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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일하러 갑시다." 장애인들을 출근시키는 김만수씨.
ⓒ 윤여문
지난 4월 17일은 한국인이라면, 특히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날이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계인 조승희씨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유럽문화 배경을 가진 영어권 국가들 중에서 호주는 미국, 캐나다 다음으로 한국인 이민자가 많고 1.5세대와 유학생이 많은 나라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호주한인동포사회는 지금 바짝 긴장하면서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민 1.5세대는 시한폭탄?

이민초기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영어를 말할 줄 몰라서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경험이 있는 이민자 자녀들은 자칫 그 일이 쉽게 치유되지 않는 마음의 상처(trauma)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언어감각과 문화적 정서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기층연령을 한국에서 보낸 어린이가 갑자기 바뀐 환경 때문에 겪는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는 주류사회에 대한 거부감으로 커져서 치유 불가능한 불행의 씨앗으로 잉태될 수 있다.

그래서 이민사회에서는 이민 1.5세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할 때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라고 한다. 이민 1.5세대가 언어와 문화의 단절에서 오는 충격과 정체성의 혼란을 누구보다 심하게 겪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민 1.5세대의 힘든 고비를 장애인을 만나서 극복한 호주한인동포가 있어서 직접 만나보았다. 마침 지난 4월 20일이 한국 '장애인의 날'이어서 장애인들도 함께 만났다.

그 또한 위험천만의 시한폭탄이었다. 자신의 불행을 세상 탓으로 돌리면서, 호주 같이 밝은 세상에서 그늘진 곳만 어슬렁거렸다. 술과 도박에 빠져들기도 했던 그는 이민 1.5세대의 굵은 사슬에 묶여서 인생의 낙오대열에 들어서고 있었다.

장애인 천사들을 만나다

바다와 숲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도시, 시드니의 풍경은 사시사철 푸르고 아름다운데 그가 운전하는 택시 안의 풍경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목적지로 향하는 승객과 돈을 벌기 위해서 핸들을 잡은 운전기사가 있었을 뿐.

더구나 그 운전기사는 오랜 세월동안 가슴속에 분노를 안고 살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비워지지 않는 밑도 끝도 없는 분노의 아우라(히스테리 등의 전조). 세상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자포자기에 빠져버린 그는 항상 벼랑 끝을 걸어가는 이민 1.5세대였다.

▲ 가슴속의 분노를 비워낸 김만수씨
ⓒ 윤여문
그러던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우연히 만난 천사들이 그의 분노를 말끔하게 처리해준 것. 여기에 등장하는 그는 운전기사 김만수(47)씨, 그가 만난 천사들은 장애인들이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네 바퀴 달린 택시 안에서 두 바퀴 달린 휠체어에 앉아있어야 하는 장애인들이 들려준 세상은 그가 분노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사지 멀쩡한 김씨가 세상을 탓하는 것과는 달리, 온갖 불편과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세상을 탓하지 않았다.

결국, 김만수씨는 장애인들과 사귀면서 오랫동안 가슴속에 똬리를 틀었던 응어리를 풀어냈다. 그러자 시드니의 진면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드니항구에 사철 내내 온갖 꽃들이 피어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눈물을 보다

김만수씨가 장애인들에게 맨 처음 감동을 받은 건 작은 친절에도 크게 고마워하는 넉넉한 마음이었다. 돈을 받는 운전기사의 당연한 서비스인데도 그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고맙다는 말을 계속해서 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많은 운전기사들이 그들을 홀대하거나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그건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공연히 혐오감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장애인들을 일부러 피해왔기 때문이다.

비가 심하게 내렸던 어느 날, 김만수씨는 어쩔 수 없이 장애인 한 사람을 태우게 됐다. 짜증스러웠다. 그러나 오랜만에 좋은 일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그를 알뜰살뜰 도와주었다.

김씨는 택시에서 내린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려있는 걸 언뜻 보았다. 빗물이겠거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분명히 눈물이었다. 감사의 눈물. 김만수씨는 큰 충격을 받았고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가졌다.

이민 1.5세대의 비애를 고스란히 겪다

김만수씨는 일부 장애인에서 나는 냄새에 대해서 "솔직히 일부 장애인들에서 냄새가 나지만 그게 어디 그들의 탓인가, 기동이 불편해서 샤워를 자주 할 수 없기 때문이고 중증장애인의 경우 소변처리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서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냄새가 더 이상 악취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해지기까지 했다"라면서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악다구니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는 지독한 악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만수씨는 "나 자신이 장애인들을 만나기 전까지 심한 악취를 풍기면서 살아온 장본인"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그런 고백을 하는 배경에는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겪은 이민 1.5세대의 비애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지난 1977년, 17살의 나이에 아버지가 살고 계시던 호주로 이민을 떠나온 김만수씨는 전형적인 이민 1.5세대이다. 더구나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근무했던 기술자였기 때문에 13년 동안 아버지를 만나지 못해 성장기의 정신적 혼란을 누구보다 크게 겪었다.

