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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0일 오후 2시 세실 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0일 오후 2시 세실 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범여권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

범여권 정치세력이 12월 대선의 히든카드로 사실상 마지막 기대를 걸어왔던 정운찬 전 총장이 전격적으로 불출마선언을 했다. 그동안 정 전 총장은 정치참여 결심을 굳힌 상태에서 시기선택만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불출마선언은 범여권에 충격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오늘(30일) 아침 <조선일보>는 "나는 드롭(drop·중도포기)하지 않는다"는 정 전 총장의 말을 실었지만, 그것이 아예 불출마선언을 의미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보다는 끝까지 간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이 오늘 아침까지의 분위기였다.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선언에 이어 정 전 총장의 불출마선언은 대선정국의 흐름을 또 한번 변화시키는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벽에 부딪힌 범여권의 후보찾기

일단 범여권은 한나라당 주자들과 승부를 겨룰만한 후보에 대한 희망을 잃게 되었다. 물론 정 전 총장의 경우도 그동안 낮은 인지도와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그대로 범여권 내부에서는 그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아니, 그의 잠재력을 믿고 싶어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서울대 총장 출신이라는 상품성, 경제와 교육전문가라는 강점, 노무현 대통령과도 정책적 대립각을 세웠던 행보 등을 감안할 때, 일단 범여권 후보로 등장하게 되면 지지율이 급상승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범여권 세력은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 정 전 총장이 불출마선언을 한 것은 12월 대선에 대한 범여권 세력의 기대를 접게 만드는 상황을 낳고 있다.

열린우리당에 소속된 주자들로는 한나라당 '빅2'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팽배한 가운데, 그렇다고 정 전 총장 이외의 다른 외부 대안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범여권의 후보찾기 작업은 벽에 부딪힌 상황이 되어버렸다. 과연 범여권의 새로운 대안적 인물을 찾을 수 있을지, 아직 시간은 있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으로 판단된다.

정 전 총장의 불출마선언은 범여권의 통합작업을 더욱 표류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 전 총장은 범여권 통합을 가능케할 구심 내지는 연결고리로 인식되어 왔다. 정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한 제3세력이 형성되면 그곳을 중심으로 헤쳐모여식의 신당창당을 추진하고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대선후보를 선출한다는 것이 범여권 세력의 구상이었다.

정 전 총장의 불출마선언은 그같은 구상이 일단 무산됨을 의미한다. 범여권 통합의 발판이 될 제3지대의 형성이 어렵게 되었으며, 범여권은 통합의 고리를 상실한 채 각개약진의 길을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의 통합논의는 상당기간 표류하게 되었고, 자칫 대선 이전의 통합이라는 목표 자체가 무너져버릴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범여권은 결국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 채 12월 대선을 치르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막판 후보단일화를 통한 반전에 대한 기대가 있겠지만, 그것도 지지를 하나로 모을만한 후보가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한나라 '빅2' 우위 구도 당분간 지속될 듯... 친노그룹을 주목하라

이러한 상황은 대선정국의 불균형성을 다시 고조시키게 될 것으로 보인다. 4·25 재보선으로 흔들렸던 한나라당의 일방적 우위구도는 일단은 다시 살아나게 되어있다. 대선정국의 관심은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 사이의 대결로 모아지게 되었다.

범여권의 통합과 후보단일화에 대한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가운데, 당분간 대선정국은 한나라당 '빅2' 사이의 경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전례없는 구도이다. 대선이 불과 7개월여 남았는데, 범여권의 후보는 오리무중이고, 한나라당 '빅2'가 1·2위를 다투고 있다.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한나라당에서 선출되는 대선후보의 독주가 예상되기도 한다. 그래도 대선이 설마 그렇게 갈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같은 구도를 깨뜨릴만한 범여권 주자를 찾기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이다.

정운찬 전 총장이 대선 출마 포기선언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정운찬 전 총장이 대선 출마 포기선언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다만 정운찬 전 총장의 불출마선언은 한나라당의 빅2'에게 새로운 유혹을 던질 수 있다. 범여권의 마지막 카드가 사라진 마당에,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가 본선대결을 벌여도 해볼만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에게 정운찬 불출마라는 약은 독으로 변해버리게 될 것이다.

또 하나 대선정국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정 전 총장의 불출마선언으로 범여권의 통합이 지리멸렬해질 경우, 친노그룹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친노그룹은 이미 참여정부 평가포럼을 결성하고 재결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범여권의 각 세력이 각개약진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하나의 대오로 결집된 친노그룹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12월 대선의 승부를 넘어 그 이후를 생각하자는 논리가 범여권내에 대두될 경우, 친노그룹의 움직임은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단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정운찬 전 총장은 아직 정치참여도 하지 않은 인물에 불과했지만, 범여권이 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어왔기에, 그의 불출마선언이 던져주는 파장은 무척 클 수밖에 없다. 범여권이 과연 충격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운찬#범여권#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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