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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일 밤 10시 30분경 버시바우 주한미대사가 서울 하얏트호텔에 마련된 한미FTA 협상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남북관계의 진전 움직임에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제동을 건 발언은 매우 유감스럽다.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노력이 활기를 띄려고 할 때마다 미국이 견제에 나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2ㆍ13 합의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려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견제성 발언이 나왔다는 게 문제다.

지난 5월 4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오찬 포럼에서 있었던 그의 발언 중 충격적인 대목은 "남북관계 진전은 6자회담에 반 보 뒤처져 가야 한다"는 원칙이다.

한국 정부쪽에서 이 원칙의 발언이 나왔고, 워싱턴에서도 이를 좋게 받아들여 2ㆍ13 합의와 한미간 긴밀한 협력관계의 토대가 구축됐다는 것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느냐가 중요하고, 남북관계가 6자회담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을 사실상 반박한 셈이다.

이 장관이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병행추진론'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쪽의 해명이 우선 필요하다.

버시바우의 남북관계 견제 발언, 한반도 평화 도움 안돼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한 미국 쪽 견제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병행추진론' 입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그동안 '속도 조절론'을 앞세워 남북관계 진전에 건듯하면 제동을 걸어온 터에 더욱 노골적인 견제로 나오지 않겠는가.

말할 나위도 없이 한반도 평화 노력에 대한 미국의 '속도 조절론'식 견제 자체가 근본적인 잘못이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할 평화 노력에 이런 저런 조건을 걸고 나선다면, 평화에 대한 '진정성'의 믿음이 가겠는가.

평화의 기본 전제인 신뢰 구축부터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6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아온 북미간의 불신에다가 남북간의 불신까지 겹쳐서야 6자회담 전망은 캄캄할 게 뻔하다.

"포용정책만 하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평화를 침해해도 평화 분위기만 진작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버시바우 대사의 말도 문제다.

'한반도 비핵화'가 기본 원칙인 한국 정부부터가 그런 결과를 용납하기 어렵다. 한국 국민의 여론도 그대로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그의 발언은 한국 정부의 기본 원칙을 망각한 처사다. 한국 정부와 국민의 합리적 판단과 의사 결정 능력을 존중한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같은 발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한반도 평화체제의 비전을 묻는 질문에 주된 당사자는 남북한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그는 남북한의 '당사자주의 원칙'부터 존중해야 할 것이다.

9ㆍ19 공동성명도 남북간 고위급 회담의 결과를 토대로 이룩되지 않았던가.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남북관계가 6자회담의 발전 동력임을 인정하고 남북관계 진전에 제동은커녕 전폭적으로 이를 지원해야 마땅하다.

남북간 화해ㆍ협력사업에 따른 개성공단 조성 결과 북한은 전략적 요충지인 개성에서 수개 여단 규모의 북한군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 만큼의 한반도 평화를 이룩할 또 다른 방책이 과연 있는지 미국에게 묻고 싶다.

개성공단사업의 평화적 의미는 이처럼 엄청나다. 그럼에도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대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을 한사코 포함시키려 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의 진전을 거부하고 있는 꼴이다.

▲ 부시 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4월 27일(현지시각) 캠프 데이비드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 백악관 홈페이지

'속도 조절론'의 대상은 사사건건 트집잡는 일본

미국이 '속도 조절론'을 내세워 견제해야 할 대상은 남북관계나 개성공단사업이 결코 아니다. 미국이 정작 견제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6자회담 진전을 가장 앞장서서 가로막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 세계전략상 가장 아끼고 지원해마지 않는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북한 핵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건듯하면 들고 나오는가 하면, '북한 제재론'을 부르짖어 다른 참가국들의 눈총을 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디 이 뿐인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롯해서 과거 침략을 미화시키는 역사 교과서 왜곡과 망언, '군대 위안부' 문제의 일본 정부 무책임론 등으로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아픈 상처를 들쑤시곤 한다.

일본은 독도 문제 등 이웃 나라들과의 영토 분쟁 도발까지 서슴지 않으며, 마음 놓고 전쟁에 개입할 수 있도록 평화헌법 개헌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전략이 날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이 '동아시아 최강의 전투기'로 알려진 5세대 전투기 F-22를 100대나 구입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가들이 과거 일제 침략의 만행을 떠올리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일본의 군사대국화 전략으로 인한 동북아 군비경쟁의 소용돌이를 참으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판에 미국은 세계전략상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바라며 일본과의 군사 일체화 단계로 미일 군사동맹 관계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한반도 평화, 나아가서는 동북아 평화체제를 궁극적 목표로 한 남북관계의 진전을 미국이 '속도 조절론'을 들먹이며 견제할 일이 아니다. 한반도나 동북아의 평화에 대한 위협 요인은 남북관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괴물'로 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촉진하는 미일 군사동맹 관계강화야말로 '속도 조절'의 0순위 대상이다. 과거 침략에 대한 사죄조차 거부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견제하는 일이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의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남북관계, #버시바우, #6자회담, #아베, #미일 군사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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