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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시절이다. 연애는 좋아도 결혼은 싫다니, 이상하다. 할 일이 많아서 결혼을 못하겠단다. 그런 젊은이들이 많은 시대에 자기 인생을 꾸리는 일을 자신만을 돌보겠다는 말이 먹히기도 한다.

서른의 나이가 넘어도 마음은 마치 초등학생인 줄 안다. 인생은 아직 한참이나 남은 줄 안다. 황혼의 우리가 보아도 서른 넘은 여자를 아가씨라 부르기는 서로 난처하다. 이 여사니 김 여사라고 부르기도, 춘자님이니 영자님이라고 부르기 혀끝이 간지럽다. 아직은 하는 일이 좋고 꿈을 먹으며 살아가겠다고 하다가 문득 그 꿈이 깨면 마지못해 결혼을 해 볼까?

내 남자는 누굴까 하면서 이미 백마 탄 왕자는 백설 공주를 품고 떠났건만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아줌마 같은 아가씨들처럼 우리 아들 또한 못지않게 아저씨 같은 총각으로 늙어가고 있다.

벌어 놓은 돈도 없고 가진 직업이 남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 마음만이 소년이다. 소녀와의 사랑을 꿈꾸면서 차가운 현실인 결혼이 동화처럼 달콤한 줄 착각하고 있다. 작년에는 제 어머니 병원의 병상에 모인 친척들 앞에서 목에 힘주고 말했다.

"이번에 미국에서 온 여자친구와 결혼을 할 거예요. 제가 그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간 적도 있고요. 이르면 내년에 결혼할 수 있어요."

결혼할 여자친구가 병상에 한 번 문병을 올 줄 알았다. 아내도 아는 여자 아이였기에. 여자 아이는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르는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있는데도 코빼기도 아니 보이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아들의 헛물을 켰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이벤트를 하고 프러포즈를 했던 만큼 아들에게도 상실감이 컸을 것이다.

그 뒤로 아들 곁에 여자가 오고 떠나갔다. 아들이 누구를 만난다고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부모는 아들에게 누구를 만나느냐고 묻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결혼 대상자를 소개하는 사이트에 회비를 자그마치 백만 원을 지불하고는 소개하는 여자들을 만나고 돌아오곤 했다.

아들이 노력하는 만큼 우리 부모도 아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하라고 운을 떼어놓았다. 마치 산에서 외치면 한참 뒤에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좋은 신붓감이라고 소개가 들어왔다. 두 군데다.

하나는 아내의 친구요, 다른 하나는 처형에게서다. 아내의 친구가 소개를 하는 아가씨는 이렇다. 아내의 친구는 나에게 아내를 소개하여 결혼까지 시켰으니 이대를 걸쳐서 중매를 한 셈이다.

스물일곱 나이에 웨딩디자이너를 하고 있다. 딸 둘 중의 큰딸이다. 부모는 다들 오십대다. 아버지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자신의 일을 승계할 사윗감이면 더욱 좋다고 한다. 우리 부모에게는 버거운 상대다. 그러나 아들을 그 집 데릴사위로 가면 아들을 빼앗기게 된다. 하긴 요즘 아들이 아들인가. 결혼하면 남이 되는 세상에 저들이 잘 살면 그만이지.

처형이 소개하는 아가씨는 이렇다. 서울에서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 지금은 수도권의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를 하는 서른셋의 미혼녀다. 처형과 이웃이라 그 집 살림을 잘 알기에 아가씨의 어머니 살림살이가 야무지기로 소문이 났다. 아들에게는 연상의 여인이나 요즘은 연상의 여자를 좋아하는 시대니 어떠냐.

아들에게 말하니 만나겠다고 한다. 그리고선 아가씨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중매를 한 이들에게서 왜 연락이 없느냐고 채근하는 말에 아내가 아들을 다그쳐서 27세 아가씨를 만났다. 만나고 와서는 좋다 나쁘다는 말이 없다. 무슨 말이 오가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아가씨를 소개한 아내의 친구가 아가씨의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듣고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다. 어렸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나 꿈을 이루지 못했고, 지금 사는 집은 여차저차 하여 부모가 저를 결혼시키려고 이사를 왔고(부모는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지금 직장에서 다른 곳으로 스카우트되어 갈 참이고(아직 가기도 전에 입방정을 떨면 어떻게 하냐), 아버지는 취미 삼아 무엇을 하고 있다(상대방의 부모가 싫어할지 모를 이야기는 삼가해야지)는 등 집에서는 두 마디를 물어도 싫어하더니 처음 본 여자에게 우리 집안일을 홀딱 까발려서 입이 벌어지게 놀랬다.

속을 다 털어놓으니 앞으로 무슨 말을 더 할지 겁이 날 지경이다. 그렇다고 말조심하라고 하면 무슨 말을 들었는가 하여 그 아가씨에게 대한 감정이 나빠질까 걱정 끝에 궁리를 하여 아내가 겨우 한다는 말이 "아가씨를 만나서 말을 좀 아껴라."