4살 때 헤어진 아버지를 17살에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뭔지 모를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사내 아이 둘을 키우면서, 비극적인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의 생애를 이해하게 됐다. 이해할 뿐만 아니라 불효했던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오직 돈만 좇는 정신적 장애인

▲ '즐거운 퇴근시간' 수고 많았다고 얘기해주는 김만수씨
ⓒ 윤여문
이렇듯 이민 1.5세대의 비애를 뼛속 깊이 겪은 김만수씨는 큰돈을 벌어서 세상에 복수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던 1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시리얼푸드 제조회사에 잠깐 다니다가, 돈벌이가 시원치 않자 택시운전기사로 직업을 바꾸었다. 오직 돈을 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직업에 대한 의식이나 자긍심이 있을 리 없었다. 택시운전이 분명히 서비스 업종인데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만수씨는 그 일로 돈을 버는 게 어렵다는 걸 알고 변칙적인 방식을 시도했다. 12인승 장애인 승합택시를 구입한 것. 냄새나는 장애인을 태우기 위한 게 아니고, 승객이 많은 공항 등지에 가서 한국식 합승행위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불법이었지만 무시했다.

돈벌이가 쏠쏠했다. 제법 주머니가 두둑해지자 이번엔 그 돈을 단숨에 튀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 그러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깊은 좌절감에 빠져서 술로 시름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법 합승손님이 아닌 진짜 장애인승객들을 태우게 됐다. 김씨는 그때까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은 '향기로운 악취'가 나는 천사들

그런데 김만수씨는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아주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불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일반승객 같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작은 친절에도 감격스러워 했고, 입에 발린 칭찬 한 마디에도 환한 웃음을 보였다.

처음엔 그것이 무척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차츰 장애인들과 정을 붙인 다음에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알게 됐는데, 그들에게는 욕심이 없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순한 원리였다.

그렇게 해서 김만수씨의 길고 긴 방황은 끝났고 가슴속의 분노도 봄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장애인들의 소박한 마음씨를 닮으려고 노력했더니, 그토록 그악스럽게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욕심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만사가 다 순조롭게 풀렸다. 현실적으로 변한 것은 거의 없었지만 하루하루가 편안해졌다. 아직도 돈벌이에 급급한 동료들이 추하고 불쌍하게 느껴져서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장애인 운전기사 7년차로 고참에 속한다.

김만수씨는 매주 수영과 스쿼시를 한다. 장애인택시 운전을 위해서 체력까지 다지는 프로페셔널이 된 것. 그래서 김씨는 말한다. "장애인들은 향기로운 악취가 나는 천사들"이라고. "장애인들의 냄새가 향기로 느껴지기까지 나는 장애인 스승들로부터 도 닦는 수련을 받았노라"고.

▲ 얼굴 근육은 뒤틀렸지만 천사의 마음을 지닌 장애인들.
ⓒ 윤여문
'한국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택시를 탔다

4월 20일은 한국 장애인의 날이었다. 그러나 장애인의 날은 근본적으로 없어져야 하는 날이다. 장애인들이 바라는 것이 특별대우가 아니라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과 똑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대우는 고사하고 차별이나 하지 말라는 것.

그것도 아니면, 장애인의 달이나 장애인의 해를 정해서 장애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도를 모색한다면 모를까, 하루 반짝 이벤트나 하는 방식으로 장애인의 날을 보낸다면 오히려 장애인들의 마음만 더 심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참고로 호주는 10월이 장애인의 달이다.

4월 20일이 비록 한국에서 지내는 장애인의 날이지만, 이런 기회에 호주 장애인 실태를 한국에 전하고, 비교하거나 참고할 점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김만수씨가 운전하는 장애인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는 김만수씨가 얘기했던 천사들도 있었다.

장애인 택시의 도착지는 뉴사우스웨일즈 장애인센터(NSW The Spastic Center)였다. 시드니 동북부의 울창한 숲속에 제법 큰 건물이 마치 휴양지의 호텔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서 40여 명의 천사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센터의 매니저가 기자를 그들의 일터로 데리고 가 소개하며 취재동의를 구했다. "한국에 뉴스를 전하는 오마이뉴스 기자인데, 여러분들을 취재하고 사진 찍어도 괜찮겠느냐?"고. 그들은 모두 박수를 치면서 동의해주었다.

▲ "사진 찍어도 됩니까?" 취재허락을 구하는 NSW 스파스틱 센터 매니저.
ⓒ 윤여문
돈도 벌고 친구도 만나는 장애인 일터

장애인들은 단순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광고물 포장, 우편물 분류, 봉투 붙이기, 간단한 결산서 작성, 광고전단 작성 등이었다. 단순반복적인 일이라서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답변은 달랐다. "우리는 오직 돈만 벌기 위해서 이곳에 오는 건 아니다. 정부에서 장애인 수당을 지급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온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이 끝나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됐다. 그들을 태운 김만수씨가 그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주말의 일정을 논의했다. 그런데 김씨의 일정이 이미 꽉 찬 상태였다.

그러자 그가 "그럼, 이번 주는 외출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갑자기 비가 심하게 내리던 날, 만수가 나에게 보여준 친절을 잊지 못한다, 비가 내리는 심야에 30여㎞를 달려오다니."

그렇게 호주이민 30년차 김만수씨의 이민 1.5세대의 위기는 끝났다. 그는 "내 인생에서 지금처럼 행복한 시절은 없었다, 누가 장애인을 피해야가야 할 장애물이라고 했는가? 인간세계의 본질은 사랑이다"고 말했다.

태그:#조승희, #이민, #이민1.5세대, #김만수,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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