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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에는 크고 작은 문화재가 퍽 많이 있어요. 모두 그다지 이름 없는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도 조상의 슬기와 얼이 담긴 아름다운 것들이지요. 옛것을 찾아 두루 다녀볼 생각으로 무척 신이 난 마음으로 자전거 발판을 신나게 밟으며 찾아간 곳은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입니다. 이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를 소개하려고 해요.

 

연재기사 첫머리부터 자칫 큰 실수를 할 뻔하다

 

먼저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다름이 아니라, 이 해평리에는 지난 6일과 13일에 걸쳐 두 차례나 다녀왔어요. 같은 곳을 두 번씩이나 찾게 된 건 제 실수 때문이에요. 처음 이 마을에 찾아갔을 때, 먼저 알게 된 건 바로 '북애고택'입니다.

 

여기는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서 자료를 찾아보고 난 뒤 더욱 자세하게 알았는데, 처음 가서 볼 때 옛 집이 여러 채 있었고 대문을 중심으로 여러 채가 나누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이 마을에 있는 또 다른 곳, '구미 쌍암고택'과 두 집이 나란히 붙어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믿고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썼지요. 인터뷰까지 한 내용이라서 하루라도 빨리 기사를 보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알고 보니,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어요. 그 까닭은 우리가 처음 가서 보고 인터뷰한 곳이 바로 '북애고택'이었고, '쌍암고택'은 바로 건너편에 있던 집이었어요. 그때 갔을 때에는 대문이 굳게 잠겨있어서 들어가서 보지는 못했고, 대문 사이로 비치는 모습만 봤기 때문에 그 집이 '쌍암고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요.

 

게다가 거긴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무튼, 기사를 보내기 바로 앞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 순간 '우리 문화재를 소개하는데 정확하지 못한 걸 보내는 큰 실수를 하겠구나' 싶어 땀이 다 나더군요.

 

이렇게 해서 어제(13일) 다시 이 곳 해평리를 찾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날도 '쌍암고택'은 문이 굳게 잠겨있어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담장 너머로 보이는 집을 사진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예스런 풍경에 놀라 멈추다

 

여느 시골마을이 다 그렇지만 해평리 마을은 그다지 크지 않고 자그마한 곳이에요. 그러나 푸근하고 정겨운 고향 같은 풍경 때문에 '우리 것'을 찾아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사로잡기에 딱 알맞은 곳이지요.

 

마을에 들어서니, 좁고 가느다란 골목이 바로 눈에 띠었는데 왠지 그 곳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담이 그리 높지 않은 집들이 여러 채 있고, 집마다 대문 앞에 커다란 나무가 봄볕을 받아 무척 싱그러운 빛을 내며 서있어요. 이 쪽 경북 지역에는 보통 감나무가 있게 마련인데, 낯선 나무들이 아름드리 큰 몸뚱이를 뽐내며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게 무척 남달라 보였어요.

 

골목을 벗어나자 나지막한 흙담으로 둘러싸여 예스런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옛 집을 만났어요. '아! 여기 참말로 멋진 곳이다'. 남편도 나도 그 자리에 서서 그 멋스런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지난해 성주 '한개마을'과 군위 '한밤마을'에서 흙돌담으로 길게 쌓은 담장 너머로 봤던 것과 같이 꽤 큰 옛 집이 세월을 자랑하듯 자리 잡고 있었어요. 가까이 다가가 대문을 밀어보니, 문은 굳게 닫혀있고 대문에서 꽤 너른 마당을 지나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이 있었어요.

 

겉에서 봐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 넓은 마당에는 키 큰 잡풀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어 오랫동안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데, 뜰 한쪽에 세워 있는 커다란 빗돌과 안내판이 따로 있는 걸 보니 예사로운 집이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려고 긴 담장을 따라갔더니 또 다른 옛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와요. '아하! 이 마을에는 이런 옛 집이 꽤 많구나!'하고 놀라워하며 집 앞에 이르니 쭉 이어진 담장 끝에 아까 마을 들머리에서 보았던 똑같은 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를 다치지 않도록 피하여 담을 쌓고 그 곁에 현대식 대문이 빠끔히 열려 있어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옛 집 곁으로 기다란 길이 있고, 그 꼭대기에 현대식 집이 보여요. 아마 이 집 임자가 살지도 모르겠다 싶어 들어갔는데, 이런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시더군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이런 옛 모습을 찾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예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걸 다 좋아해?" 하면서도 꽤 대견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아주머니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구경을 했어요.

 

집 앞을 지키는 나무는 '해나무'라고도 하고, '양나무'라고도 하는데 지난날에는 이 나무를 약으로도 썼다고 하네요. 옛 집은 대문을 사이에 두고 여러 건물이 나누어져 있어요.

 

남쪽 집엔 형님이 북쪽 집엔 아우가

 

하나하나 짚어가며 구경을 하다가 처음 담장 너머로 봤던 집에 이르니, '북애고택(北厓古宅)'이라고 쓰인 큰 빗돌이 있고, 이 집을 소개한 안내판이 있어 꼼꼼히 읽어봤어요.

 

이 집은 조선시대 영·정조 임금 때 실학자였던 최광익 선생이 1788년에 지은 집인데, 둘째 아들 승우가 살던 곳이라고 해요. 본디 처음에 '구미 쌍암고택(雙岩古宅)'에는 형인 성우가 살았고, 오래 뒤에 형이 아우한테 지어준 집이 쌍암고택에서 바라보면 북쪽 낮은 언덕 위에 있다고 해서 바로 '북애고택'이라는 거예요. 형님과 아우의 두터운 정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았어요.

