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3회 사회창안 소식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의 고충과 그 해소방안에 대해 대략이나마 살펴봤습니다. 한 시각장애인의 "시각장애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목숨을 걸어야한다"는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이 말은 결코 빈말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동안 많은 장애인들이 교통시설에서, 삶의 현장에서(대책만 잘 세웠어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죽임을 당해야 했고, 또 사실 지금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생긴 안국동의 한 신호등은 음성안내가 되지 않습니다. 새로 생긴 신호등부터서라도 음성안내는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또 한 시각장애인은 "혼자서도 하고 싶은데, 또 할 수도 있는데 우리 사회는 시각장애인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도움을 청하게 만들고 있다"며 "누군가에게 매번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지하철역에, 길거리에 점자 블록만 잘 설치돼 있고, 음성 및 점자 안내만 잘 이루어져도 시각장애인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건물의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에는 음성이나 점자 안내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그 막막함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을 아십니까?
교통약자. 이처럼 장애인들은 바로 대표적인 교통약자입니다. 교통약자에 대한 대책은 더 많이, 더 세심하게 쏟아져 나와야 하고, 지금 즉시 집행되어야 합니다. 장애인의 날인 4월20일에만 반짝 관심을 가질까 무섭습니다. 비장애인인 저도, 또 비장애인이 주축인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마저도 그럴까 무섭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은 1년 365일 계속 되고 있는데 우리는 단 하루·이틀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것처럼 고약한 일은 없겠죠.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께, 아주 좋은 법률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입니다. 2005년 1월 27일 제정된 법률 제7382호 교통약자법의 내용을 살짝 볼까요(이 법의 친구로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이 있습니다. 이 법은 다음에 한번 살펴보자고요).
"제1조 (목적) 이 법은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여객시설 및 도로에 이동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보행환경을 개선하여 인간중심의 교통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이들의 사회참여와 복지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교통약자"라 함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등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자를 말한다."
얼마나 좋은 내용입니까.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등을 교통약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안전하고 편리한 보행과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인 것이죠. 좋은 법을 많이 만들면 그것이 사회통합으로 이어지고, 사회통합이 증진된 사회가 인간해방이 구현된 사회라는 설명처럼 좋은 법은 많은 이들의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좋은 법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회창안'이라는 활동도 더 많은 좋은 법과 규정, 제도를 만들어내는 활동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좋은 법'이 만들어졌다 해도, 내용이 아직 부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용까지도 참 좋은데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교통약자법의 경우도 지난 회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직 많은 내용이 부족합니다. 대표적으로 이 법은 시각장애인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버스의 경우 버스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오긴 하지만, 정류장에서 기다라는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어떠한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습니다.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각장애인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만이 몇 번 버스가 도착했는지를 안 다음에, 그분의 도움을 받아야만 조심스럽게 버스에 승차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혼자서는 죽어도 못한다는 것이죠.
또 시행규칙 별표에 나와 있는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당장 길거리에 나가서 보십시오. 사방에 볼라드(주차방지기둥)가 서있습니다. 원래 교통약자들의 안전하고 편리한 보행을 위해 인도로 차가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의의 기둥'이었던 볼라드가 지금은 너무나 남발되어 심지어 비장애인들까지도 충돌하는 '악의의 기둥'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볼라드를 시각장애인 유도 블럭 위나 가까운 주변에 버젓이 세워놨고, 규정대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질이 아니라 돌이나 쇠를 사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또 볼라드의 간격을 규정대로 확보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 특히 시각장애인들에겐 아주 무서운 '돌 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유모차 태운 영유아를 데리곤 외출도 하지 마라?
한편, 교통약자법에서 '교통약자'로 규정하고 있는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의 경우에도 많은 부분 이동과 보행의 편리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 공론화되고 있는 '유모차 이동권' 문제가 대표적인 것입니다.
유모차를 타고 시내에 나왔다가는 아이도, 부모도 녹초가 되고 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상당수 에스컬레이터에 '유모차 진입금지'라는 팻말이 버젓이 서있습니다. 1인승 엘스컬레이터는 진입이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영유아를 동반한 자 중에 유모차는 어떡하라는 말인지요.
이처럼 교통약자법은 참 좋은 취지의 법임에도, 아직 내용에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좋은 규정도 제대로 안 지켜지고 있는 문제까지 있습니다.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이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1년 내내 이법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법을 가지고 토론놀이, 실태 조사 놀이를 계속 해가지고 이 법의 내용을 보완하고, 이 법의 집행을 보완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이 법은 정말 정말 좋은 법이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국회의원, 보좌관, 공무원, 비장애인, 장애인, 시민단체 등등 모두가 나서서 '교통약자법'에 대한 '토론놀이'를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1년 내내 쭉~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입법전문지 '여의도통신'에도 실립니다. 안진걸 기자는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는 시민들의 좋은 제안이나 아이디어가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www.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