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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철군 여론 앞에서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일만 남아 있다. 사진은 미군 순찰대에 돌을 던지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들.
ⓒ AP=연합뉴스
9일 나온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민의 60% 이상이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미군 철수 후 이라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이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같은 날 체니 부통령은 이라크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사전 발표 없이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알-말리키 총리와의 만남에서 체니 부통령은 이라크의 폭력상황을 종식시키고 미군 철수를 앞당길 수 있도록 빠른 시일 안에 이라크 의회 내 다수 시아파와 소수 수니파가 권력을 공유하는 정치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라크 상황 안정과 미군 철수를 위한 마지막 수단이 될 3만 명의 미군 추가 파병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부시에게 압력을 가하는 민주당

한편 이라크 내 미군 작전 비용을 놓고 부시 대통령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은 2-3개월 정도의 작전 비용은 승인하겠지만 대신 올 10월부터 단계적으로 미군을 철수시키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1월 의회 선거에서 미국 국민들이 이라크 전에 대한 반대를 분명하게 보여줬으므로 자신들에게는 부시 대통령의 대이라크 정책을 바꿔야 할 책임이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언론들은 지난 4년 동안 3300 여명의 미군을 잃고도 이길 기미가 없는 전쟁에 대해 미국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이제 모두 한 마음으로 이라크에서 어떻게 발을 뺄 것인가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모두가 미군이 철수할 경우 이라크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68%의 미국인은 미군이 철수할 경우 이라크에서 내전이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내전'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들은 남의 나라 내전에 미국이 자국 병사를 희생하면서까지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10월부터 단계적으로 미군을 철수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안정화시키고 미군을 철수시키는데 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늘어가는 미군 희생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폭력 상황을 진압하기 위한 강경 대응 때문에 희생이 늘어가고 있으므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역시 빠른 시일 안에 미군을 철수 시키는 것이 목표다. 다만 자신이 시작한 전쟁을 패배로 장식하지 않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이라크 정부에 하루 빨리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 정치적 합의를 이루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내에선 이제 소수의 양심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 정부, 국민, 야당 어느 누구도 이라크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모두가 현 시점에서 미군이 철수할 경우 내전과 유혈 사태가 심화될 것을 알고 있다.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군 간부들과 일반 병사들도 미군이 철수할 경우 폭력 상황이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집에 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상태에서 미군이 발을 빼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만 찾는 미국

그렇지만 부시 행정부나 민주당, 대다수의 미국인들 모두 내전은 미국이 간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애초 내전을 촉발시킨 미국의 책임은 외면하고 자신들의 국가적 이익만 좇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미군은 철수시키고 국제 사회의 틀 안에서 이라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미군 철수 후 이라크 안보를 어떻게 담보하고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줄일 것인지 아무런 가시적인 노력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정치적 해결은 사실 현재 이라크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이라크는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생긴 권력 공백 상태에서 종파를 내세운 정치세력과 무장세력이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무기와 자금을 대는 외부의 영향력까지 가세해 폭력 상황이 극에 달한 상태고 상황은 더욱 꼬여가고만 있다.

그 동안 일어났던 수 많은 내전이 보여줬듯이 이런 상황에서 권력 다툼에 열심인 정치세력과 무장세력은 일반 국민들의 생존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은 보통 권력을 잡기 위해 치열한 유혈 분쟁을 계속하고 여기에 일자리 없고 혈기 넘기는 젊은이들이 동참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의 뼈대를 세우고 소수의 군대를 훈련시키고 법 제도를 확립하는 피상적인 접근으로는 최소한의 평화도 이뤄지지 않는다.

민주당이 말하듯 10월부터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계획이라면 현재 미군 철수 후 대책이 나와 있어야 하고 미국이 유엔 등 국제사회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는 종파적 합의에 의한 안정된 정부 수립은 물론 생존 문제 해결과 군대를 이용한 안전한 생활 환경 확보 등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한 치밀하고 포괄적인 대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장세력들은 미군 철수를 자신들의 유혈 분쟁을 더욱 확대시켜 권력을 넓혀가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복잡한 일까지 자신들이 해결할 책임은 없다고 보고 있다. 애초 이라크를 피로 물들인 도덕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태그:#이라크, #미국, #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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