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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어머니를 불렀다. 왜?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신다. 조금 과장해 가며 어제(6일) 너무 힘들게 일을 해서 온몸이 쑤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논두렁 바르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라면서 한숨 자라고 하셨다.
"자기는 무슨…. 대낮에…. 좀 있다 논에 물 보러 가야 해요."
어머니가 안쓰러워하신다. 바로 이때다 싶었다. "어무이. 나 이것 좀 해 줄래요? 이거요" 하면서 부항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뭐 하는 거냐고 하셨다. 그리고는 부항기 상자를 열고 살펴보시더니 아주 재미있는 비교를 하셨다.
"이거 소 모가지에 거는 핑경같네? 소도둑놈들은 소 훔쳐갈 때 제일 먼저 핑경부터 떼놓는다 카든데."
그러고 보니 부항기 컵이 핑경 닮았다.
"소 핑경이 양쪽으로 두 개짜리가 있고 모가지 밑에 다는 항 개짜리가 있는데 등그리에 쇠파리 쪼츨라꼬 모가지를 뒤로 휙 하믄 땅글땅글 하는기라. 이기 그거 가치 생겼네?"
나는 웃통을 벗고 엎드리기 전에 부항 사용법을 필담을 곁들여 가며 설명했다. 내 팔뚝을 걷어 시범을 보이고는 어머니에게 해 보시라고 했다. 부항기를 잡는 게 서툴고 압축이 잘 되지 않아 컵이 자꾸 떨어졌다.
어지간해졌을 때 어머니 앞에 쭉 엎드렸다.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만난 듯 어머니가 부항을 뜨기 시작하셨는데 부항이 하나 붙을 때마다 나는 시원하다고 말했다. 제대로 등에 붙는 부항보다 굴러 떨어지는 부항이 더 많았지만 뭉친 근육이 풀리고 뻐근하던 어깨 죽지도 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어이구. 시원하다. 어머니 의사 다 됐네요. 어이구 시원해라."
"이기 암매 공기를 자꾸 집어넣으니까 그래서 시원항가배? 바람을 자꾸 일어키믄 여름에 부채가 그래서 시원항거 아이가."
나름대로 어머니가 부항기의 치료원리를 터득하신 모양이다. 내가 본심을 드러낼 때가 예상보다 일찍 왔다.
"어무이가 너무 잘 하신다. 언제 해 봤는갑따. 그렇죠?"
"아이다. 내가 언제. 봉께 그렇네. 바람 부치니까 시원하지 뭐."
"맞아요. 맞아. 바람 집어넣으니까 시원하네요."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어깨 죽지를 돌리면서 이제 전혀 아프지 않다고 큰 소리쳤다. 내일도 해 달라고 하니까 좋아하신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대소변도 옳게 보지 못하시는 어머니. 당신 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어 옷 입는 것까지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어머니는 자식 아픈 몸을 치료하게 된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자꾸 부항기를 만지작거렸다.
병들고 늙으신 우리 어머니. 더워질 때쯤 되면, 묵은 김치 씻어 넣고 통밀가루 반죽하여 보릿고개 넘으려고 징그럽게도 많이 먹던 그 쉰내 나는 수제비를 직접 만드시게 하여 얻어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