항은 신과 인간의 본성을 연속적인 흐름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신이라는 불꽃의 파편을 지닌 존재다. 그래서 신과 인간은 본원적으로 소통이 가능하다”라는 영지주의 주장을 도올은 긍정적으로 보고, 김회권 교수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마르시온은 이러한 영지주의를 토대로 구원론을 새롭게 정립한다. 우리의 죄를 대속한 예수의 죽음과 이러한 예수의 사역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게 정통 기독교의 구원관이지만, 마르시온은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의 도움을 받아 인간 스스로가 자신 안에 있는 불꽃의 파편을 발견해야 참빛인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내 안의 파편을 발견해 신에게 이르는 길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한 단계를 뛰어넘는 관문마다 그노시스(영지)가 필요하다. 마르시온은 "예수는 우리에게 이 영지를 알려줘 거대한 빛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존재다"고 주장한다. 도올은 이런 마르시온을 지나치게 옹호하려는 점을 김 교수는 문제삼았다.
마르시온에 따르면, 구약에서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최고의 신보다는 조금 못한 하급 신(데미우르게)이다. 예수는 변덕스럽고 보복적이며 폭군적인 구약의 하나님이 아니라 무한히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자비의 하나님, 곧 최고의 신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수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세계에 속한 육신을 입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 점이 마르시온이 영지주의자로 몰리는 이유다. 마르시온은 육신의 가짜 예수가 십자가에서 신음할 때, 영의 진짜 예수는 옆에서 낄낄 웃었다고 주장했다.
도올은 이단으로 몰렸다고 그 사상 자체가 모두 무효화되는 건 아니라며, 정통 기독교가 배척한 마르시온을 마지막까지 동정한다. 그럼에도 도올은 구약-유대교적인 창조신학(물질과 육신의 세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의 영향으로 요한복음이 이 영지주의의 극단적인 영(선)-육(악)이라는 이원론을 극복했다고 평가한 점을 김 교수는 인정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영지주의 구원론은 탈세계적 구원론, 엘리트주의적 구원론, 혹성탈출식 구원론이라고 비판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 활동하시며 그 역사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데, 영지주의는 구원과 역사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 역사에 무책임한 기독교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탈세계적 기독교는 방탕하거나 금욕적인 형태를 띤다고 지적했다.
또 영지주의 구원론은 영지를 아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 구원론이므로,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에 입각한 구원론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마르시온이 구약과 신약을 철저히 단절시키면서 신약에서 구약에 우호적인 부분을 삭제하고 바울의 편지마다 자신의 서문을 덧붙였다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무시한 태도라고 질타했다.
김 교수는 도올이 말하는 영지주의가 기독교가 배척한 협애한 영지주의가 아니라 당시 희랍 사상의 핵심적인 흐름(오르페우스~피타고라스~플라톤~플로티누스)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요한복음이 영지주의 세계관(빛과 어둠의 이원적 세계관)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영지주의로 무장한 당대 지식인들을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 복음이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진단한 도올의 견해를 신선한 해석이라고 평가했다.
도올은 요한복음이 여러 종교와 사상을 지평 융합한 종교혼합주의적인 영지주의를 적절하게 창조적으로 활용하면서, 영지주의적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당대의 민중들에게 공세적인 복음을 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면서,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불교와 동양사상 등의 좋은 면을 두려워 말고 공세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도올의 주장을, 한국교회가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되기만 한다면, 진지하게 논의해 볼만하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모든 종교가 다 하나이니까 전도도 선교도 필요없다는 식의 종교통합이나 다원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케리그마를 여러 세계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타종교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마르시온주의와 함께 도올이 한없는 연민을 품는 계파는 아리우스파다. 철저한 네오플라토니스트였던 아리우스는, 예수는 인간일 뿐이고 오직 성부만이 절대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도올에 따르면, 아리우스는 예수가 인간이라는 점을 부각해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 유일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도올은 아리우스가 예수를 인간으로 설정해 역설적으로 예수를 인간과 신을 잇는 특별한 로고스적 성격을 부각했다고 긍정했다.
또 도올은 아리우스가 예수와 하나님을 동일한 분으로 여기는 서방의 황제 기독교에 의해 정치적으로 거세되었다며 아리우스를 옹호한다. 이와 함께 도올은 신약 성경 27권이 정경으로 채택되는 과정도 기독교와 로마 황제의 정치적인 유착의 우발적인 일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 교수는 얼핏 보면 도올의 주장이 맞는 것 같지만, 367년 부활절 즈음에 아타나시우스에 의하여 발표된 신약 성경 27서 목록은 특정 정치권력을 옹호하는 목록이 아니라고 당시의 여러 교회들에게 일반적으로 공인된 책들의 목록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도올은 정통 기독교가 마르시온과 아리우스 등을 이단으로 몰면서 보인 배타성에 깊은 연민을 느끼고 27서 경전화 작업 전의 원시 종교혼융적 기독교에 대한 아련한 향수 때문에 치우친 평가를 내린다고 지적했다.
"지나치지만 참신한 면도 있다"
김 교수는 도올의 성서 이해에 대한 A4용지 24쪽 분량의 논문을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동안 토해내듯 설명했다. 도올의 몇몇 신학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비평했지만, 몇몇 주장에 대해서는 "도발적이고 참신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 교수는 도올이 가장 많이 비판 받고 자신도 도올을 비판하는 핵심 사항인 '구약과 신약의 과격한 단절'에 대해서도 "치우친 면이 있으나, 도올이 기독교 복음이 얼마나 새로운 문화 창조의 힘이며 역사 변혁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엄청난 하나님의 선물인가를 강조하려고 했던 점에서 참신한 면을 드러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