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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네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귀하면서도 두려워서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큰 아들 이름도 부르지 않고, '큰 사람'이라고 부르시던 어머니의 맏아들이 서른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장가를 들어 기뻐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제 뵌 듯 눈에 선합니다.
그런 사람의 짝이 된 저를, 철부지에다 말괄량이었던 저를 또 얼마나 귀애하셨는지요.
1년 동안 '강아지' 안아주시지 않던 어머니 마음
언제나 차분하시고 사려깊으신 어머니께서는 한 달에 한 번, 많을 때는 두 번, 세 번씩도 상경해 제 눈치를 살피곤 하셨지요. 태기가 있나 해서요.
그렇게 어머니의 속을 태운 끝에 저는 예쁘고 건강한 딸아이를 낳았지요. 그 때 어머니께서는 "어이구, 내 강아지"하시며 무척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아기를 안아주시지 않는 어머니를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상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해서 잔뜩 투정섞인 말투로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지요.
"어머니께서는 '어이구, 내 강아지' 하시면서 왜 한 번도 아기를 안아 주지 않으세요? 딸이라서 서운해서 그러세요?"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어떤 사람이 낳은 아긴데, 그리고 우리 집안에 19년 만에 아기 울음소리가 났는데, 그럴 리 없다. 아가."
그러시면서도 아기가 돌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안아주시질 않아 서운한 마음이 극에 달한 제가 본격적으로 어머니께 시비(?)를 걸었지요.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옛날 일을 회상하시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네 남편 위로 셋을 먼저 보냈다. 하도 억장이 무너져서 왜 그렇게 되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아기가 예쁘다면서 이 사람이 안아보고 저 사람이 만져보고 하다가 깨끗지 못한 환경에서 병을 얻어 일을 당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조심하는 거야. 그 후부터 나는 아기들이 흙 밟고 다닐 때까지 부모 외에는 누구도 아기에게 손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낸들 왜 이 귀한 새끼를 안아 보고 싶지 않겠냐."
저는 그 말씀을 듣고 '과연 우리 어머니로구나' 감탄했습니다.
자식 여덟 중에 넷을 미국에 보내신 우리 어머니, 어느 날 보리밭 밭둑에 앉아 바람에 스러지는 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보여서 "어머니, 미국 있는 자식들 보고 싶으세요?"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아니, 나는 보고 싶은 사람 없어.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은 돌아가신 우리 엄마와 희선이밖에 없어"라고 하셨지요.
그때가 어머니의 '강아지' 희선이가 일곱살 때쯤이었습니다. 그러구러 세월이 흘러 어머니께서는 저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12년이 됐습니다. 그때의 강아지는 자라서 어엿한 숙녀가 되었답니다.
어머니의 강아지가 빨간 내복을 사왔어요
어머니께서는 늘 말씀하셨지요.
"애기가 너무 영리해서 네가 키우는 데 신경 많이 써야겠다."
네, 어머니 정말로 영리해서, 희선이가 이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강아지가 첫 월급을 타서 빨간 내복을 사 왔네요. "첫 월급 타면 뭐 해드릴까요?"라고 물어보길래 제가 빨간 내복 사오라고 했더니 한 나절을 찾아 헤매다 시장에 가서 겨우 샀다며 진짜로 사왔네요.
어머니, 이제 어버이날입니다. 어머니께서 지금도 저희 곁에 계신다면 저와 함께 손녀가 사온 '빨간 내복'을 입고 "아가, 네 것이 더 곱구나" "아니에요, 어머니 것이 훨씬 고와요"하며 저는 어머니의 손녀를 칭찬하고, 어머니께서는 제 딸 칭찬을 하셨을 텐데….
지난 세월 어머니께 받은 사랑이 가슴 깊이 사무쳐 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빨간 내복 입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