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에 이어 또 다시 정향숙씨를 만났다. 계절은 어느덧 겨울을 지나 봄의 문턱을 넘어선지 오래인데도 박동은 학생의 빈 방은 여전히 냉기만 맴돈다.
"동은이가 실종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네요. 금방이라도 '엄마~'라고 부르며 들어 올 거 같은데…."
담담한 어조로 말문을 연 정씨. 하지만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지난 1일이 동은이 생일이었다고 한다.
"동은이 열두 번째 생일이었는데 생일상도 차리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정씨는 말을 차마 다 잇지 못했다. 가족들 모두 애써 담담하게 동은이 생일을 보낸 것이다.
냉기만 맴도는 동은이 방이 달라진 것이 없듯 4개월여만에 다시 찾은 정씨의 생활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동은이 방 침대 위에는 하루빨리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커다란 곰 인형이 그대로 놓여 있고, 방문 위와 침대 머리맡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내용의 글귀와 거꾸로 매달아 놓은 옷이 걸려 있다.
"미신이에요. 옛날 어른들의 말이 옷을 거꾸로 걸어두면 집나간 자식들이 빨리 들어온다고 해서…."
정씨는 동은이를 찾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이야기도 흘려듣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외출을 삼간 채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비록 안타까운 마음에서겠지만 주변에서 동은이 소식을 물어오는 것이 듣기 싫어 집밖을 잘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도 언제 동은이에게 전화가 걸려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종 초기만 하더라도 전단지를 만들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뿌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전단지 배포도 그만 뒀다고 한다. 사람들의 무관심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동은이와 은영이의 사진이 있는 전단지가 땅에 버려지고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며 실종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동은이와 은영이 사진과 글을 올린다.
얼마 전 실종된 지 40여일 만에 집 근처 과수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제주도 양지승 어린이 실종 사건도 남 일 같지 않다. 최근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는 실종사건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무섭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정씨는 "최근 꿈 속에 어른에게 꾸지람을 듣는 모습의 동은이가 자주 나타난다"며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실종 초기 걸려오던 제보도 이제는 아예 끊어진 상태다. 경찰도 수사전담반을 구성해 전국 각지에 돌며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사회단체들도 천성산과 저수지 등을 돌며 동은이와 은영이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실종아동찾기센터와 양산시 등 관련 기관들도 세금 고지서 뒤편에 아이들을 찾는 광고를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 상태다.
실종된 지 1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빠르게 잊혀지고 있다.
정씨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하지만 사람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며 "어차피 가족들이 감당해 내야 하는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내 "동은이와 은영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부모들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 집으로 돌려보내달라"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www.ysnews.co.kr) 182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