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 <마녀유희>야말로 진짜 코미디다. 제목은 <마녀유희>지만, 이 드라마엔 마녀가 없다. 초반 살짝 까칠한 대사 몇 마디하며 <환상의 커플> 나상실(한예슬)을 능가하는 까칠한 마녀를 보여줄 듯 굴던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양해나 이해도 구하지 않고 갑자기 '무늬만 마녀' 혹은 '무뇌유희'로 변신했다. 마유희는 나상실보다 '뇌상실'에 가깝다.
마유희(한가인)는 광고대행사 사장이다. 자수성가했다. 원래는 재벌2세지만, 아버지 도움 하나 받지 않고 성공할 만큼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그만큼 깐깐했고, 그래서 별명이 '마녀'다. 문제는 연애다. 과거 짝사랑했던 남자 준하(김정훈)가 나타나자, 마녀는 갈등한다. 어떡하지(데니스 오가 연기한 조니는 왜 나왔나 묻지마라. 그저 채무룡 요리 가르치는 남자 '한상궁'이다)?
그런데 너무 깐깐하고 완벽을 따져서 마녀라면서, 무슨 마녀가 연애전문가는커녕 그저 요리사 지망생으로 자기 집 일을 도와주는 찌질한 가사도우미 채무룡(재희)에게 연애 코치를 부탁할까? 스타일리스트도 아닌 요리사에게 스타일링 코치를 부탁할까? 이런 상식적인 질문도 하지 않을 만큼 이 드라마에 '리얼리티'는 없다. 억지와 가식만 넘친다. 이러니 재밌을 리가 있나? '환상의 억지'가 판친다.
안경 벗는다고 추녀가 '미녀'된다는 전설의 고향
드라마 초반 마유희는 검정 뿔테 안경에 검정 슈트만 고집하던 여자였다. 그런데 안경 하나 벗었을 뿐인데, 남자들이 거들떠도 안 보던 추녀가 미녀 된다. 안경 하나 벗었을 뿐인데, 추녀가 미녀 된다는 원시시대 '원더우먼' 시절 설정이 21세기 드라마에서 시침 뚝 떼고 벌어진다.
초반에 결혼정보회사 소개팅에 나와서 마유희를 폭탄 바라보듯 하던 채무룡은 마유희가 안경 하나 살짝 벗었을 뿐인데 갑자기 넋을 잃는다. 안경 하나 벗었고, 빨간색 블라우스를 입었을 뿐인데, 대학 동창들은 깜짝 놀라 말한다. "어머, 어머. 마유희 맞아?"
거기엔 기본적으로 지켜지는 '비포(추녀)'와 '애프터(미녀)'의 분장 서비스도 없다. 단지 여자는 안경을 잠시 벗어봤을 뿐인데, 남자는 넋을 잃는다. 이 태곳적 '구라'와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를, 누군가 살짝 눈을 찢거나 살짝 코만 높여도 대번에 알아보는 21세기 도끼눈 시청자들에게 믿으라고 해댄다.
하지만 미녀는 안경 아니라 안대를 해도 미녀다.(<킬빌>에서 안대하고 나타난 대릴 한나를 보라). 더구나 마유희가 누군가? 한가인이다. 한가인의 미모 모르는 사람 있나?
그뿐 아니다. 채무룡의 스타일 조언에 따라 안경을 벗고 긴 머리를 싹둑 자른 뒤 마유희는 180도 변한다. 인간이 달라진다. 까칠함만 사라 진 게 아니다. 하는 일도 꺼벙함의 극치를 달린다. '안경'이 마유희를 똑똑하게 만드는 '엠씨스퀘어'라도 됐던 걸까? 아니면 마유희가 삼순이 아니 삼손 후계자라 긴 머리를 싹둑 자르자 아이큐도 싹둑 잘려나간 걸까?
케케묵은 공자님 후계자 채무룡
까칠하지만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능력도 거침없던 마유희는 사라진다. 핸드폰은 만날 흘리고 다니며 자기 정보를 줄줄 흘리고, 회사 중요 서류도 질질 흘리고 다니기 일쑤다.
