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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가 해군기지 건설여부를 놓고 심한 내홍을 앓고 있는 가운데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주'인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평화는 힘으로 얻을 수 없다"며 해군기지 반대의 뜻을 공식화했다. 또 "제주도가 평화를 지키지 못한다면 제주 4·3의 억울한 희생을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4월 13일 김장수 국방장관의 제주도청 방문 현장에서 신부와 수녀 등을 강제 연행한 이른바 '4·13사태' 이후 제주지역 신부와 수녀, 목사, 승려 등 성직자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강력 반발해 '평화 백배'를 하는 등 종교계 차원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나 제주지역 천주교 최고지도자인 강우일 주교가 공식적인 메시지를 통해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밝힌 것은 처음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는 5일 '평화의 섬 제주를 염원하며'란 제목으로 제주교구 내 모든 신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도민들 사이에서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그 사이에서 과연 어느 쪽이 바른 선택인지를 확신하지 못하여 고민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찬성하는 이들은 해군기지 유치를 통하여 국가의 안보적, 전략적 가치를 확보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제주도의 발전을 위한 경제적 가치 증대가 가능함을 역설하고 있으며, 또 반대하는 이들은 이러한 가치가 실현될 가능성이 보장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기지유치를 통하여 환경의 파괴와 평화의 섬 이미지 손상과 윤리적 폐해를 염려하고 있는 등 양측이 다 제주도의 발전과 도민의 행복을 기원하며 좋은 뜻에서 출발하고 있음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4·3 아픔 치유 위해서도 평화의 섬 지켜야
강 주교는 "여기서 과연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를 식별하기 위하여, 저는 교회가 제시하여 온 원칙과 가르침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려야 할 책무를 느낀다"고 밝히고는 '전쟁은 재앙이고,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길이 아니며, 지금껏 한 번도 그러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메시지,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문서를 통해 "국가 간의 무력 경쟁과 '엄청난 양의 무기 증가는 안전과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고 말했다.
"교회는 무력 증강이 결코 평화의 보증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해 왔다"고 밝힌 강 주교는 "많은 사람들은 무기의 비축을 가상의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도록 하는 역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으며, 새로운 무기를 마련하는 데어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의 낭비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막고, 민족들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했다. "과잉 군비는 분쟁의 원인을 증가시키고, 분쟁이 확산될 위험을 증대시킨다"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인용해 군비경쟁의 위험을 거듭 경고했다.
강 주교는 특히 한반도에서 제주도의 역사적 배경과 지정학적 위치가 특별함을 바탕에 깔고는 "제주는 59년 전 4·3사건으로 무고한 생명 3만명이 무참히 학살된 땅으로, 그 대부분은 좌가 무엇인지 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순박한 농민들이었으며, 그들에게 좌우의 이념은 들어보지도 못한 남의 나라 이야기였지만, 이 무고한 생명들을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과 무지한 공권력이 끝없이 짓밟았다"며 "한반도 역사상 이만큼 부조리하고 이만큼 억울한 죽음이 연출된 적이 없다"고 제주에서 벌어진 학살을 아파했다.
강 주교는 "제주의 땅은 그들이 흘린 피를 헛되어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는 "제주의 땅은 그들의 희생을 거름으로 참된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하며, 어떤 이유로든 인간들이 형제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기나 무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땅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면 4·3에서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분들의 희생은 정말 보상받을 길이 없어진다"며 4·3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평화의 섬이 유지돼야 한다고 전했다.
천주교 제주교구를 이끄는 주교가 제주지역 현안에 대해 공식적인 메시지를 통해 주교 본인과 교회의 태도를 밝힌 것은 제주 천주교에서는 처음이다.
한편 국방부는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여부를 조속히 결정할 것을 압박하고 있으며,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TV토론회와 도민여론조사를 거쳐 5월말까지 해군기지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일방적인 로드맵을 밝혀 해군기지 후보지 주민들과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현재 해군이 꼽은 해군기지 후보지로는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와 남원읍 위미1리, 위미2리가 있다. 대부분 지역에선 다수 주민들이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최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어촌계총회와 마을총회를 거쳐 해군기지를 유치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주의 소리(www.jejusori.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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