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난해, 최종규 선생님한테 얻어 온 권정생 선생님 사진, <죽을 먹어도>겉그림에 쓰인 사진이에요. | | ⓒ 최종규 | | "조금 앞서 뉴스에서 들었는데,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셨대."
"응? 뭐라고?"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아……."
어제(17일)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한테서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이 멥니다. 아, 선생님이 돌아가시다니….
권정생 선생님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이오덕 선생님 때문이었어요. 우리 부부가 이오덕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올곧게 살려서 쓰는 '우리 말'을 공부하게 되었고, 어린이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했던 선생님을 우러르게 되었지요.
그런 선생님 글 속에는 권 선생님 이야기가 틈틈이 나왔지요. 두 분이 서로 마음 맞춰 하신 일이나 주고받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오덕 선생님을 생각하는 우리 마음이 그대로 권 선생님한테도 똑같이 닿아 있었거든요. 또 이렇게 우러르는 두 선생님 가운데 한 분은 이미 우리 곁에 없는 것이 무척 가슴 아팠어요.
지난해 이오덕 선생님이 누워계신 충주 '무너미마을'에 갔을 때, 무덤 앞에서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뜨거운 가슴으로 다짐을 했지요. 선생님이 끝까지 몸바치셨던 '우리 말 살려 쓰는 일'을 꿋꿋하게 따르겠다고요.
그때, 선생님 일을 올곧게 따르면서 일하던 최종규 선생께 권 선생님 사진 한 장을 얻어 와 간직하면서 남편과 함께 약속했던 일이 있어요.
"우리 내년 여름휴가 때는 권 선생님 계신 안동에 꼭 다녀오자! 선생님도 몸이 많이 아프시니까 살아 계실 때 꼭 뵙고 와야지. 안 그러면 이오덕 선생님처럼 두고두고 한이 될 거야."
늘 일에 쫓겨 틈을 낼 수 없다는 핑계로 같은 경상도 땅에 살면서도 진즉에 찾아뵙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슬픈 소식을 들었어요. 아직 여름도 오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훌쩍 떠나 버리시면 우린 어떡합니까?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책, <죽을 먹어도>(아리랑나라)를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웠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른 봄에 마을 아이들이 앞산에 가서 산앵두꽃을 한 아름 꺾어 와서 꽃병에 꽂으려고 할 때, 선생님이 하신 말 때문에 크게 깨달았던 게 하나 있지요.
"야들아, 꽃 어디서 꺾었노?"
"깨끼산에서 꺾었어요. 안죽도 디기 많애요."
"많으면 자꾸 꺾어도 되나? 꽃이 불쌍하지도 않나?"
"꽃이 뭐 불쌍하니껴?"
"왜 안 불쌍노? 꺾으면 죽는데…."
"……."
아이들 얼굴이 금방 울상이 되어 내 얼굴을 쳐다본다.
"영아야, 꽃도 숨 쉬고 산단다. 요렇게 참한 새 옷 입고 엄마하고 산단다. 그런 걸 꺾어 봐. 너도 모가지 꺾고, 팔 꺾고 해 봐. 피가 나고 디기 아플끼다."
"이 꽃, 병에 꽂아 두마 안 죽고 사니더."
"병에 꽂아 살아도 꽃은 맨 불쌍하지. 깨끼산에 핀 건 깨끼산에 있어야 좋고, 주들 거랑에 핀 건 주들 거랑이 좋고, 시내미에 핀 건 시내미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단다. 우리 안동 꽃은 안동이 고향이고, 강원도에서 핀 건 강원도가 고향이고, 이북에서 핀 건 이북이 고향이지. 꽃이나 사람이나 모두 고향이 최고로 좋단다. 우리 한국에 핀 꽃을 아무도 꺾지 말고 그냥 두면, 저어기 제주도에서 이북 백두산까지 꽃천지가 되고 얼매나 좋겠노, 그지?" (권정생 <죽을 먹어도> 8, 9쪽)
| | ▲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책<죽을 먹어도> 아리랑나라 | | ⓒ 손현희 | | 흔하고 하찮은 꽃을 꺾었을 뿐인데도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이 글을 읽기 앞서는 길을 가다 예쁜 풀꽃이 있으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툭 꺾곤 했는데, 그 뒤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어쩌다 작은 풀꽃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가도 곧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서 뉘우치곤 했지요. 또 그때부터는 길섶에 피어 있는 작고 여린 풀 이파리 하나도 아주 남다르게 여겨졌어요. 매우 소중한 목숨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우리는 선생님을 만난 적도 없고, 그다지 잘 알지도 못해요. 오직 책으로만 선생님을 알아 왔기 때문에 더욱 그래요. 그렇더라도 우리 마음에는 언제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분으로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살아 계실 때 뵙지 못한 것이 몹시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네요. 너무나 게으른 우리를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 지난날 이오덕 선생님과 형제처럼, 또 동무처럼 그렇게 지내셨지요? 아마 지금쯤은 먼저 가셨던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덜 외로우리라 믿습니다.
선생님, 이 땅을 떠나시면서 모든 인세를 어린이를 위하여 써 달라고 하셨다지요? 사는 동안 내내 자연을 사랑하고, 보잘 것 없는 걸 더욱 사랑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겨레가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던 선생님!
이제 이 땅에서 짊어지고 있던 굴레는 모두 벗어버리고 편안히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