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 스파르타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급 정교사 연수 과제물로 <스파르타 교육과 시민생활>이라는 책을 읽으면서였다. 책에 나타난 스파르타는 아이를 건강하고, 유능하고, 멋진 인간으로 키우는 나라였다. 읽어갈수록 스파르타의 교육 체계는 매력적이었다.
이런 멋진 교육 체제로 우리나라의 아이들을 키운다면, 우리나라의 아이들도 스파르타의 전사처럼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살아남으며, 똑똑하고 훌륭한 아이들로 자라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300>을 본 사람이라면, 기자가 스파르타의 매력에 이토록 흠뻑 빠졌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배우들의 배에 아로새겨진 '임금 왕'자 때문만은 아니다).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분이 군대에 있던 시절 첫 휴가를 나왔을 때라고 했다. 군대 안에서 절도 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가 사회에 나와 보니 이 속세(?)에 사는 사람들이 참 한심해 보였다고 했다.
속세에 사는 이들은 다들 게으르고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나사가 하나 풀린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고 했다. 과연 이 사람들을 이렇게 가만두어도 될까, 누군가가 나서서 꽉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내버려두다가는 큰일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스파르타, 군대, 이명박 후보를 연결한 이유
요즘 이명박 후보의 실언 문제가 연일 뉴스에 오른다. 장애인 관련 실언 문제엔 일견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당장 나부터도 결혼해 임신했는데 아이가 100% 장애를 안고 태어날 것이라고 하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의 이 말은, 물론 실수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더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명박 후보가 아주 대표적인 효율지상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이 후보의 효율지상주의 사고의 바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위의 세 이야기가 서로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을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서로 관련된 이야기라고 본다.
스파르타는 대표적인 병영국가였고, 그리스 안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나라였다. 이 군대로 페르시아 전쟁 때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 용감히 싸웠고, 많은 전공을 올렸다. 그러나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가 "그 호모 녀석들?"이라고 비아냥거렸던 아테네 역시 강력한 병영 국가가 아니었음에도 비슷한 정도의 전공을 올렸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 후 그리스의 맹주로서 크게 번영했다. 그러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제압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강인한 인적 자원을 보유한 스파르타가 전쟁에 이기고 평화가 왔으니 아주 잘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혼란을 겪다 테베에 패하였고, 그 후 그리스 전체가 몰락하여 세계사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그 강력한 스파르타가 왜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가? 처음 이 사실을 세계사 시간에 배울 때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리포트를 쓰기 위해 연수 동기들과 채팅으로 토론하면서 차츰 이해할 수 있었다.
효율성이 전부인가
스파르타가 평화를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위기 상황에 긴장하고, 자신을 단련하고, 용맹하게 싸우는 법을 배우고, 평생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갑자기 평화가 찾아오니 무엇을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예전에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아테네가 새삼 대단하게 보였다. 스파르타인에게는 무질서하고 체계도 없고 엉망으로 보였던 아테네지만, 이 아테네는 시민들에게 평화를 누리는 법을 가르쳤고, 위기가 닥쳐왔을 때 자신의 선택으로 목숨 바쳐 도시를 지켜내는 법도 가르쳤던 것이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 정부의 시각도 스파르타와 비슷했을 것이다. 민간인들이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도 학교도 군대식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단기간에 경제 발전을 이루는 성과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국가 전체를 통제하고 틀어쥐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이제 수명을 다한 구식이다.
현대 사회는 아테네와 같은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게 하면서도, 위기가 닥쳐오면 그 개인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단결하여 외부의 적과 싸웠던 아테네처럼 말이다.
이명박 후보는 과거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 젊음을 바친 분이다. 이 분을 포함한 그 시대 모든 분들이 열심히 일하셔서 지금의 우리가 있음은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언뜻언뜻 들려오는, 이 후보의 효율지상주의 시각에는 걱정이 앞선다.
스파르타가 갓 태어난 아기들의 신체검사를 하여 건강한 아기만 키우고 나머지는 타이게토스 산에 버렸다는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효율성을 극대화한 스파르타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세운 공은 아테네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평화가 찾아오자 자멸하고 말았다.
효율성이 나쁜 것은 아니다. 분명 아주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효율이 인간이 누려야 할 여유와 휴식, 그를 토대로 샘솟는 창의성마저 제거해버릴 만큼 과도하게 강조된다면, 그 사회는 작은 빈틈만 생겨도 자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우리는 세계사 시간 스파르타 편에서 배웠다.
덧붙이는 글 |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비교되는 도시국가이기에 아테네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기자는 개인적으로 아테네를 '위대한 민주주의의 탄생지'이며 현대 모든 국가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