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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돼지가 평생을 지내게 될 스톨. 충남의 한 돼지농가에서.
어미돼지가 평생을 지내게 될 스톨. 충남의 한 돼지농가에서. ⓒ 전경옥

광우병의 논란이 계속되는 중 미국산 쇠고기수입이 재개되었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몇년간 발생한 광우병,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가 논란이 되었던 것은 가축에게 발생한 질병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 FTA가 체결됨으로써 농가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농가보상에 대한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접근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과연 우리 축산업은 안전한가? 이미 현실화된 시장개방에 맞서 경쟁력을 갖출 방법은 없는가?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대상인 가축들은 효율성이란 명목아래 공장에서 찍어내 생산되듯이 대량 공급되고 있지만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자본주의적 산업구조속에서 일종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질병은 인위적인 조건에서 발생했다. 계속 이런 방식으로 괜찮을까. 보다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 농장동물의 복지이다. 동물의 복지란 인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용되는 동물들의 삶에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해 동물을 오남용하는 행위를 막고자 하는 취지에서 도입된 개념이다. 산업화시대에 인간에 의해 이용되는 동물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입법화된 동물보호법이 농장동물에게도 예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991년 최초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에는 가축들의 복지를 위한 조항이 전무했다.

2006년 국회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는 도축과 도살시 고통최소화의 원칙과 운송규정이 미비하게나마 마련되었을뿐 축산정책과 농업종합대책에 동물복지의 중요성은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최초로 농장동물의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

사)한국동물복지협회(대표 조희경)는 지난 2년간 우리나라 축산업(양돈산업을 중심으로)현장을 답사하고 보고서를 작성, 지난 4월 27일 동영상을 공개했다. 개정된 동물보호법 조차 반려동물 중심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동물보호실정에서 농장동물의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다루어지게 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 보고서는 한국의 동물보호운동사상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국내 육류 소비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돼지, 사육과 운송 도축과정은 과연 어떠할까.

돼지의 슬픈 일생

자연상태의 돼지는 특별한 훈련없이도 잠자리와 배설할 곳을 구분하고 시각, 청각, 후각이 예민하게 발달, 코로 땅을 파 땅속의 풀뿌리 등을 섭취하는 습성이 있으며 군집생활을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현대의 축산업은 고기를 만들기 위해 동물을 생산하는 대형화 기업화된 축산시스템을 의미한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경제원리는 축산업에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동일한 조건하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해내기 위하여 밀집사육 방식을 지향하게 된다. 규격화된 사육조건에 동물들을 맞추다 보니 동물의 본능은 무시되었고 110kg의 규격화된 몸집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자연적 수명이 10-15년 정도인 돼지가 태어나 도축장으로 가기까지의 기간은 160-180일에 불과하다.

번식용 암퇘지는 생후 210일이면 교배를 시작 3년간 임신과 출산만이 반복되는데 폭 60cm 의 공간인 스톨에서 겨우 앉았다 일어서는 정도만이 허용된다. 태어난 새끼들은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꼬리와 송곳니를 잘리는데 이 때 수의학적 마취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미의 젖을 뗀 후 육성돈사에서 살을 찌워야 하는 돼지들은 평균 마리당 0.92㎡정도의 공간에서 지내게 된다. (몸 길이 1m가 넘는 돼지들에게 이 공간이 과연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돈사에서 배출되는 배설물 처리 형태는 거의 대부분 슬러리 돈사로 콘크리트 재질의 바닥으로 된 휴식공간에는 깔짚등이 제공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고 배설물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환기와 통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암모니아와 황화수소, 이산화탄소 등의 높은 농도로 돈사 내 공기의 오염상태는 심각하다. 고온스트레스와 일교차에 민감한 돼지가 이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항력이 약화되고 질병감염의 위험은 더욱 높아지는데 2005년을 기준으로 볼 때 국내 생산돼지의 총 폐사율은 28.9%에 이른다.

사육조건으로 인한 질병이 생산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자 이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항생제사용이 일상화되었다. 이미 WHO 가 가축의 항생제 내성균이 인체에 영향을 미쳐 사람의 질병치료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선포하고 이에 따라 유럽연합을 비롯해 여러 국가들이 항생제 사용을 단계적으로 제한해나가고 있는 실정에서 OECD 국가 중 항생제사용 최대인 우리나라의 축산업 현실, 과연 우리의 삶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유럽은 관행적인 축산업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U는 2004년 유럽헌법 조약에 동물의 보호, 복지 조항을 명문화했고 2006년 1월 23일 EU 집행위원회는 동물복지 1차 5개년 행동계획 (2006-2010)을 공표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EU의 농민단체인 COPA 와 COGECA 역시 높은 동물복지 수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들의 산업이 국제간 거래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은 2013년부터 동물실험 화장품의 판매가 전면 금지되며 어미돼지의 스톨 사육 또한 금지된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과의 FTA 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동물의 복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할 시점에 놓여있다.

자비로운 죽음을 연구해야 하는 의무

한국동물복지협회는 현재 싸이월드를 통해 도축장의 현실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고 인도적인 도축에 대한 입법요구를 하고 있다. 도축장에 도착한 돼지들에게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전기봉 타격이 가해진다. 피를 흘린 채 도축장 앞에 방치된 돼지에게 최소한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어디에도 없다. 제한된 시간 안에 돼지들을 도축해야 하는 기업시스템하에서는 돼지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제 곧 죽어 고기가 될 존재에 무슨 자비 따위가’ 라는 의식이 앞선다.

고통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도축하는 인도적인 도축방식을 처음으로 개발한 것은 미국의 동물행동학자 탬플 그랜딘이다. 자폐증환자였던 그랜딘은 자폐증환자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동물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도축장에 도착한 동물들의 행동방식을 해석해냈다.

언어와 추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일반인과 달리 자폐인과 동물들은 세상을 하나의 그림으로 인지한다. 따라서 도축장의 낯선 환경은 동물들에게 매우 공포스러운 것이며 스트레스를 받으며 도축된 동물들은 육질에도 영향을 미친다(PSE육, 일명 물퇘지고기)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랜딘은 공포란 동물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환경이라고 말한다.

그랜딘은 “인간이 육식동물의 습성을 버릴 수 없어 동물을 사육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가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인간이 동물을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자비로운 죽음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체적인 폭력만이 학대인가. 한 생명을 무참한 고통속으로 몰아넣는 과정이 용인되어야 하는가.

전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조광호 교수는 이제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꿀 시기라고 말한다.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도 행복하다는 사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고기제공수단으로 전락한 동물들이 발생시킨 질병은 인간의 건강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연에서 인간과 동물은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식탁위에 올라온 삼겹살 한점에 최소한의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이제 인간에게 배부른 하소연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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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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