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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 테러 미사일방어체제(MD) 문제가 미러관계 및 유럽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군 부대를 방문해 전문 야전 장비작동을 지켜보며 설명을 듣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
2001년 9.11 테러 미사일방어체제(MD) 문제가 미러관계 및 유럽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군 부대를 방문해 전문 야전 장비작동을 지켜보며 설명을 듣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던 미사일방어체제(MD) 문제가 미러관계 및 유럽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국이 폴란드 및 체코에 MD 배치 계획을 강행하려고 하자, 러시아가 군축조약 탈퇴 경고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미국 MD 구상에 대해 유럽 내부에서 이견이 커지면서 '유럽의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MD는 미국이 미국 본토와 동맹 및 우방국, 그리고 해외주둔 미군을 북한이나 이란 등 이른바 '깡패국가들'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어온 미국의 21세기 핵심적인 군사전략이다.

절대안보를 신봉하고 군산복합체와 유착관계에 있었던 부시 행정부는 2001년 출범 직후부터 MD 구축을 강력히 추진해왔다. 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독일, 프랑스 등 미국의 일부 동맹국들조차 MD가 새로운 군비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9.11 테러가 발생하자 MD에 대한 비판과 관심은 줄어들었고, 부시 행정부는 이를 틈타 MD 배치에 제한을 둔 탄도미사일방어(ABM)조약에서 탈퇴하는 등 MD 구축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리고 잠복해 있던 MD 문제가 미국의 동유럽 MD 배치 계획 및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로 다시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란의 핵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폴란드에 10기의 요격미사일과 체코에 X-밴드 레이더를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2007년 안에 체코 및 폴란드와의 양자 협의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1년 경에 실전 배치를 마무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물론이고 일부 유럽국들조차 이 계획에 신중해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레이더 배치 후보지역은 체코의 트로카벡 주민들의 반대 여론도 높다. 이에 따라 미국의 희망대로 될 지는 두고봐야 할 듯 하다.

미국은 동유럽 MD 구축이 러시아와는 무관한 것으로서, 이란 및 북한의 미사일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동유럽에 배치되는 MD는 대단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천기의 핵미사일을 보유한 러시아와의 군사력 균형을 흔들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러시아, '군축조약' 탈퇴 경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MD에 대한 경고의 수위를 높여왔다. 사진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모스크바에서 공식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MD에 대한 경고의 수위를 높여왔다. 사진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모스크바에서 공식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러시아는 MD에 대한 경고의 수위를 높여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미국의 MD 및 군사패권주의를 거론하면서 "미국이 세계의 지배자, 유일한 주권국가"처럼 행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의 하원인 두마 역시 미국이 MD 계획을 밀어붙이면 제2의 냉전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미국은 "냉전은 한번으로 족하다"며 MD는 러시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러시아는 또한 미국의 동유럽 MD 배치 계획이 철회되지 않으면, 1987년 미소간에 체결된 중거리핵미사일폐기협정(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INF는 냉전시대 대표적인 군축조약 가운데 하나로, 사거리 500~5500km의 탄도미사일과 순항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한 것이다. 이 조약에 따라 1991년 6월 1일까지 미국은 846기, 러시아는 1846기의 미사일을 폐기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 때 미국이 한국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를 철수한 것 역시 이 조약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미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동유럽 배치 MD는 러시아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4월 중순에는 로버트 게이트 국방장관을 러시아에 보내 MD 기술을 공유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러한 미국의 제안을 일축했다.

러시아는 자신의 턱밑에 MD가 배치되는 것 자체가 위협이 되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한발씩 계속 물러나면 러시아의 핵미사일 전력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러시아는 동유럽 MD가 '트로이의 목마'로 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반발은 유럽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 Treaty on Conventional Armed Forces in Europe)까지 언급하면서 절정에 달하고 있다. 푸틴은 2007년 4월 26일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동유럽에 미사일방어체제(MD) 배치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CFE 조약을 준수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CFE는 유럽의 냉전 종식을 상징하는 조약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러시아의 이번 경고는 미러관계가 냉전 시대에 버금가는 적대관계로 돌아설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1990년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간에 체결된 CFE는 두 조약 회원국 국경에 배치된 전차, 야포, 전투기 등 전투 장비를 감축·재배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 약 5만개의 전투 장비가 제거되었고, 1999년 재협상을 통해 그루지야와 몰도바에 배치된 러시아 군사력을 철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직 철수를 단행하지 않았고, 이 조항을 미국의 MD 계획과 결부시킨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NATO 확장 및 MD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CFE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러관계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의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미국의 이라크 침공 3주년인 지난 2006년 3월 20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미국의 이라크 침공 3주년인 지난 2006년 3월 20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 로이터/연합뉴스
이와 같은 러시아의 반발은 냉전 해체이후 NATO가 러시아의 뒷마당까지 확장되고 21세기 들어 미국이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유지해온 전략적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를 깔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 초강대국으로서의 향수와 그 지위를 회복하고자 하는 푸틴의 야심이 숨어 있기도 하다.

러시아가 MD에 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론해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가 ABM 조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러시아와 협의없이 동유럽에 MD를 배치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러시아의 시각이다.

둘째는 지금 당장 MD가 위협이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MD는 기본적으로 '다층-다각도' 체제이다. 지상-해상-상공-우주로 이어지는 MD 체제에서 현재 개발이 완료되고 실전배치에 들어간 것은 지상MD와 해상MD이다. 미국은 이를 점차 상공과 우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2012년까지 핵미사일을 1700-2200개 수준으로 감축키로 했다. 핵미사일 수는 줄어드는 반면에 미국 주도의 MD가 막강해지면, 러시아의 전략적 손실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러시아가 꺼내들 다음 카드는 2001년 미국과 체결한 전략핵무기감축협정(모스크바 협정) 탈퇴 경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 신냉전 오나?

이처럼 미국이 동유럽 MD 배치 고집을 꺽지 않고, 러시아가 유럽의 냉전해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러 군축조약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냉전의 유령'이 다시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이념 경쟁의 색채는 거의 사라졌지만, 냉전시대에 버금가는 상호불신과 군비경쟁의 악령은 성큼 다가서고 있다.

러시아가 미국의 MD에 대응해 군비증강을 추진해온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01년 5월 들어 미국의 MD 구축이 본격화된 이후, 러시아는 냉전 시대 레이건의 전략방위구상(SDI)에 맞서 추진했다가 중단한 핵전력 증강 프로그램을 재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탄두 핵미사일 성능 개량, 이동식 핵미사일 증강, 궤도 수정이 가능한 탄두 개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INF와 CFE에 따라 감축했던 중장거리 미사일 및 재래식 군사력마저 강화하고 나선다면, 미러관계와 그 사이에 낀 유럽은 냉전해체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절대안보의 신화'에 빠진 미국과 '강대국으로서의 지위 회복'을 노리는 러시아 사이의 충돌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역시 대단히 크다. 두 강대국의 충돌은 유럽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MD의 명시적, 잠재적 대상국인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가장 가까이 있는 한국을 MD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고 있다.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를 가장 먼저 배치한데 이어, 중장거리 미사일 요격용인 해상MD체제와 전역미사일고고도방어체제(THAAD) 배치도 서두르고 있다. 또한 주한미군 사령관은 최근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항공기탑재레이저(ABL) 배치 필요성까지 들고 나왔다.

이러한 계획이 강행되면 한반도는 또 다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에 처할 수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팔짱끼고 보고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 다시 MD에 주목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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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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