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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단순히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의 통제권과 관리의 문제이다. 사진은 한 산부인과 병동의 신생아실 사진(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낙태는 단순히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의 통제권과 관리의 문제이다. 사진은 한 산부인과 병동의 신생아실 사진(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우먼타임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경우 불가피한 낙태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발언은 과연 그가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거준비운동에 나선 지지율 1위의 후보가 맞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장애인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어도 될 존재들이다"는 논리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발언을 두고 장애인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자신은 본래 '낙태 원천적 반대론자'라며 해명하고 나섰다.

낙태에 대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발언은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갈등지점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낙태허용'에 대한 문제이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명박

첫번째 문제, "이명박 전 시장의 발언이 장애차별적이고 심지어 장애인들에게 모독감을 심어준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듯 하다.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힘들고 고단할 것이라 바라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장애인들의 삶을 다른 누군가의 의지대로 지속시키거나 함부로 중단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자신은 '낙태 원천적 반대론자'라고 해명하고 있는 것도 이런 비판에 대해 수긍하고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낙태에 대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발언은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갈등지점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낙태허용'에 대한 문제이다. 사진은 한 산부인과 간판(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낙태에 대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발언은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갈등지점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낙태허용'에 대한 문제이다. 사진은 한 산부인과 간판(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반면 두 번째, '낙태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문제는 첫번째 문제에 가려져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낙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입장차가 다양한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경우다. 예를 들어,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거나,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이 되는 경우 등과 같이 정말 불가피하게 임신중절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은 매우 많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기준을 '장애인이냐, 장애인이 아니냐'에 두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집중한 것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의 내용이었지 낙태에 대해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시장은 본인이 '낙태 원천적 반대론자'임을 근거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원치 않은 임신, 여성은 끝까지 지켜야 하나

낙태는 20세기 중반까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불법이었다. 1950년에서 1985년 사이에 대부분의 선진국과 소수의 개발도상국이 낙태법을 자유화했다.

여성들이 낙태를 하는 이유는 어리고 미혼이며 가난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태아는 임신한 여성에 의한 종속적 위치에 있고, 이러한 권력관계를 이용해 순진무구한 존재인 태아의 숨을 끊는 것은 '살인'이나 다름없는 행위"라고 말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임신한 여성의 상황이나 임신 과정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많은 희생을 강요당했다.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권리는 통제되고 제한되었다. 전형적 이기주의의 희생자인 것이다.

낙태, 몸에 대한 여성의 자연권

영화 '산부인과'의 한 장면.
영화 '산부인과'의 한 장면.
낙태를 도덕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여성이 자신의 이해를 태아보다 상위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마도 부도덕의 극치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이라도 끝까지 지켜야 하지만, 이같은 희생을 남성은 요구받지 않는다. 반대로 여성은 태아에게 위험한 행동을 모두 규제받는다.

낙태 금지는 보다 광범위한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의 통제권과 관리의 문제이다.

태아를 낙태하는 권리는 여성의 자신의 몸에 대한 자연권의 일부이다. 낙태 금지는 이 자연권을 위배하는 것이며, 동시에 여성의 육체뿐만 아니라 피임·성적 자유·인구 등에 대한 정부의 통제 강화로 이어진다. 여성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낙태금지에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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