그리하여 놀이 공원에서 사파리 버스를 타고 가다 버스 창밖에 곰이 다가온다고 "엄마!" 소릴 지르며 채무룡한테 안기질 않나(70년대 영화 찍나?), "오늘 시안 미팅 때 광고주한테 깨졌어. 광고주가 나더러…. 암튼 난 지금 연애가 필요해. 연애를 하자구." 이 식물인간 초등학교 교과서 읽는 것 같은 소릴 해댄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상태가 마녀면, 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사람이다.
더구나 의대 중퇴로 머리가 있음도 증명하고, 요리사를 꿈꾼다며 뭔가 있어 보이는 이 남자, 채무룡은 어떤가? 자기 사정상 가사도우미에 연애도우미까지 나선 이 남자, 겉으론 돌쇠인 척 '마녀'를 '마님'으로 칭하며 모시지만, 실은 케케묵은 공자님 후계자다. 20세기 '말괄량이 길들이기' 신봉자다.
그가 하는 일은 실은 돌쇠가 아니다. 연애 코치와 스타일링 코디를 하랬더니, 채무룡은 마유희에게 "바보 같은 여자랍니다" 유행가 가사가 딱인 여자로 코치하느라 바쁘다. 커리어 우먼 마유희를 다소곳한 '현모양처' 스타일로 만들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런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며 정작 그 '사랑받는 스타일'로 조강지처처럼 지고지순하게 굴던 애인 남승미(전혜빈)는 걷어찬다.
이것도 뻔한 말괄량이 길들이기잖아?
그래서 채무룡이 마유희에게 하는 연애 코치란 이렇다. "이 여인, 진짜 문제 있네? 남자가 숙이고 들어갈 땐, 못 이기는 척, 받아주는 맛이 있어야지. 누가 막대기 아니랄까봐 빳빳해가지구……." 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요리를 해주라며,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마유희에게 요리를 가르치곤 말한다. "열심히 만들었잖아요. 훌륭해요. 정말 사랑 받겠어."
사랑받는 여자는 요리하는 여자라는 공자님 같은 이야길 연애 코치라고 코치한다. 그리고 마유희는 족히 30년은 묵힌 까칠함은 된장 발라 끓여먹었는지, 나긋나긋 빨리도 세뇌 당한다.
채무룡이 말하는 마유희 변신 테마는 단순하다. '얼빡이'를 만나서도 "마빡이도 아니잖아요?"라며 직설적이고 거침없던 말괄량이 마유희 길들이기다. 남자에게 나긋나긋한 여자 만들기다.
채무룡은 아예 마유희더러 자기는 슈퍼맨이니 언제든 부르라고 말한다. 마유희가 "수퍼맨 도와줘요"라고 외치면, 언제든 도와주마 약속한다. 그리하여 똑부러지고 일 잘해 '연일 상종가를 치는 회사'로 키운 능력 있는 CEO였던 마유희는 연약한 여자로 변신한다. 자기가 '슈퍼우먼'이었던 마유희는 채무룡의 코치를 받아 '슈퍼맨'을 부르는 여자로 변신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저 자리에서 발이나 동동 구르며 외친다. "슈퍼맨 도와줘요."
광고주에게 건네줄 중요한 서류를 집에 놓고 온 마유희는 대뜸 채무룡에게 전화한다. 요리사 일로 바쁘던 채무룡은 만사 제치고 마유희 서류를 들고 나타나 마유희를 구해준다. 마녀라던 마유희는 그저 발이나 동동 구르며 슈퍼맨이 도착하길 기다린다.
채무룡에게 "이봐!"라고 말하던 마유희는 이제 "무룡씨"라고 부르며, 누가 뭐라면 "어?" 소리로 입 벌리고 '아무것도 몰라요' 신공만 펼치기 바쁘다. 그게 마유희가 드디어 사랑받는 길이란다. 귀엽고 살짝 모자란 여자만 사랑받는다?
그러니 생각한다. 마녀는 어디로 간 걸까? "슈퍼맨 , 도와줘요!"를 외치는 마유희에게, "슈퍼우먼, 돌아와줘요!"라고 외쳐야 하는 걸까?
마녀 유희? 마녀 다 죽었다. 성이 마씨라고 마녀면, 성이 소씨면 소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