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의 '사계'는 세계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연주되는 곡 중 하나이다. 대중들이 특히 좋아하는 악장이 별도로 있기는 하지만, 어느 악장이건 간에 일상의 곳곳에서 계절변화를 귀로 실감케 해주는 명곡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나라 음악가들이 자국의 민속악기로 연주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우리 국악기로도 여러 번 연주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전곡이 연주되고, 그것이 음반(신나라)에 담기기로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단장 박상진)이 처음이다.
국악기 개량의 한 동기가 되기도 했던 서양음악 연주는 오랜 세월 국악계에서는 뜨거운 감자이다. 국악의 순수성을 두고 오갔던 논쟁에서의 가름 없이 계속해서 여러 국악단체에서는 서양음악을 연주해왔고, 작년에는 숙명가야금, 한 기업의 광고 등에서 클래식 명곡을 연주한 것이 큰 화제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전곡 음반까지 나온 것을 보면 이제 국악기로 클래식을 연주하나 못하나 하는 초기 화두는 사라지고 대신 완성도를 따지는 수준에 이른 듯하다. 작년 개관 이후 연주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세종 체임버홀에서의 최초 홀 레코딩 음반이라는 의미도 갖는데, 편곡은 몇 년간 서울국악관현악단과 음악작업을 해온 김성기 한예종 교수가 했다.
김 교수는 “원곡에 충실하고, 우리 악기에 맞게 편곡했다”고 하면서 “빠른 기교를 요하는 바이올린 부분은 해금으로, 첼로의 저음은 거문고와 아쟁으로 바꿔서 투박하면서도 애절한 국악기의 매력을 살리고자 했다”고 했다. 그밖에 국악기로 연주한 비발디 '사계'의 특징은 양금사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크음악을 상징하는 쳄벌로에서 유래한 양금 사용은 연주외적으로 묘한 뉘앙스를 준다.
흔히 바로크와 국악은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계의 화려한 화성을 충당키 위해 사용한 양금이 바로 바로크에서 온 것이니 우연치고는 흥미로울 따름이다. 어쨌거나 양금의 활용으로 인해 국악기로서는 부족한 화성의 부분이나, 사계 특유의 화려한 기교를 상당부분 충당할 수 있게 됐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은 “바로크음악의 세계에도 잘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해금도 칭찬할 만하다. 바이올린 혹은 서양음악의 찰현악기에 익숙한 청중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줄 수 있었다”면서 “국악기로 연주되는 서양음악이 원곡의 연주와 같으면서 다른 매력을 알려줄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되었다”라고 평가했다.
워낙에 세계 모든 악기가 아주 오랜 세월을 두고 느린 진화를 해온 것이기에 딱히 우리 악기만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국악기는 자연 그대로를 소리로 담고자 하는 특성이 강하다. 타악기를 제외하고 관악기, 현악기 대부분를 약음악기로 분류한다.
바람이 갈대잎 하나를 스칠 때는 바로 곁에 있는 사람조차 느끼지 못할 작은 흔들림이지만 그 바람이 모여들어 천둥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듯이 국악기 하나 하나는 매우 그렇게 은둔하는 성품을 갖고 있다. 국악전용연주회장 하나 없는 한국의 실정에서 많은 청중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확성하는 것이 보편화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강요된 선택이긴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국악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이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작년 세종체임버홀에서 확성 없이 비발디 '사계'를 연주했을 때 사람들은 확성 없는 악기 그대로의 국악이 음향에 대한 새삼스러운 감탄을, 비발디 사계의 국악화에 대한 또 한번의 경탄을 자아냈다. 물론 너무도 귀에 익숙한 '사계'가 국악기로 연주될 때는 우선 낯설고 어색하다. 그러나 차츰 음악 자체가 가진 친근함과 국악기가 가진 친인간적인 면 때문인지 처음의 어색함은 이내 사라지고 편안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국내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2005년에는 뜻 깊은 40주년 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소속된 세종문화회관과 소속 예술단체의 전반적인 불화환경 속에서 해체설까지 흉흉하게 나돌았었다. 국악계에서는 허무하게 국악계 최초의 관현악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맴돌기도 했다.
서울시에 새 시장이 선출되고 그에 따라 세종문화회관도 변화하면서 그런 불안은 사라졌다. 작년 비발디 사계 연주에 모인 국악계 사람들의 마음에 도사리던 불안을 말끔히 씻어준 그날 연주는 말없이 음악으로 서로의 가슴을 도닥거렷던 음악회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세종체임버홀 최초의 홀 레코딩 음반의 기록까지 갖게 되었으니 이모저모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게는 많은 의미를 가져단 준 연주였다.
물론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디다. 비발디 '사계'를 표현하기 위해 편곡도 하고, 악기 일부도 음악에 맞게 작은 개량의 노력도 필요했다. 음계가 다른 두 음악세계가 만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정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프로단체라면 비발디에 맞추는 노력 다음에는 우리악기에 비발디도 바흐도 맞춰보려는 의욕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문화는 아주 자유롭게 만나고 연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서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오만도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국악기가 겸손함을 보였다면 이제는 다른 모습을 보여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비발디의 '사계'를 음계가 다른 악기로 연주하면서 ‘똑같이’ 연주하는 것보다는 다른 악기에 의해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지는 가도 흥미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다음에는 비발디 품에 안긴 국악 대신에 국악의 품에 안긴 바로크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