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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9일 재경순천사범총동창회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었다. 서울에서 9시 정각 출발이었지만, 길을 잘못 들어 다른 역에서 내린 동문이 있어서 조금 기다리다가 9시 13분 출발을 하였다. 서울역 대우센터 앞에서 출발하는 1호차에는 8, 12회 동문들이 탑승을 하였고, 잠실 종합운동장역 앞에서 출발하는 2호에는 11, 13, 16회가, 3호차에는 4, 6, 7, 14, 15회가 승차하였다.
서해 대교를 건너 행당도 휴게소에서 1, 2, 3호차가 만나서 서로 인사도 나누고 잠시 쉬었다가 출발을 하게 되었다. 가는 동안에 간단한 행사 관계 소개 외 동문 활성화를 위한 안내, 그리고 인터넷에서 싸이월드의 동문방을 잘 이용하자는 안내가 있었다.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려는 우중충한 날씨 속에 목적지인 안면도에 도착을 하여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술이 제공 되었다. 맥주와 소주가 있었지만, 대부분 맥주로 건배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갑작스럽게 많은 손님을 받은 식당은 정신없이 돌아가서 반찬이나 주문들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등 약간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여자 회원들에게 사이다를 따주고 나서 보니, 술병들 사이에 매실주 설중매 병이 보인다. 다른 상에도 모두 놓여 있어서 나는 "어어? 언제 설중매도 가져다 놓았었네? 우리 그걸 한 잔 할까?" 하였지만 술을 마실 사람이 없었다.
"아니 설중매를 사다 놓았으면 저것으로 먹을걸 그랬지?" 했더니 여자 회원들이 "그럼 가지고 가서 마시지 뭐?" 이렇게 하여 마시지도 않은 채 놓여 있는 그 설중매 술병을 가져가기로 하였다.
누군가 가방에 넣어 온 술병은 버스에 오르자 남자 회원들에게 넘겨져서 채규주 회원 의자 보관대에 넣어졌다. 일단 안면도 꽃박람회장과 휴양림의 산림욕장으로 향한 우리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속에서 오늘 회원들에게 주어진 우산을 쓰고, 꽃 박람회장을 한바퀴 돌기로 하였다.
입장을 하여서 산등성이를 오르는데 맨 먼저 눈에 뜨는 것은 '금송'이라는 나무였다. 우리나라 곳곳에 심어진 '금송'을 보면 참 정신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늘 이야기하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 금송이라는 나무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나무로 일본의 왕실을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새해에 신사 참배를 할 때에 이 금송 가지(아주 작은 한두 마디씩 자른 것)를 가져다 바치면 한 해 동안 큰 복을 받을만한 큰 공을 들인 것으로 여길 만큼 중시하는 나무이다. 그런데 이 금송을 우리나라 공공기관이나 명승지, 절간 등에서 쉽게 보면 나는 꼭 이 나무의 내력을 이야기 해주면서 자리를 옮기도록 종용을 해주고 있다. 청남대에서, 월정사에서,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에서도 이렇게 주장을 하였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서 전망대에 갔지만, 비가 내리면서 잔뜩 찌푸린 날씨는 안개처럼 시야를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면도 휴양림의
전망대에 올랐건만,
비 오고 안개 끼어
시야는 가려지고
보이는 것은
오직 안개뿐이어라.
즉흥시를 읊으면서 앞장서서 내려 오다보니 나무에 붙은 표찰에 '벗나무'라고 적혀서 붙여 있었다. 조금 내려오니 바로 아래에 관리사무소 같은 건물 안에서 누군가가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을 두들겨서 그를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저기 전망대에서 내려오다 보니 '벚나무'에 '벗나무'라고 'ㅈ' 받침이 아닌 'ㅅ'받침을 해 놓았던데, 고쳐야 쓰겠더군요" 하니까 이 공무원인지 관리사무소 직원인지 하는 사람 왈 "아 그래요? 그런데 어떤 책에는 'ㅈ' 받침이 아닌 'ㅅ' 받침을 한데도 있던데요?" 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다시 "말도 안 되는 말이죠. 'ㅈ' 받침이 맞는 표기지 'ㅅ'받침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아주 이야기가 되었으니 저 입구 쪽에 '금송' 말입니다. 그거 일본왕실을 상징하는 나무라는 거 아십니까? 그 나무를 거기 심어서는 안 되죠. 좀 더 눈에 덜 띄는 곳에 심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걸 꼭 거기 입구에 그렇게 심어야 하겠습니까?"라고 알려 주면서 꼭 고쳐 달라고 주문을 하였지만, 나무 옮기는 것에 대해서 이러 쿵 저러 쿵 말을 하였다.
"일단 알려 드린 것이니 기회 있으면 고쳐 보시고 자신의 힘으로 안 된다면 오늘 이런 건의가 있었다고 적어서 결재를 올리십시오" 하고 돌아서 나오면서 기분이 씁쓸하였다.
사진을 몇 장 찍으면서 버스로 돌아와서 기다리는데 일부 회원들이 산림욕장 쪽으로 가서 제법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자, 우리 기다리는 동안 술이나 한 잔 하지?"
나는 아까 가져왔던 설중매 병을 빼어 술을 따르겠다고 작은 종이컵을 빼어 들었다. 종이컵을 들고 나서 술병의 마개를 따려는데 이상하게 마개가 따져 있다.
'어? 이거 왜 따져 있지?'
생각하면서 그래도 일단 따르기로 하고 채규주 회원에게 첫 잔을 그리고 여자 회원들에게 다음 잔을 따르고 있었다. 이 때 "아이 짜 ! 이거 뭐야?" 이 소리와 동시에 여자 회원도 "이거 간장이 아니야?" 우리는 한바탕 소란이 있었지만, 선배님들은 앞쪽에 있어서 뒤쪽에서 일어난 이런 소란을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설중매라고 가져 온 설중매 병에 담긴 것은 간장인 것을 모르고 술이라고 마실 뻔한 웃지 못할 사건으로 우리 막내 16회 회원들은 정말 남을 추억 하나를 만든 셈이었다. 우리는 이 재미난 사건의 이름을 '설중매 사건'이라고 명명하기로 합의를 하고 킥킥거리면서 맛있는 설중매 병을 쓰레기통에 쳐 넣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번 총동문회 야유회의 백미를 장식할만한 에피소드 한마디를 만들어 온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녹원환경뉴스,디지털특파원,개인불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