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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룩시장 풍경
ⓒ 이형덕

벼룩시장을 찾아다닌 지도 벌써 십년이 넘었습니다. 공구상과 헌책방이 많았던 서울 황학동 주변에 언제부터인가 온갖 고물들을 늘어놓은 노점상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값이 헐한 데다 요즘은 만나기 힘든 고물(?)들이 즐비하니 좌판에 깔려 있어, 그걸 들여다보는 재미도 별났습니다.

껍데기와 알맹이가 다르기 일쑤인 LP '빽판'부터, 손재봉틀, 다듬이 방망이, 고장 난 축음기에서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헌 운동화, 끈 끊어진 테니스 라켓까지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내버려도 주워가지 않을 쓰레기들을 판다"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지만, 그 쓰레기 속에서 '보물'을 찾는 즐거움을 잘 모르는 말씀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꿈꾸는 아날로그의 추억

벼룩시장에는 쓰다 버린 재활용품도 많지만, 주인에게 버림받은 옛 물건들도 적잖이 흘러나옵니다. 진귀한 골동품은 인사동에 잘 모셔지겠지만, 이른바 '민속품'이라 칭하는 근대의 생활용품들은 감회 어린 추억을 되살려줍니다. 숯불 다리미, 이가 빠진 풍금, 어처구니가 없는 맷돌, 쥐구멍이 난 뒤주.

무조건 천원인 허름한 옷가지와 헌 운동화 속에서 이런 '보물'들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은 참으로 큽니다. 손으로 돌리는 유성기와 녹슨 '뽐뿌' 머리, 쥐 끈끈이 자국이 남아 있는 앉은뱅이책상, 쌀가마를 다는 손저울들을 나는 그렇게 구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뒤주와 오동나무 통판으로 짠 문갑들을 땀을 뻘뻘 흘리며 집까지 실어 날랐습니다.

▲ 민속공예품 좌판
ⓒ 이형덕
이런 물건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노점상들도 차츰 어수룩한 태를 벗고 영악해졌습니다. 오만가지 고물이 뒤섞인 좌판에서 벗어나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주제별로 따로 정해 파는 전문성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골동품이라도 되는 듯 만져보지도 못하게 합니다.

나중에는 중국의 연변 등지에서 실어온 민속품들이 밀려들어왔습니다. 나무 함지박이며 꽃살문, 소달구지에 누군가의 무덤에서 뽑아왔는지 석물들까지 등장했습니다. 값도 곱절로 오르고, 옛날 국민 학교 도덕 교과서며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빛바랜 흑백사진, 딱지, 먹으면 당장 죽을 것 같은 왕년의 '불량식품'까지 등장해 바야흐로 '그때를 아십니까' 분위기를 연출해 나갔습니다.

벼룩시장의 즐거움은 좌판의 물건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면면을 구경하는 일도 큰 즐거움입니다. 대체로 벼룩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뉩니다.

▲ 별난 마니아들
ⓒ 이형덕
첫째는 최신형만 다루는 기존의 백화점이나 양판점에서 구할 수 없는 구식 물건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고풍스러운 것에 대한 취향과 신뢰에 끌려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물건들을 이곳에서 구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진공관 전축부터 왕년에 약효를 보던 미제 무좀약을 찾아 선 사람들.

둘째는 특별하고 희귀한 것에 대한 취향을 지닌 마니아들입니다. 대중적이지 않아 정규 상거래에서 퇴출된 물건들을 찾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백만원짜리 영국제 접이 자전거, 미제 군복이나 방독면 등의 군대 용품을 선호하는 밀리터리 마니아들, 분재나 고서화, 명품 구제 옷을 찾는 사람들로 이곳은 붐빕니다.

마지막으로는 싼 물건들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중고 엔진 톱이나 망치, 카메라 렌즈부터 천냥짜리 저급 신제품들을 싼 맛에 찾는 실속파들입니다.

▲ 새 주인을 기다리는 구두들
ⓒ 이형덕
예전에는 벼룩시장 안쪽 점포에서 천원짜리 망치나 드라이버 같은 신제품을 팔았습니다. 저급하긴 해도 중고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신제품보다는 '거저 줘도 안 가져갈 것 같은' 고물들의 좌판이 더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황학동 뒷골목에는 주로 헌 전축이나 텔레비전, 카메라들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는데, 고장 난 물건들을 수리하고, 칠하고, 닦느라고 여념이 없었습니다. 어찌나 솜씨가 좋은지 비닐로 뒤집어 씌워놓은 전자수첩이나 계산기, 텔레비전들은 얼핏 보면 신제품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초기의 벼룩시장은 그런 정식 점포들 주변의 골목에 벼룩처럼 숨어서 좌판을 펼쳤습니다. 공구상들이 노는 주말에 펼치는 좌판들은 한때 사람들로 길이 막힐 정도로 호황을 누렸습니다.

불도저에 밀려 벼룩처럼 털려난 노점상들

▲ 복원된 청계천
ⓒ 이형덕
그러다가 어느 날, 청계천 복원사업이라는 날벼락을 맞고 졸지에 '벼룩처럼' 흩어졌습니다. (자기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도 아닌) 엄청난 돈과 왕년에 지저분한 청계천을 시멘트로 '복개'하던 이들의 손에 의해, 다시 청계천은 뚜껑을 열고 '복원'됐습니다.

도심 한가운데로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뛰노는 대규모 '조경 사업'을 벌이는 이의 눈으로 보자면, 황학동은 말 그대로 골치 아픈 '벼룩'이나 다름없었겠지요.