 

동생집인 '북애고택'은 지금 '지방 민속자료 제41호'로 지정되어 있고, 형님 집인 '쌍암고택'은 '중요민속자료 105호'에 올라있어요. 형제가 서로 마주보고 살면서 오순도순 정겹게 지냈을 생각을 하니, 얘기로만 들어도 퍽 흐뭇하더군요.

 

아주머니 소개로 집안 구석구석 꼼꼼하게 둘러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한참을 머물며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지금 이 집 임자는 그 옛날 최광익 선생의 후손인데 모두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해요. 그래도 이 집 할아버지께서 틈틈이 내려와 집도 관리하시고 마을 가까이에 있는 공부방에 가서 책도 읽으시고 지내신다고 했어요. 또 이 아주머니(김소자(65)씨)는 이 집에 살면서 관리를 하고 있는 분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아주머니가 소개한 집안 내력

 

우리 부부는 옛 집 건축양식은 잘 모르지만 한눈으로 봐도 꽤 탄탄하게 지은 집이고 이모저모 쓸모있게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집안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도 오랜 시간 손때가 묻어있는 것이라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정겨웠지요.

 

지난날 내 어린 시절에 보았던 '실겅(여러 가지 물건을 얹어 놓던 나무로 만든 선반(시렁)을 경상도에서는 이렇게 말해요)'도 있고, 곡식 이삭을 넣고 낟알을 떨어내는 탈곡기, 탈곡한 곡식을 넣어 한꺼번에 티와 알갱이를 가려낼 수 있는 큰 풍구도 있었어요.집 구조는 'ㄷ' 자인 안채와 '一' 자인 중문간채가 서로 마주보게 하여 전체로 보면 'ㅁ' 자 구조로 되어 있어요.

 

또 사랑채는 대문채 바깥마당에 따로 두었는데, 안마당에서 따로 나누어 자리잡게 한 이런 양식은 매우 드물다고 해요.'북애고택'의 가장 끝에 있는 사랑채는 올해 새로 보수공사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어쩐지 잡풀도 많이 자라고 집이 너무 낡아서 어수선해 보였고, 앞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어지기도 했어요.

 

하도 오래된 것이라 지금 이대로는 오랫동안 보존할 수가 없다고 하네요. 그나마 다시 손을 본다고 하니 퍽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조금도 손색없이 오랫동안 보존되고 조금 더 깔끔하게 관리하지 않을까 싶어요.

 

낯선 나그네가 문화재 얘깃거리를 찾아다닌다며 불쑥 찾아왔는데도 내치지 않고 이것저것 일러주시며 정겹게 맞이해준 아주머니께 무척 고마웠어요. 둘이서 기념사진도 찍고, 나중에 글과 사진을 들고 꼭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지요. 헤어지면서 잠깐이나마 정이 들어 아주머니를 안아드렸더니, "아이고, 꼭 내 딸 같다" 하시면서 나보다 더욱 꼭 껴안으며 어깨를 토닥여 주셨어요. 대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나오는 우리를 보고 좋은 글 많이 쓰고, 부자도 되라며 "올해 금 돼지 복도 많이 받아요" 하는 덕담까지 해주셨어요.

 

이런 아주머니의 정겨움에 우리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고 이렇게 '우리 것'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퍽 남다른 보람도 느꼈어요.

 

 

굳게 잠긴 대문 때문에 구경할 수 없었던 '쌍암고택'

 

지난주에 처음 잘못 알고 왔던 것을 다시 조사하고 살펴보려고 찾아갔던 어제도 끝내 '쌍암고택'은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어요. '해평 최상학씨가옥'(중요민속자료 105호)에는 이날도 어김없이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어요. 할 수 없이 바깥에서 담장 너머로 보이는 건물만 사진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지요. 이 집에는 지금도 이 댁 후손이 그대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만 지나가던 이웃 사람들한테 들었고요.

 

지금은 '구미 쌍암고택'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새로 지정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어요. 그 옛날 대문 앞에 큰 바위 두 개가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이렇게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새로 지정된 이름은 올해(2007년 1월 29일)에 바뀌었답니다. 또 집안 구조는 '북애고택'과 거의 똑같다고 해요. 전체가 'ㅁ' 자 구조로 말이에요.

 

이렇게 해서 두 주에 걸쳐 구경하고 온 해평리 마을에 있는 우리 문화재, '북애고택'과 '쌍암고택' 이야기를 들려드렸어요. 자칫하면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 이야기를 연재기사 첫머리부터 큰 실수를 할 뻔했지만, 다시 찾아가서 제대로 살피고 알아보고 돌아왔지요. 문이 닫혀있던 '쌍암고택'은 담 너머로만 구경했던 게 아쉬웠지만 그 크기와 집 구조는 '북애고택'과 견주어 크게 다른 게 없다고 해요.

 

이번 일을 거울삼아 더욱 마음을 다해 '우리 것'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기에 앞서 먼저 공부도 해야겠고, 꼼꼼하게 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남편은 이런 나를 생각해서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문화재를 지역마다 따로 묶어서 하나하나 수첩에다 적어 어느 마을에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가려면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또 남다른 건 무엇이 있는지를 자세하게 챙겨주었어요. 이렇게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겨주는 남편한테도 매우 고마워요. 이렇게 하다 보면, 앞으로는 더욱 알차고 재미나게 구경하고 공부할 수도 있겠지요.

 

두 번째 이야기는 '냉산문답'으로 이름난 송당(松堂) 박영 선생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이어지는 이야기에도 귀기울여 주세요.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 '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북애고택, #쌍암고택, #해평최상학씨가옥, #해평면 해평리,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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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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