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팔웰 목사의 사망 소식을 크게 보도한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전통적으로 미국의 신문들은 부고 기사를 상당히 중시한다. 특히 지역 신문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에 대해서도 사진과 함께 자세한 일생을 소개한다. 거물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급 인지도가 아니면 달랑 한 줄 기사로 처리되는 한국 신문들과 차이 나는 부분이다.

지난 15일 그런 미국 언론들이 더 크게 부고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던 한 인물이 숨졌다.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NBC 등 미국 거의 모든 언론사들은 일제히 이 인물의 죽음을 비중 있게 다뤘다. 버지니아주의 소도시 린치버그에서 숨진 고인과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텍사스주 댈러스시의 지역신문 <댈러스모닝뉴스>도 1면에 부고 기사를 실을 정도다. 이 날 숨진 제리 팔웰(Jerry Falwell, 73) 목사가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부시 당선-재당선에 혁혁한 공

팔웰 목사는 린치버그시에서 교인수 2만4000명의 한 대형 교회를 이끌었다. 1971년에는 같은 도시에 리버티 대학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 한 소도시의 '영적인' 지도자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TV전도사로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1979년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라는 기독교 보수단체를 창설했다.

이 단체를 통해 당시까지만 해도 정치와 거리를 두려던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을 정치 세력화하는 선봉장에 섰다. 미국의 도덕적 타락을 정치권과의 연합을 통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호소가 먹힌 것.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한 것을 시작으로 팔웰 목사는 공화당과의 끈끈한 관계를 이어갔다. 1984년 댈러스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재선을 노리는 레이건 대통령과 러닝메이트였던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를 위해 축도하며 이들을 "미국을 재건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라고 불렀다. 80년대를 주름 잡은 공화당의 득세와 함께 이 단체는 미 전역 65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한 압력단체가 됐다.

팔웰 목사는 1983년 미국 시사잡지 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명' 중 한 명이 됐다. 이후 이 단체가 1989년 팻 로버트슨 목사가 이끄는 '기독교인 연합(Christian Coalition)'으로 계승되면서 팔웰 목사의 역할이 감소됐다. 하지만 팔웰 목사는 "빌 클린턴과 같은 대통령의 재탄생을 막아야 한다"며 2000년 '아들 부시'의 당선을 도왔다. 급기야 2004년 부시의 재선에 발벗고 나서기 위해 '도덕적 다수연합'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고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핸드백 든 텔레토비는 동성애 비유"

팔웰 목사의 영향력은 그의 말주변에서 나왔다. 프랑스의 극우파 정치인 르펜을 연상케 하는 강성 발언은 백인이 다수인 기독교 보수세력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팔웰 목사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끌던 60년대 미국 시민권리운동을 "잘못된 시민운동"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당시 인종차별로 몸살을 앓던 남아프리카 문제에도 개입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스몬드 투투 주교에 대해 "겉치레로 흑인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팔웰 목사는 전 세계인의 항의를 받고 사과해야 했다.

동성애에 대해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인 팔웰 목사는 "에이즈는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 대필 작가인 멜 화이트에 따르면, 팔웰 목사는 "이런 동성애자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들을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가 필요한 명성을 나에게 주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미국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노조들은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성경을 먼저 읽고 연구해야 한다"며 "그들이 하나님 앞에 먼저 바로 설 때 더 좋은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그는 "낙태, 동성애자 권리 등을 주장하는 미국 시민단체들 때문에 영적으로 약해진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했다.

가장 희극적인 팔웰 목사 관련 사건은 영국의 인기 아동용 방송 캐릭터 텔레토비에 관한 것. 자신이 직접 한 얘기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했지만, 그가 발간하던 <전국 자유 저널>이라는 월간 잡지는 "텔레토비 캐릭터 중 팅키 윙키(한국에는 '보라돌이'로 알려짐)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캐릭터는 보라색 몸과 분홍색 삼각형 안테나를 머리고 달고 있고, 핸드백을 늘 들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이 다른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팔웰 목사에게는 수십 개의 팅키 윙키 인형이 항의표시로 전달됐다. 그는 그것들 대부분을 손자에게 준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에 선 기독교 투사

▲ 1983년 11월 <허슬러>지에 실린 팔웰 목사와의 가상 인터뷰 기사.
기독교 세력 확대를 위해 팔웰 목사는 정치력만 이용하지는 않았다. 법정 소송을 통해 직접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팔웰 목사와 그가 비판해 왔던 유명 포르노 잡지 <허슬러> 간의 재판은 전 미국을 들썩이게 했다. 1983년 11월 <허슬러>는 팔웰 목사와의 가상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팔웰 목사가 근친상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팔웰 목사는 즉각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를 상대로 사생활 침해, 명예 훼손, 고의적인 심리적 피해 등의 혐의로 4500만불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 문제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와 연관되면서 최종적으로 연방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려야 했다. 1988년 대법원은 "사회적 공인은 심리적 피해를 이유로 수정헌법 제1조를 피해 갈 수는 없다"며 <허슬러>의 편을 들었다. 이 외에도 팔웰 목사는 또 다른 포르노잡지 <펜트하우스>, 동성애 권리 운동가 제리 슬로안, 팔웰 목사의 이름을 딴 인터넷 도메인 운영자 크리스토퍼 람파렐로 등과 법정 싸움을 벌였다.

미국 신정(神政)정치의 아이콘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백악관 보좌관을 지냈던 케빈 필립스는 작년 <미국의 신정정치>라는 책을 냈다. 뉴욕타임스가 뽑은 베스트셀러 반열에도 올랐던 이 책에서 필립스는 "미국 정부와 종교의 남부화가 공화당을 세계 교회주의적인 종교 정당의 새로운 화신으로 만들며, 이념적 변화를 선동하고 정교 분리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필립스는 미국의 이 같은 신정정치가 기독교 우파들의 정치적 영향력, 석유 확보를 위한 국가 안보 논리, 빚으로 버티는 경제 등 세 기둥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팔웰 목사와 1988년 직접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기독교인 연합' 팻 로버트슨 목사 등은 필립스가 보기에 미국 신정정치의 아이콘이었다.

팔웰 목사는 자신이 세운 리버티 대학 총장실에서 15일 갑자기 숨졌다.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건강했었다는 그의 죽음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목사이자 정치가 못지 않게 노련했던 그는 사후 준비도 철저하게 해놨다. <댈러스모닝뉴스>에 따르면, 리버티 대학은 현재 이 대학 부총장인 첫째 아들 제리가 맡게 되고, 교회는 현 행정 목사인 둘째 아들 조나단이 맡게 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