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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화를 받은 장소다. 방문 바로 안쪽 왼편이었다. 방 왼쪽 벽면을 따라 죽 세워져 있는 책꽂이가 벽을 다 채우지 못하고 직각방향의 마루 쪽 벽이랑 작은 틈새를 만들고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었다.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일단 전화를 받긴 했는데 참 의아했다. 여기에 전화가 있었나? 우리 집에는 전화가 없는데 언제 이곳에 전화가 설치되었지? 나 아니면 전화를 신청할 사람도 없는데 누가 전화를 놓았을까. 전화도 없는 집에 전화를 건 사람은 또 누굴까? 나도 모르는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을까. 누굴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여보세요오~." 다시 길게 불러보았다.
전화에 대한 의구심으로 귀를 잔뜩 곤두세웠지만 여전히 수화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상대가 내 목소리를 감별하려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송수화기를 얼굴에서 떼어내서 이리저리 살폈다. 고개를 갸웃하며 이빨사이로 숨을 들이키는데 이때 무슨 소리가 났다. 얼른 수화기를 귀에 갖다 붙였다.
"여보세요?"
"히시기가…"
"네?"
"이럭키 추운데 돌 싼느락꼬 올매나 고상이고."
"어머니세요?"
"살살 하거라이. 일은 꾀로 해야지 힘으로 하는 거 아이다. 안 그라믄 다친다."
고생하고 있는 자식을 바라보면서 애처로워하는 세상 부모들의 마음이 어머니 낮은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아, 네. 괜찮아요. 쎄기 안 해요."
"인자 아무도 없다. 니가 다 알아서 해야 되는기라."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어머니 걱정해야지 어머니가 제 걱정하고 그러세요."
"내가 니 고상만 시키는구나."
"제가 알아서 다 해요. 괜찮아요."
"좀 도와주지는 못하고… 내가 짐떵어리다. 짐떵어리. 쯧쯧."
어머니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전화기에 대한 의구심은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귀가 멀어서 아무하고도 얘기를 못 나누시던 어머니가 전화를 한다는 것이 너무 놀라워서였다.
어쨌든 기뻤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던 어머니가 전화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기뻤다. 가끔 놀러 오시는 아랫집 할머니도 이제는 오래 놀다 가실 것이다. 가슴이 벅찼다. 귀만 좀 밝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쉽게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남의 얘기는 듣지를 못하니 어머니는 한번 말을 시작했다하면 계속 혼자서만 얘기를 하는데 할머니가 듣다듣다 못 버티고 자기 집으로 가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모든 것들이 이상했다. 갑자기 생긴 전화하며 멀쩡해진 어머니 청력이 너무 이상했다. 귀신한테 홀린 기분이 확 들었다. 머리칼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뒤로 휙 돌렸다. 뒤에 어머니가 계셨다.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