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붐을 맞아 많은 사람이 비싼 최신형 카메라를 구입하고 사진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조작법을 익히는 데만도 정신이 없지만 서서히 익숙해지고 나면 '잘 찍은' 사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똑같은 카메라로 찍었는데 나는 왜 저렇게 안 될까.'
이제 관심은 정당하게도 카메라에서 사진 자체로 이동하게 되고, 이 대목에서 대개 듣게 되는 조언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범한 순간을 포착하라, 사진은 기다림이다,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체득하라" 등등이다.
그리고 그 전범으로 앙리 까르띠에-브레송과 사진집 <인간 가족 The Family of Man>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초중반의 걸작들이 제시된다.
그런데 이런 표준교본에 따라 열심히 사진을 배우면서 서서히 사진전이며 사진잡지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넓히다보면 거의 예외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의문이 하나 있다. 지금 시대를 주름잡고 있다는 유명사진가들의 작품 대다수가 그다지 잘 찍은 것 같아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 | 마틴 파 사진전 | | | Retrospective 1971-2000 | | | | *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 기간: 2007년 5월3일~30일 (11시~20시)
* 작품: 사진작품 200점 및 250여 점으로 구성된 설치작
* 주최: HP, Magnum Photos
* 주관: ㈜유로커뮤니케이션/한국매그넘에이전트, 마이아트
* 공식홈페이지 : http://martinparr.co.kr | | | | |
마치 김소월, 윤동주에 매혹된 문학소녀가 이상의 시세계를 접하고 느끼는 것과 같은 당혹감의 문턱이 20세기 후반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사진미학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 첨단의 한 변을 지탱하고 있는 거장 마틴 파(Martin Parr)의 사진전 'Retrospective 1971-2000'이 한국에서 개최되고 있다.
영국 출신으로 세계적인 보도사진집단 '매그넘'의 정회원이기도 한 마틴 파는 이른바 '포스트 다큐멘터리'라는 신영역을 개척한 인물로 유진 리차즈, 스티브 맥커리 등과 함께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사진가의 한 사람이다.
특히 미술사진(fine-art photography: 종종 '예술사진'으로 오역된다)을 추구하는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주요 텍스트로 자리잡고 있다. 그의 작업이 이처럼 각광받는 까닭은 역시 이 시대의 풍속도라 할 만한 새로운 사진미학을 들고나온 데 있을 듯하다.
1952년생인 마틴 파 역시 활동초기인 20대에는 고전적 사진미학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전시장의 입구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초기작들은 누가 봐도 잘 찍었다고 할 만한 미려한 흑백사진들로, 영국 다큐사진계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명성에 걸맞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그의 작품 세계는 일신을 꾀하게 된다. 스스로 밝히듯 "중산층인 내가 왜 나보다 한참 위나 한참 아래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는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얻은 결론은, 진짜 내 주변 사람들,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 온몸을 담근 채 아무런 반성도 변화도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자는 것이었다.
표현양식도 바뀌게 된다. 흑백에서 컬러로, 35mm에서 중형카메라로, 그리고 오랜 기간 사진계의 준칙이었던 결정적 순간의 미학에서 지속적 순간의 미학으로 이행이 이루어진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2부 이후를 장식하고 있는 사진들이다.
매그넘 멤버인 세계적 사진가의 작품이라고 알려주기 전에는 그저 대충 찍은 스냅사진이라 여기고 말 수도 있는 이 작품들에서 그는 더 이상 멋지고 창조적인 구도, 흑백만이 전해줄 수 있는 그윽함, 빛과 순간포착의 미학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대신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극사실적인 적나라함이다. 싸구려 유원지에서의 싸구려 피크닉, 세계 어느 관광지를 가나 기념사진 남기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단체관광객들, 대형할인점에서 물건을 먼저 집으려 아귀다툼을 벌이는 구매자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이 시대의 풍속도가 사진가에게 포착되어 갤러리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장면은 코믹하다 못해 딱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웃고 말 수 없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며 더구나 불과 몇 년 전에 찍은 다큐 사진이다. 대부분 남의 나라 사람들을 찍은 것이지만 FTA 시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남 얘기 같지가 않다.
마치 저 군상 어딘가에 내 얼굴이 섞여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실제로 위 사진에 등장하는 단체관광객은 한국인들로 밝혀졌으며, 아예 그가 2004년에 한국에 와서 찍은 사진들도 있다).
들키기라도 한듯 흠칫하게 만드는 자각의 힘, 이것이 마틴 파 사진의 위력이다. 냉정한 문명비평의 시선을 견지하는 작가의 의식은 이러한 자각의 대상에서 자신만을 쏙 빼놓지 않을 줄 안다. 스스로 모델로 나서 관광지에서의 우스꽝스러운 기념사진들로 '자화상 시리즈'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취미사진가들이 어떻게 하면 더 보기 좋은 사진을 찍을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다. 고전적인 명작들의 작풍을 따라해보기도 하고, 까닭없이 흑백으로만 찍거나 필름으로 회귀하기도 하고, 애꿎은 장비만 마냥 바꿔대기도 한다. 어쩌면 이 또한 대량소비시대의 단면도인 것은 아닐까.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겠지만, 사진에서도 결국 부딪치는 것은 무엇을 왜 찍을 것인가의 문제다. 겉보기에 그럴싸한 이미지만을 찍어내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고민하는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이번 마틴 파 전시회는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 같다(전시장 곳곳에 게시된 해설문의 저열하기 이를 데 없는 번역수준만 제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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