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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1년도에 대학에 입학해 노태우 군사정권과 93년 김영삼 문민정부를 동시에 겪은 학번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그 당시 나는 '민주화'에 대한 신념이 부족했다. 당시 대학생들이 비판적 시각이 있었던 시대였던 만큼, 시대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보통의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큰 흐름이었던 날들이 되면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든다. 그 부끄러운 기억 속에 5ㆍ18과 전두환, 그리고 지금은 민주열사 공원인 모란공원에 잠들어 있는 사랑하는 내 후배가 떠오른다.
시간이 많이 흘러 세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92년도에 전두환 체포조와 학생들이 말 그대로 전두환을 체포하기 위해 서울에 집결한 적이 있었다. 나와 내 후배도 기차 타고 서울로 올라가 그 집회에 갔었다. 학생들은 최루탄에 맞서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대응하면서 '전두환 체포' 구호를 외쳤다.
당시 내 후배는 전경과 마주하고 있었고, 나는 내 후배처럼 하지 못하고 도로 위 고가다리에 있었다. 어두워 질 쯤, 난 어딘지도 모르는 골목 안에 있었고 후배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후배와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나는 집회 현장을 빠져 나왔고 당시 결혼해 서울에 살았던 큰 누나 집으로 가서 하룻밤 자고는 학교로 내려왔다.
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학교로 돌아올 줄 알았던 후배는 그 이후 며칠이 지나도록 학교에 오지 않은 채 그곳에 남아 투쟁을 계속 이어갔다. 후배는 학교에 도착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봤고, 15년이 훌쩍 넘어서도 내 기억에서 이 기억을 지워버릴 수 없다.
나는 후배 앞에서 부끄러운 선배였다
졸업 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계속했던 후배는 결국 어느 날 갑자기 과로로 쓰러져, 당시 나이 23살에 고단한 몸을 거리에 뉘었다. 그리고 깨지 않는 긴 잠이 들었다.
소극적이었던 나에게 늘 거침없이 말을 했던 후배였는데, 그 후배 앞에서 그 때도 부끄러웠고 지금도 나는 부끄럽다. 그 녀석과 함께 했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는 그 후배에게 늘 부끄러운 선배였다.
후배 녀석은 지금 민주열사 공원인 모란공원에 잠들어 있다. 전두환에 분노하며 역사 앞에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겠다던 내 후배가 지금은 모란공원에 잠들어 있다.
나는 지금 또다시 찾아온 5ㆍ18에, 이제 더 이상 외치지 못하는 잠든 후배를 대신해 전두환과, 군사정권 그 모든 세력에게 역사 앞에 참회하고 사죄하며 용서를 구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해마다 5ㆍ18이 되면 광주를 찾아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말하는 정치인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얄팍한 정치인들에게도 진정으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역사 앞에 바친 열사들을 더 이상 욕되이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다시 찾아온 5ㆍ18과 전두환, 그리고 이제는 하늘나라로 떠난 내 사랑하는 후배. 가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차마 부끄러워 가지 못했던 후배가 잠든 그 곳. 나는 언제쯤 내 사랑하는 후배가 잠들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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