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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디쉬워셔(dishwasher)예요."
"디쉬워셔? 아, 식기세척기요?"
"식기 세... 뭐라고요?"
"식기세척기요. 식기는 밥 먹는 그릇이라는 뜻이고, 세척은 닦는다는 뜻이에요. 지난 주에 '세차장' 배웠지요?"
"아... 네. 그럼 '기'는 무슨 뜻이에요?"
"'기계'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그릇 닦는 기계란 뜻이지요."
"그럼, 저는 식기세척기예요."
"네? 유대봉씨가 식기 세척기라고요?"
한국어를 배우는 영어권 학습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가 조사이기에 이번에도 유대봉씨가 조사를 잘못 사용한 줄 알았다. 그리고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이에요'와 '있어요'를 많이 혼동하기 때문에, '있어요'를 '이에요'로 잘못 사용한 것으로 오해했다.
"'저희 집에는 식기세척기가 있어요' 이렇게 말해야지요."
"아니요. 저는 식기세척기예요. 제가 설거지하거든요."
그때서야 유대봉씨가 왜 자신을 '식기세척기'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부인을 위해서 하루에 3번씩 커피를 타다 주는 남편이 식사 후에 설거지하는 것 정도가 뭐가 어려울까?
영어 이름으로 되어 있는 전자제품 이름들
이렇게 전자제품들의 이름을 공부하는데, 몇몇 제품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외래어로 되어 있어서 조금은 안타까웠다. 심지어, 워낙 외래어로 된 이름들이 많다 보니, 학생들이 한국 이름으로 되어 있는 전자제품들도 생각이 안 날 때는 영어식 발음으로 해서 냉장고를 '리프리지레이터'라고 하고, 세탁기를 '워셔'라고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풍기, 전화기, 세탁기, 식기세척기, 청소기, 다리미'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자제품이 국적도 알 수 없거나 혹은 일본의 영향으로 영어의 첫 부분만을 따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순수한 우리 단어의 경우에는 소리글자의 특성상, 합성어를 만들 때 음절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뜻글자인 한자를 빌어서 축약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의 경우에는 그것을 소리나는 대로 쓸 경우 순수 한국어보다도 음절수가 길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데 굳이 왜 외래어 혹은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내비게이션' 또는 '내비게이터'의 경우, 영어를 모르는 어르신들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고, 그것이 뭘 하는 물건인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그 음절 수 역시 5글자나 되어서 언어경제법칙에 어긋난다. 이런 경우, '길도우미'라든지 '길안내기'라든지 그렇게 그것이 뭘 하는 물건인지 알 수 있도록 한국어로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되면 음절 수도 하나 줄고, 어르신들도 쉽게 그것이 뭘 하는 도구인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 문장 속 한국어, 한국 문장 속 영어
재미한인 2세들 사이에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가 존재한다. 바로, 영어 문장에 한국 단어 섞어 쓰기이다. 예를 들면 "Did you see 선생님 at the 학교?" 와 같은 것인데, 요즘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반대로 한국 문장에 영어 단어 섞어 쓰기가 보편화되어 있는 듯 보인다.
20-30년 전만 해도,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한자를 많이 섞어 쓰는 사람들이 유식한 사람처럼 보였고, 그래서 필자가 국문학과 재학 시절에 접한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조사만 빼고는 거의 한자로 되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요즘은 영어를 많이 섞어 쓰는 것이 유식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는지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 영어 단어들을 한국 문장에 많이 섞어 쓰는 안타까운 행태를 보게 된다.
전에는 대부분 명사를 영어로 쓰고 동사나 형용사 등은 한국어로 쓰는 경향이 많았는데, 요즘은 동사 '하다'를 영어에 붙여서 말도 안되는 신조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회의하다'보다는 '미팅하다', '공부하다'보다는 '스터디하다' 등으로 점점 한국어와 영어의 조합이 날로 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어를 한국 문장에 섞어서 쓰면 그 사람은 영어 실력이 있는 것일까? 한국 단어를 영어 문장에 섞어서 쓰면 그 사람은 한국어 실력이 있는 것일까? 대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오히려 그렇게 언어를 섞어서 쓰다 보면, 두 언어 다 제대로 하지 못 하고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엄연히 이중언어 능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중언어 능력이란 두 언어를 각각의 모국어 화자를 만났을 때 각각의 언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영어 단어 몇 개 외워서 그것을 한국어 문장에 섞어쓰는 것은 결코 영어 실력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렇게 될 때, 유대봉 씨는 자신을 '디쉬워셔'가 아닌 '식기세척기'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더 많은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구은희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