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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1일 미국 하원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 뒤로 대표적인 네오콘 세력인 체니 부통령(왼쪽)이 서 있다.
지난 1월 31일 미국 하원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 뒤로 대표적인 네오콘 세력인 체니 부통령(왼쪽)이 서 있다. ⓒ 백악관 홈페이지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니알 퍼거슨이 그린 팍스 아메리카나 종말 이후의 세계는 더욱 어둡다. 그는 미국의 외교전문잡지인 <포린어페이> 2004년 7·8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 패권시대가 종말을 고할 경우 세계는 다극체제가 아니라 악몽과도 같은 "무정부적인 암흑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주장했다.

퍼거슨은 미국 패권의 쇠퇴를 세 가지 결핍(deficit)에서 찾고 있다.

첫째는 '재정 결핍'으로, 미국 경제가 과도하게 외국 자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병력 결핍'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겪으면서 군 입대자의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주의의 결핍'으로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개입이 필요한데, 미국 여론은 이에 대해 갈수록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이에 반해 중국이 경제성장을 지속하기에는 금융시스템 등 내부적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고, 유럽연합의 노후화가 가속화되고 있어 패권적인 지위에 올라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 패권주의의 쇠퇴는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유엔·국제통화기금(IMF)·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의 쇠퇴를 동반하게 될 것이며, 이에 반해 정보통신 및 무기기술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테러집단이 미국의 공백을 메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러한 세계질서를 무극(Apolarity) 체제라고 불렀다. 유럽도, 중국도, 아랍세계도, 유엔도 미국의 지도력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권력이 공백기에 접어든 암흑 세계에서는 제국의 쇠퇴와 종교적 광신주의, 약탈과 경제 침체, 그리고 소수 문명권의 요새화된 지역으로의 후퇴 등이 그 특징으로 나타나고, 그 결과는 중세 암흑시대를 능가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퍼거슨의 경고이다.

미국이 잘했다면...

PAC-2 미사일 발사대와 이륙을 준비하는 A-10기. 미국은 지금도 우주의 군사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PAC-2 미사일 발사대와 이륙을 준비하는 A-10기. 미국은 지금도 우주의 군사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 이후의 세계의 모습을 점치기란 쉽지 않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길게는 2차대전 이후, 짧게는 소련의 몰락 이후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는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가치 판단이 개입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 반감을 갖고 있거나 피해를 당한 쪽에서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환영할 것이다. 물론 반대 진영은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미국 스스로가 팍스 아메리카나가 유지되는 세계가 그렇지 않은 세계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냉전 시대와 같은 양극체제의 세계였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을 팍스 아메리카나 신봉자들은 유념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 또한 테러리즘의 확산 역시 미국의 무분별한 일방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추구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이 군사패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냉전시대 대표적인 군축조약인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을 깨고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제2의 냉전'을 운운하면서 군비증강과 군축조약 파기를 시도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의 유산을 차버리지 않고 북한과의 협상을 선택했고, 개혁파가 집권했던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면서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핵무기 확산의 공포도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세계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배출하는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수용하고 지구온난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종말론적 예언이 판치는 자리에는 미래의 세대를 구원할 수 있는 생산적인 논의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두려워할 일인가

지난 2005년 10월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유엔창설 60주년 기념 '자유동맹 10·24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지난 2005년 10월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유엔창설 60주년 기념 '자유동맹 10·24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뉴스위크> 편집인은 파리드 자카리아는 1월 27일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통해 "미국 패권의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앞서 언급한 팍스 아메리카 종말 이후의 세계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지적의 연장성상에 있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고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미국 패권주의의 종말 이후의 세계를 잘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좀 삐딱하게 해석한다면, 이미 지적 리더십을 상실한 미국의 조바심의 표출이자, '협박'을 통해 패권주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의 반영일 수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반도는 강대국의 흥망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아온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올해로 125주년을 맞는 한미관계사에서 미국의 반복된 방기와 개입 속에서 흥망을 달리 해왔다.

한국, 그리고 한반도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수혜자인지, 피해자인지의 문제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수혜자라고 보는 사람들은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라는 주장을 앞세워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피해자라고 보는 사람들은 미국에게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에 맞설 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보고, 후자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미국은 이러한 익숙한 사고틀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아니라, 여러 강대국 가운데 하나인 미국을 맞이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재앙이 될지, 아니면 축복이 될지는 세계질서의 변동이라는 '구조의 힘' 못지 않게, 한국이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느냐는 '주체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게 될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한미 관계#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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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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