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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비음산 포곡쉼터 앞에서.
창원 비음산 포곡쉼터 앞에서. ⓒ 김연옥
세상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들여름달 5월이다. 무엇에 쫓기듯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늘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껴들고 시원한 바람도 노닥거리다 가는 푸르고 싱그러운 숲이다.

우리집에 어린이가 없으니 지난 5일은 내겐 덤으로 얻은 휴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가깝게 지내는 콩이 엄마와 둘이서 비음산(510m, 경남 창원시) 산행을 나서게 되었다.

나는 마산 월영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김해에서 오는 콩이 엄마와 만나기로 약속한 창원지방법원(창원시 사파동)을 향했다. 버스에서 내린 시간이 오전 11시 20분께. 꼬박 1시간이 걸렸다. 콩이 엄마는 벌써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부근 동성아파트를 거쳐 비음산 자락에 있는 국수집 앞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다.

소달구지 덜컹대는 시골길 같은 정겨운 길이 있어 나는 비음산이 좋다.
소달구지 덜컹대는 시골길 같은 정겨운 길이 있어 나는 비음산이 좋다. ⓒ 김연옥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찾는 비음산. 창원시와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얼마 가지 않아 흑염소 네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한가로운 풍경을 보고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우리집에는 6년 전부터 키우고 있는 '두두'라는 개가 있다. 나는 '두두'를 통해서 개도 사람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버려진 개들이나 식용으로 기르는 가축들을 보게 되면 어쩐지 불쌍한 생각부터 앞선다. 이따금 내가 유별난 느낌도 들지만 콩이 엄마와는 공감대를 이루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자연스레 나눌 수 있어 좋다.

창원 비음산 산철쭉꽃.
창원 비음산 산철쭉꽃. ⓒ 김연옥
비음산을 오르면 소달구지 덜컹대는 시골길 같은 정겨운 길이 있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그 한가한 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동요를 부르는 '철부지'의 남기용 선생님 이야기에 이르자 마음이 또 아파 왔다.

평소 하모니카도 멋들어지게 불던 그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간암 소식을 듣고 나는 적이 당황했었다. 얼마 전 입원해 계시던 선생님에게 가까운 사람들과 같이 문병을 다녀오고부터는 살아가는 일들이 왠지 심드렁해져 버렸다.

비음산 진례산성 동문에서. 성벽은 무너지고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비음산 진례산성 동문에서. 성벽은 무너지고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 김연옥
우리는 진례산성 동문이 있던 곳을 구경하러 봉림산 쪽으로 조금 내려갔다. 성의 둘레가 4km에 이르는 진례산성은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이 축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성벽 대부분이 붕괴되어 그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비음산 정상에서. 창원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비음산 정상에서. 창원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 김연옥

진례산성 남문 쪽에서 비음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진례산성 남문 쪽에서 비음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 김연옥
비음산에는 산철쭉이 많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주일 정도 늦게 찾은 것 같다. 연분홍 산철쭉꽃이 벌써 많이 졌다. 올해는 더운 날씨 때문인지 꽃 피는 시기가 예년에 비해 빠른 편이다. 산행 내내 못내 아쉬워하면서 비음산 정상에 이른 시간이 오후 1시 10분께. 곧장 진례산성 남문 쪽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긴 의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이 쉬어 가는 나무 사이로 군데군데 연분홍 꽃불 흩어지는 산철쭉밭을 무심히 바라다보았다. 우리들 삶은 마치 욕심으로 허덕거리며 정신없이 달리는 급행열차 같다. 모두들 너무 바쁘게 살아간다. 그래서 잠시라도 한가한 경치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우두커니 있고 싶어진다.

시원한 바람이 쉬어 가는 나무 사이로 연분홍 꽃불 흩어지는 산철쭉밭을 그저 바라다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쉬어 가는 나무 사이로 연분홍 꽃불 흩어지는 산철쭉밭을 그저 바라다보았다. ⓒ 김연옥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
환한 봄 햇살 꽃그늘 속의 설렘도 보지 못하고
날아가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
예순에 더 몇 해를 보아온 같은 풍경과 말들
종착역서도 그것들이 기다리겠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산역에서 차를 버리자
그리고 걷자 발이 부르틀 때까지
복사꽃숲 나오면 들어가 낮잠도 자고
소매잡는 이 있으면 하룻밤쯤 술로 지새면서

이르지 못한들 어떠랴 이르고자 한 곳에
풀씨들 날아가다 떨어져 몸을 묻은
산은 파랗고 강물은 저리 반짝이는데

- 신경림의 '급행열차를 타고 가다가'


우리는 비음산에서 내려와 마산의 한 예식장에 들렀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주례를 맡은 결혼식이다. 기나긴 인생길을 함께 걸어갈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 결혼식이 기억에 남는 것은 순전히 신랑 동생이 마련한 경쾌한 무대 때문이다.

콩이 엄마도 연분홍 산철쭉밭에 뛰어들었다!
콩이 엄마도 연분홍 산철쭉밭에 뛰어들었다! ⓒ 김연옥
호루라기를 불고 하객들에게 박수까지 신나게 치게 하는, 참으로 이색적인 결혼식 풍경을 연출했다. 그리고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요란한 춤동작으로 한바탕 흥겨운 잔치판이 벌어졌다. 나는 한순간 일상의 무거움을 털어 버리는 가벼운 유머를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조금은 진지하게, 조금은 가볍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경남창원시비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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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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