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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띠뚜 조직팀장(A. M. Tito·33세)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노동자들을 상담한다. 임금 체불 같이 고용주를 상대해야 하는 일은 한국인 간사들이 맡지만, 그 외의 일은 띠뚜 팀장이 직접 나선다.
화요일부터 목요일은 센터에서 운영하는 쉼터에서 생활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은 포천에 있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공동체방 관리자로 일한다. 낮에는 센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상담 전화 받느라 분주한 띠뚜 팀장을 만나, 외국인의 눈으로 본 국내 외국인노동자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글라데시 상담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운영하는 쉼터 관리자로 일해요. 우리 쉼터는 일을 하다가 다친 노동자들이나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쉬었다가 가는 곳이죠. 나는 그들과 같이 살면서 쉼터 살림을 챙겨요. 통역도 하는데, 임금 체불 같은 사안은 제가 직접 다루지는 못해요. 아직은 한국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다른 간사들에게 부탁해요. 우리 센터는 임금 문제로 외국인노동자와 회사 간에 마찰이 발생하면 중재하는 일을 하는데, 어쩌다가 제가 공장에 전화를 하면 사장이나 직원들과 대화가 잘 안 통해요. 저는 인도어와 영어를 조금씩 하지만, 주로 우리나라(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상담해요.
쉼터 생활이 궁금해요. 어떻게 살아요.
지금은 저를 포함해서 여덟 명이 살고 있어요. 한 명은 조선족 아저씨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이에요. 파루크는 일을 하다가 팔을 다쳐서 두 번이나 수술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요. 크리스라도 교통사고로 팔을 다쳤고…. 나는 주중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금요일부터는 포천에 있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공동체에서 관리자로 살고 있어요.
여러 사람과 생활하는 것도 벅찰 텐데, 아픈 사람들 병간호까지 하려면 정신없겠어요.
그래서 상담해서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죠. 내 마음이야 충분하게 돕고 싶죠. 그렇지만 나도 한계가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도저히 못 하는 것도 있고. 안타까운 건 사람들이 아프면서도 참고 있다가 병을 더 키워가지고 온다는 거죠. 한번 아프면 외국인이라 쉽게 일자를 구하기도 힘든데…. 요즘에는 내 개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어서 조금 더 피곤해요. (무슨 고민인지 물어봐도 되느냐는 물음에 그는 안 된다며 웃었다.)
만나는 이주노동자마다 몸이 아프거나 맘이 다친 사람들이겠어요.
외국인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만 가면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는 받을 거라는 소식을 들어요. 단순하게 생각해도 1년이면 1200만 원이고 5년이면 6000만 원을 챙긴다는 건데, 그 돈이면 다시 돌아와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죠. 그렇지만 한국에 들어오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요.
어제는 쉼터에서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는 한국에 온 지 9년이 지났다고 하는데, 결혼하고 한 달 만에 집을 떠나 여태까지 한 번도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어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나보고 도와달라고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까.
늘 연민 속에서 살겠어요.
와이프가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난 남편에게 옷을 벗고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나봐요. 남편을 보지는 못해도 그 사진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버틸 것 같아서 그랬나 봐요.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 가슴 아픈 일이 엄청 많아요.
한 친구는 죽고 싶다고 말했어요.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고 싶은데 돈을 못 모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데요. 어느 정도 벌면 가족에게 송금하고 자기가 조금 쓰고 하면 남는 게 없으니까.
이 친구도 일하다가 머리를 다쳐 정신이 나간 적 있어요. 산재보험도 안 돼 자기 돈으로 치료를 받았고,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먹고 살아야 하니까 공장으로 들어간 거지요. 게다가 그는 한국 친구에게 1500만 원을 빌려줬다가 아직 돈을 받지 못하고 있데요. 돈을 빌려주면서 계약서도 쓰지 않았데. 법적으로 싸우려 해도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일이 많아요. 나도 도와주고는 싶은데 못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죠.
이런 일을 자주 겪다보면 한국 사회와 사람에 대한 분노가 일겠어요.
어디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있기 마련이죠. 1990년대 초반부터 일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물어봤는데,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데요. 앞으로 10년 정도가 지나면 지금보다 저 좋아지겠지. 난 그렇게 생각해요.
센터 소장이 목사님인데, 팀장님도 종교 있나요.
나는 인권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종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종교 상담을 하는 외국인상담소가 많지만 별로 맘에 안 든다.
(이 대목에서 띠뚜 팀장의 말투가 반발로 바뀌고 존칭도 사라졌다. 그동안 차분히 말하던 것과 달리 볼펜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흥분하고 있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길로 가면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충고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너는 꼭 이 길로 가야해' 하고 말하면 곤란하다. 예배하라고 하면 외국인노동자들은 속으로 반갑지 않지만 꾹 참고 예배를 드린다. 자기가 문제가 있어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외국인노동자를 상대로 선교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은데, 한국교회에 충고를 한마디 부탁해요.
교회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외국인노동자들이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사정이 그래서 말을 못하는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면…. 한국에서는 예배를 드리는 외국인노동자가 몇 십만 명일 수 있지만, 그들이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서도 기독교인으로 남는 경우는 거의 희박하지 않을까.
띠뚜 팀장은 어떤 힘으로 나그네 생활을 버텨요. 결혼도 안 했고, 종교도 없고, 게다가 돈을 적금하는 것도 아니고…. 혹시 꿈을 꾸는 게 있어요.
과거와 미래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1년 뒤 벌어질 일에 대해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어제 일도 바로 잊지요. 내일도 오늘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내일은 그저 기다리면 되고요. 오늘 열심히 살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독교 대안 언론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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