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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39명의 충화학교에 개관된 도서관
전교생 39명의 충화학교에 개관된 도서관 ⓒ 오창경
충화초등학교는 부여군 충화면에 있는 전교생 39명의 작은 학교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충화초등학교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도서관이 생기면서이다.

작년 가을, '삼성그룹'과 '책 읽는 사회' 문화재단과 <한겨레신문사>의 후원으로 이 학교에 1억원이 들어간 도서관이 생겼다. '시냇가의 나무 한 그루'라는 이름마저 예쁜 도서관에는 아이들의 키 높이에 맞춘 낮은 서가가 인상적이다.

파스텔 톤의 인테리어는 아이들의 꿈의 색채가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환상적이다.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영상세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최신 영상 시설과 자료들도 갖춰졌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틈이 나는 대로 도서관을 찾는 발길들이 빈번해졌고 사물함에 교과서를 놓고 빈 가방만 들고 다니던 아이들의 가방에는 적어도 한 권씩이라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들어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에 생긴 도서관은 학부모들의 의식마저 바꾸어 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겨울방학동안 자발적으로 '어머니 도서 도우미' 6명이 구성되었고 학기가 시작되면서 정식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충화 어머니 도서 도우미들'은 2개조로 나뉘어 2주에 한번 도서관에 나와서 청소와 도서 정리를 하고 아이들에게 독서 지도도 해준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 도서 도우미 중에는 도서관학과 출신으로 대기업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어머니와 국문과 출신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어머니가 있어서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는 큰 힘이 돼주고 있다.

충화초 3, 4 학년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독서 논술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충화초 3, 4 학년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독서 논술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 오창경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도서관 지원에 힘입은 충화초 안창식 교장 선생님은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10시간에 걸친 학부모 독서지도 강좌까지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아이들에게도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독서 논술 시간을 개설해 책의 향기가 가득한 도서관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올바른 독서법에 관한 수업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비록 전교생이 39명밖에 안 되는 충화초 아이들의 '노는 물'은 이제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보라색 식품에는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는 '안토시아닌' 이라는 성분이 많대요."
점심 급식으로 흑미 밥이 나오자 3학년 완휘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죠. 당근에는 카로틴이라는 영양성분이 녹차에는 카테킨이라는 성분이 있대요."
완휘의 유식함에 질세라 같은 3학년 친구인 제선이가 한 몫 거들었다.

충화초 도서관에는 아직 채워야할 서가가 남아 있다. 시골 마을 아이들의 독서 열풍에 힘을 보태주실 분들의 손길로 책들이 채워지기를 기대해본다.
충화초 도서관에는 아직 채워야할 서가가 남아 있다. 시골 마을 아이들의 독서 열풍에 힘을 보태주실 분들의 손길로 책들이 채워지기를 기대해본다. ⓒ 오창경

초등학교 3학년들이 나누는 대화 치고는 너무 고급하고 현학이 묻어나는 이런 대화가 가능해진 것은 다 도서관을 통해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도시의 아이들이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한 사교육의 혜택에 만족하는 동안 충화의 아이들은 자유로운 지식의 향연을 만끽하게 되었다. 다양한 사교육에 접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충화초에 마련된 '시냇가의 나무 한 그루 도서관' 이야말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된 셈이다.

"한글도 제대로 모를 것 같은 유치원과 1학년 아이들이 고학년을 따라 도서관에 와서 의젓하게 책을 읽는 모습을 흉내라도 내는 것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도서관 담당 교사인 신봉연 선생님은 충화초에 도서관 개관을 위해 <한겨레신문사>에 직접 응모한 장본인으로 조건이 좋은 학교로 발령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효과적인 도서관 운영을 위해 전근을 포기 했을 정도로 열의가 대단한 분이다.

"정말 아이들이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어요. 지난 월말 고사에서 국어 성적도 향상 되었구요. 이런 추세라면 우리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아이들이 올 한 해 동안 다 읽어버릴 수도 있겠어요."

조선일보가 후원한 강남구청 스쿨업그레이드 지원 도서가 도착한 모습
조선일보가 후원한 강남구청 스쿨업그레이드 지원 도서가 도착한 모습 ⓒ 오창경

안창식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의 변화에 놀라워하면서 동창회와 자선단체 등을 통해 한 권의 도서라도 더 기증 받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런 성과로 '조선일보와 함께하는 강남구청 스쿨업그레이드 지원도서' 5백여 권이 도착했고 동창회로부터 도서 기증에 대한 약속도 받아 내게 되었다.

신봉연 선생님은 앞으로 '동화 작가 초대의 밤'과 '가족 영화 상영' 기획해 충화 시냇가의 나무 한 그루 도서관이 지역민과 함께 하는 문화 사랑방으로 거듭나는 방향도 모색할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어린 시절 독서를 통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경험을 쌓은 아이들과 자의 반,타의 반으로 학원가를 순례하며 성장한 아이들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는 않더라도 충화초 아이들은 도서관을 통해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 독서의 경험이 사회생활에 있어서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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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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