이 말로 아들은 그 아가씨에 대하여 정이 떨어진 듯하다. 대체로 아가씨들이 처음 만난 남자와 오고 간 이야기를 어머니와 사이가 좋은 때는 잘한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궁금하다. 그쪽 어머니가 듣고 아내의 친구가 또 아내에게 말이 바로 들어온다.

우리 내외는 여자네 집이 여유가 있으니 고생은 안 하겠다 싶어 안심이다. 처음 고생이 평생 도움이 된다 했으니 시작이 힘들면 평생 힘든 게 요즘 세상이다. 더 만나라고 했으나 일보 전진의 낌새를 아들이 보이지 않고 꿈쩍 않는다. 그래도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안 하는데 하물며 인생의 반려를 제가 싫다면 못하지. 내가 물었다.

"어떠냐?"
"저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요."

아들이 말했다. 그러나 들리는 말은 그쪽 아가씨는 호감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데리고 사냐. 네가 더불어 살 여자니 네가 싫다면 못하는 거지.

아들은 연상의 여인에게 연락을 한 번 하니 그쪽에서 다음으로 미루자 전화를 하지 않는다. 여자를 만나라고 아내가 주로 이야기하고, 나는 다만 지켜보는 아버지로 있지만 참다 못하였다.

"네가 결혼 상대 여자를 우리 부모가 어른들에게 부탁을 해서 소개를 받았으니 상대방에서도 궁금하다. 바로 만나거라. 한 번 만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다시 만나거라. 좋은 사람은 한 번 만나서 알 수 없다."

아들은 화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말한다.

"아버지, 저에게 여자가 있는 것 아시지요."

무슨 황당한 각본이냐. 여자가 있다는 말은 결혼을 생각하는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도 결혼소개업소를 통하여 여자를 만나고, 부모가 소개하는 여자를 만나겠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내 말을 전해들은 아내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연히 아들을 장가보내겠다고 소리 소문 내서 망신만 당하게 생겼네요."

처형에게 연락이 왔다. 소개를 한 여자와 만났느냐는 채근이다. 아들에게 마구 이야기를 하는 아내가 아니다. 아침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아들을 보기가 임금님 뵙기보다 힘들어서 아들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난 토요일 점심에 조심스럽기 말했다.

"이모가 소개하는 여자에게 만나자고 약속했냐."

아들의 표정이 달라지며 화부터 낸다.

"제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요."

이러니 아내의 마음이 편치 않다. "알아서 네가 알아서 하라" 하고는 소리가 커진다. 아들하고 다시 말도 안 하리라 할 만큼 화가 났다.

밤에 외출을 한다는 아들에게 드디어 아내는 참다 못하여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엄마 소원 하나 안 들어주냐. 전화를 걸어서 한 번 색싯감을 만나보라는데 이렇게 유세를 떨 일이 무어냐. 장가가겠다고 아가씨를 소개해달라고 동네방네 소문내서 막상 소개를 받고 이래도 되는 거냐."

어머니가 세게 나오면 고개를 숙이는 아들이 아가씨에게 만날 약속을 겨우 했다.

"어머니, 다음 주에 만나자고 했어요. 됐지요."
"했건 말건 네가 알아서 해라."

우리 부모의 업이 끝날 날이 멀었다. 결혼할 여자가 있다 하여 제가 번 돈이 있어서 집 장만하고 아이 기를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집 한 채뿐인 부모가 집을 정리하여 줄여서 결혼을 시켜야 한다. 결혼을 해서 부모에게 달마다 용돈을 보내 주리라 기대는 아예 하지 않는다. 셋방 사는 부모에게 손이나 내밀지 않았으면 하는 게 부모의 바람이다.

우리 부모는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는 한겨울에 우리 부부의 체온만으로 살 각오를 하고 있다. 그래도 자식에게 맞는 여자와 오순도순 살아가기를 바란다.

내일이 어버이날이다. 아내가 아침에 출근하는 아들에게 한마디를 한다.

"아들아, 내일이 어버이 날인데 선물은 무엇을 할래."
"내일, 저 출장 가요. 어머니는 참. 제가 알아서 하려는데 그렇게 먼저 말하면 제가 하고 싶겠어요."

아내는 그 말에 주춤했다. 생일, 결혼기념일에도 아내는 아들딸에게 미리 말했다.

"생일이 며칠 남았다. 삼일 남았다. 이틀 남았다……."

어느 어머니는 말없이 생일을 기다리다가 생일에 아이들이 꽃 한 송이라도 없으면 섭섭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잊고 있다고 섭섭하기보다 아내는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주의를 일깨워 주어왔다. 그래도 받은 선물이 어떤 것인가. 아이들에게 준 것이 비하면 참으로 초라한 선물들…. 길에서 사는 값싼 것들은 그날이 닥쳤을 때 아이들의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의 액수에 비례하는 것이니 오죽하랴. 선물이 비싸고 싼 것이 아니라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에 아내는 무게를 두어왔다.

이제 아내나 나는 아들이 제 짝을 찾아서 갈 날을 기다린다. 그것은 서로 헤어지면서 자유를 찾는 길이다. 그러나 과연, 아들을 결혼을 시킨다고 우리 부모가 자유로울까. 저승에 가서도 자유롭지 못하거늘.

#아들#결혼#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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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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