쓰레기나 다름없는 온갖 고물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도시미와는 전혀 통하지 않는 꾀죄죄하고 무질서한 벼룩시장이야말로, 부수고 말끔히 새로 짓는 일에 이골이 난 이들에겐 가장 혐오스런 공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때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은 서울시장이 무허가 판자촌들을 '불도저'처럼 말끔히 밀어 버렸듯이, 역시 벼룩시장의 노점상들은 '맑고 아름다운' 청계천을 위해 어디론가 눈에 안 띄게 사라져 줘야 했겠지요. 차마 예전처럼 서울 교외의 먼지 풀풀 나는 황무지에 내던져 놓을 수는 없으니, 별로 쓰이지 않는 오래된 야구장 안에 급한 대로 우선 몰아넣기로 했겠지요.

한때 높은 사람들이 지나는 길가마다 허름한 판자촌이나 달동네의 모습이 뵈지 않도록 어른 키 높이의 가림판을 만들고, 벌거벗은 산비탈에 녹색 페인트를 칠하던 시절이 연상됩니다. 미안하지만, 지저분한 '벼룩'들은 아름다운 도시의 '조경'(적어도 생태환경이라는 말만은 쓰지 않기를)을 위해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들어가 정식으로 번호표를 받고 말끔히 세탁되어야 했습니다.

울타리 안에서 제법 구획이 잘 정리된 점포 안의 물건들은 보기에도 깔끔하고, 제법 물건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다가 모를 일은 그곳이 예전처럼 흥청거리고, 즐겁지 않다는 겁니다.

벼룩, 목욕시키고 가둬도 벼룩이지요

▲ 골목의 붐비는 인파
ⓒ 이형덕
벼룩은 벼룩입니다. 어디로든 제 멋대로 튀는 벼룩들이 모여서, 와글거리며 값을 깎고, 먼지투성이 고물을 뒤지는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벼룩시장은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먼지투성이 고물들을 뒤진 끝에 모처럼 좋은 물건을 찾아내는 횡재도 있어야 제 맛이 납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퍼부으면 떨이로 살 수도 있고, 별의별 물건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시정잡배의 속된 풍정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벼룩'들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 일사분란하게 조종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이 벼룩들을 죽이고 맙니다. 벼룩을 깨끗이 하겠다고 살충제를 뿌리고, 목욕을 시킨 셈이지요. 하수도를 뒤엎고, 고가도로를 부수는 일은 돈과 기술이 있으면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을 그렇게 마음대로 부수고, 새로 짓고 할 수는 없습니다.

▲ 노점상 협의회 구호문
ⓒ 이형덕
벼룩들은 다시 울타리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단속반이 나와서 사진도 찍고, 주민등록번호와 이름까지 적어갔다 합니다. 하지만 동묘 부근의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선 좌판들과 몰려든 사람들로 벼룩시장은 활기를 찾고 있었습니다.

창신동 골목 안에는 서툰 글씨로 "폭력 단속 중단하라"고 적힌 종이를 붙인 용달차가 서 있었습니다. '함께 나누는 나눔의 장터'라고 적힌 현수막이 오물에 더럽혀진 채 벽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개발과 규제의 틈새에서 살아남으려는 노점상들의 안간힘이 내보이는 듯했습니다.

▲ 골목의 좌판
ⓒ 이형덕
비록 예전처럼 어수룩하고, 귀한 물건들을 손에 넣는 횡재는 어렵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온갖 고물들은 누군가의 손때 묻은 세월과 추억들을 따뜻하게 가슴에 전해줍니다.

청평화시장 맞은편 쪽에는 좁은 골목 깊숙이에 싸구려 옷가지 좌판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동남아 사람이나 러시아, 아랍 사람들로 뵈는 외국인들도 검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사 담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길 건너편 점포에선 여전히 싸구려 물건들로 호객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 켤레에 천원이라고 양말을 흔드는 장사꾼과 붙이고 안 사도 좋다는 자석 파스를 지나는 사람 팔뚝에 붙여주려 애쓰는 노인, 정체불명의 한문이 적힌 건강약품을 늘어놓고 조신하게 앉아 있는 중국동포 여인, 거의 작동이 안 될 것 같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흑인 손님과 서로 통하지 않는 말로 열심히 흥정하는 주인아저씨의 모습도 눈에 익은 모습들입니다. 벼룩시장 별미라는 천원에 하나짜리 고기튀김 맛도 여전합니다.

벼룩들로 톡톡 튀는 난장판이 되길

▲ 고기튀김
ⓒ 이형덕
청계천을 되살려낸 이도 벼룩시장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들을 가둬뒀던 야구장마저 개발되면서 벼룩들을 어디로 또 가둬둘지 자못 걱정스럽습니다. 지금도 단속은 계속되고 있지만, 결코 이들을 이기기는 쉬어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이 골목의 '벼룩'들을 위협하는 것은 밖이 아니라 안에 숨어 있습니다. 외제 상표 딱지 하나 붙었다고 백화점보다 비싼 옷값을 버젓이 부르는 그 살진 욕심이 결국은 벼룩시장을 사라지게 할지도 모릅니다.

▲ 정말 소중한 징검다리는 무엇일까
ⓒ 이형덕
이제 울안을 벗어나 원래의 태생지인 허름한 뒷골목으로 돌아온 벼룩시장을 위해 몇 가지 바람을 전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4월 29일에 다녀왔습니다.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리게 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벼룩시장, #황학동,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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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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