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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15일자 3면
<전남일보> 15일자 3면 ⓒ 전남일보
지역민심은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광주를 찾은 각 정당이나 정파의 유력 대권주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민주화 이력을 부각시키거나 참회의 뜻을 밝히고 있지만 잿밥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이러다 매년 5월 광주가 정치 각축장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역언론 보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전남일보>는 15일자 3면 '5·18 정신은 하나인데…'란 기획기사에서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뀌는 계승정신을 우려했다.

지난 2002년 7월 5·18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2003년 5·18 23주기부터 올해 5·18 27주기까지 정치인들이 광주에서 격정적으로 토로한 '5월정신 계승'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그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올해는 새로운 정치 환경 속에서 5·18을 맞는 탓에 정치인들이 내뱉는 정치적 수사 또한 예전과 사뭇 다르다는 이 기사는 "5·18정신은 하나인데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5·18정신은 왜 그렇게 다른지 모르겠다"면서 "5·18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몇이나 될지 의구심이 든다"는 5·18유족회의 한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기사는 또 "2003년 5·18 23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는 5·18 정신을 계승, 개혁과 통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했다"면서 "그러나 노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어낸 민주당은 이날 광주에서 신주류와 구주류로 나뉘어 서로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고 꼬집었다.

<광주일보> 15일자 사설
<광주일보> 15일자 사설 ⓒ 광주일보
<광주일보>도 15일자 사설에서 '대선주자 '광주정신' 계승 진정성 있나'에서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대선주자들의 '5·18 참배'는 반가운 일이다"고 전제했지만 정략적 접근을 경계했다.

사설은 "'아집'과 '독선'으로 '대결'과 '편가름'을 조장하고 있는 대선주자들이 '5·18광주정신'을 들먹일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선주자들은 '광주정신'이 민주와 평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이라는 사실부터 상기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숭고한 뜻보다 정치 각축장 변질"

<남도일보>14일자 1면
<남도일보>14일자 1면 ⓒ 남도일보
<남도일보>는 14일자 1면 '숭고한 뜻보다 정치 각축장 우려'란 제목의 기사에서 호남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5월 광주를 적극 활용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이 기사는 "5월 광주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보다는 자신들의 지지세를 넓히는데 치중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라는 5월 단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내보냈다.

지역인터넷신문 <시민의 소리>는 '시민들에겐 너무 먼 5·18'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5·18만을 기념하는 광주정신 박제화를 우려했다.

<시민의소리>는 "27주년을 맞이하는 소감과 기념행사에 대한 단상, 기념재단의 역할 등을 놓고 광주 시민들에게 직접 물어봤다"며 "구체적인 단어는 달랐지만 5·18기념행사들이 5·18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있으며, 반복적 행사 속에 심지어 '예산 나눠먹기'라는 비판까지도 제기했다"고 비판했다.

<시민의 소리>는 오히려 '5·18 수배자명단, 27년 만에 발굴'의 기사에서 경찰 내부 자료로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직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수배자명단 3장을 27년 만에 최초로 공개해 주목을 끌었다. "이 자료는 지난 7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시민이 그 동안 소중히 보관해오다 5·18 27주년을 맞아 <시민의 소리>에 기증함으로써 빛을 보게 됐다"며 수배 이후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5·18

한국 민주화의 상징인 5·18. 왜곡과 폄하는 상당부분 사라졌지만 5·18은 아직도 미완의 문제들을 안고 있다. 80년 당시 권력과 언론에 의해 덧씌워진 그릇된 시각이 잔상으로 남아있다. 더욱이 망국병으로 일컬어지는 지역주의가 5·18을 올바로 인식하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

9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으나 5·18은 여전히 '80년 5월17~27일을 전후해 광주.전남지역 일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시공간적 한계가 지워져 있다.

5월 들어 서울·대구 등에서 기념행사가 부분적으로 열리고, 올 들어 강원도에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10대 도시 동시개최가 무산될 정도로 지역주의의 벽은 아직도 두텁다.

발포책임자 색출도 역사의 숙제로 남겨졌다. 지휘권 이원화 문제도 흐지부지 됐다.

광주 진압작전으로 훈장을 받은 79명 중 '국가안보 공헌'이라는 명분으로 태극. 을지 등 무공훈장을 받은 전두환, 노태우씨의 훈장은 여전히 반납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남 합천군은 지난 1~2월 사이 반대 여론이 높았던 전두환씨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 명칭을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역사적 해결과제 아직도 많이 남은 5·18

지역인터넷 신문 <시민의 소리>
지역인터넷 신문 <시민의 소리> ⓒ 시민의 소리
이 때문일까.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김영삼 전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 27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2차례 묘지 참배에 나섰으나 5월단체와 남총련 학생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그러나 올 들어 5·18기념재단, 5·18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는 5·18 27주기 기념주간인 22일 그를 광주로 초청해 감사패를 전달키로 했다.

이에 대해서도 여전히 여론은 냉소적이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의 광주러시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선 차가운 반응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2년 전 "광주에서의 경험으로 한국인들은 독재로부터 탈출과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일을 연관짓게 됐다"고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에 보도된 논평에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끈질긴 한국현대사의 연구로 '제1회 후광 김대중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한 그는 5·18 광주민중항쟁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으로 보았다.

해마다 5월이 오면 광주에선 5·18민중항쟁 기념행사로 북적댄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앙의 정치무대가 잠시 이전한 임시정치무대로 변질돼 가고 있다. 5·18 정신은 하나인데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5·18정신은 서로 다르다.
#5.18 27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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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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