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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일곱 살. 앞니가 빠지고 말썽꾸러기 노릇을 할 나이이지만, 날마다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놀 시간도 없이 살아간다. 이런 손자가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오늘도 8시 45분에 집을 나서서 유치원으로 향했다. 오후 2시면 태권도학원 차가 유치원에서 바로 아이를 태워 도장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오후 4시가 되면 태권도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나는 일부러 좀 일찍 가서 기다렸다가 손자를 데리고 나섰다.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을 사내라고 조른다. 트레이닝 차림으로 나섰기 때문에 주머니에 돈 한 푼도 없는데 어쩔 수 없이 가게에 들러서 아이스바를 하나 골라 먹게 하였다.
집에 돌아와서 이젠 TV에 매달리려는 아이를 달래서 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마을 약수터에 가서 물도 한 통 뜨고, 운동기구에서 놀이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서 구워 가지고 간 가래떡이 너무 단단하여서 먹을 수가 없다고 투정을 하면서 혼자 내려가겠다 했다. 간신히 따라 잡아서 냉이, 애기똥풀, 민들레 등의 길가 야생초에 대해서 만져보고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내려오다가 놀이터에서 잠시 쉬면서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타고 놀게 해 주었다. 그네를 혼자서 탈 줄 몰라서 앉아서 타면서 혼자 구르는 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제법 잘 굴러서 타게 되었다.
미끄럼틀을 타는데 일반 미끄럼틀이 아니라, 두 가닥 파이프로만 되어 있는 것이어서 다리를 걸고 타다가, 어깨로만 타보더니 너무 힘들고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중간에서 받아 주었다.
몸 비틀기를 하는 운동기구에 올라가서 잘 놀다가 내려오지 못하여 천천히 기다려서 내려오게 하였더니, 방법을 알고부터는 스스로 올라가서 타다가 그치도록 서서 기다리곤 하였다.
오는 길에 좁은 골목길을 마을버스가 달려오는 길이라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우리 앞에서 다른 아이가 오토바이에 다치지 않게 달아나다가 넘어져 울음보를 터뜨렸다. 손자는 길가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손을 잡고 오다가 태권도 도장에 들러서 산에 갔다 왔다고 자랑을 하고 나왔다.
엄마가 올 시간이라고 혼자 집에 갔다가 엄마가 없다고 다시 올라왔다. 또 TV를 켜려고 하여서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늘 화분에 물을 주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오늘은 물주기를 맡겨 보았다.
수도관이 연결 된 호스를 붙들고 물줄기를 내뿜는 꼭지를 화분에 들이대고서는 흙이 파 엎어지려고 하면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흡족하게 물을 주었다. 물이 그득하게 고일 정도로 주고는 다음 화분으로 가면서 하나하나 모두 60여개의 화분에 하나도 빠짐이 없이 물을 너무 잘 주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려울 거라 생각하였는데, 전혀 그런 기색없이 침착하게 물을 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당당하였다. 처음 시작을 할 때는 잘하면 10개 정도나 주겠지 싶었는데, 생각 보다 너무 차분하게 잘 주어서 결국은 끝까지 모두 다 제 손으로 물주기를 마쳤다.
오늘 하루는 방안에서 산으로 그리고 놀이터로 옥상 화분의 물주기 등으로 일생에 처음 해보는 일들을 제법 많이도 해보았다. 이렇게 조금씩 바깥세상도 보고, 자연도 배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
메마른 서울 시내이지만 약수터에 가니까, 꿩 울음소리를 울고, 산새들이 날기도 하며 길가의 야생초들도 있어 조금이나마 자연과 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어린 것이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렇게 산으로 들로 다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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