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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적대 세력의 네 주인공이 한 자리에 보여 있다. 나중에 이들간의 최종결투가 벌어진다.
ⓒ 한국오페라단

낯섦에 처하다

서곡이 끝나고 드디어 막이 오릅니다.

저는 자막 보랴 무대 보랴 바쁩니다. 안타깝게도 객석 3층은 연기자들의 연기와 목소리를 만끽하기에는 먼 거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페라 전용 글래스를 로비에서 대여하는군요.

그런데 커튼이 올려지는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2명의 복면 쓴 보조 출연자들이 바퀴 달린 넓은 탁자(이걸 탁자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를 끌고 나오는데 그 탁자 위에 연기자가 서서 노래를 부릅니다.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은 연기자가 탁자 위에서 위태위태하게 자리잡고 노래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연기자가 각자 그런 탁자 위에서만 몸짓을 해가며 노래를 부릅니다. 탁자 위에 배가 얹혀 나오거나, 말의 형상이 올려져 나오기도 합니다. 연기자 아니 성악가는 배 위에 누워서도 쩌렁쩌렁한 소리를 냅니다. 저런 자세에서도 노래가 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말의 형상을 얹은 좀더 큰 탁자는 4명의 보조 출연자들이 엎드려 끌고 나옵니다. 가능한 한 모습을 드러내어서는 안되지만 어쩔 수 없이 모습이 드러나는, 게다가 이 높은 3층에서는 더욱 더 신경이 쓰이는 보조 출연자들 때문에 노래 소리가 잘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2막에서는 배의 형상을 얹은 탁자들이 자주 나옵니다. 무대 앞은 무대를 가로막는 기다란 천이 하늘하늘 흔들거립니다. 아마도 무대 양 옆 속에서 누군가가 흔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바다 위 장면을 나타내는 장면입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연기자들이 자유로이 걸어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할 것이라는 기존 관념을 깨는 무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정통 오페라를 첫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본 <리날도>는 다소 파격적인 연출을 과감하게 도입한 연출자 피치의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바로크 오페라 연출의 흐름을 바꿨다"라는 평을 듣는 그는 "신화에 바탕을 둔 바로크 오페라의 화려함과 과장, 유머를 표현하고 싶었"(동아일보 07. 5. 2일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연기자가 바퀴 달린 탁자를 타고 보조 출연자들의 도움으로 돌아다니고, 또 그 연기자의 기다란 망토를 휘날리게 하는 데에도 보조 연출자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연출에 낯설음을 느낀 사람은 저뿐이 아닐 것입니다. 나중에는 4대의 말 형상과 연기자를 태운 탁자들이 한꺼번에 등장, 결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일사분란하게 그 탁자들을 보조 연출자들이 이동시킵니다. 서로 교차하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데 자칫하면 부딪칠까 염려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오페라는 완벽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연출가의 의도를 자료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 <리날도>의 시대 배경인 ) 십자군 전쟁은 신화화된 역사이므로 그 주인공들은 영웅이라는 관점을 피력한다. 따라서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 혹은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에서나 봄 직한 영웅들의 모습이며, 이를 보다 장중하게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자기 발로 걸어다니지 않고 여러 명의 보조 출연자가 무대 위에서 끌고 다니는 말, 혹은 배 등을 타고 이동하도록 했다. 자연스러운 연기 대신 정형화된 포즈와 제한된 동작으로 일관하는 점 역시 신화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객석> 07년 5월호 중에서.


세상이 바뀌다, 삶이 바뀌다

▲ 리날도 역을 맡은 메조 소프라노 로라 폴베렐리.
ⓒ 한국오페라단
그리고 <리날도>는 작년에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의 무대를 살펴본 연출가가 결정한 작품입니다.

알고보니 <리날도>는 잘 공연되지 않는 작품입니다. 자료를 찾아봐도 독립된 챕터로 이 오페라를 다룬 책은 없었습니다. 자잘한 언급이 있을 뿐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카스트라토(미소년의 음성을 가진 거세 가수)가 지금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영화 <파리넬리>는 18세기 초의 나폴리의 전설적인 카스트라토, 카를로 브로스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당시의 유명 카스트라토는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합니다. 시칠리아에는 카스트라토 양성 학교까지 있었고요.

그러다, "18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오페라 관객들은 기교 위주의 창법에 흥미를 잃고,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목소리와 무대를 원하게 된다. 그것이 카스트라토 시대의 종언인 동시에 근대 오페라의 출발점"(<오페라, 행복한 중독> 중에서)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리날도는 분명 남성 배역이지만, 지금 시대에 카스트라토는 없기 때문에 이번 공연처럼 메조 소프라노가 배역을 맡아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아마도 마차나 말, 배 등을 실제적인 느낌이 나게 연출하는 것이 어려웠기도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 곡을 쓴 헨델에게 오페라는 한 때의 영화(榮華)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헨델이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 헨델. <리날도> 등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었지만, 우리는 그를 <메시야>로 각인해 기억한다.
ⓒ 한국오페라단

"작곡에 있어서 바흐는 새로운 시대를 선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지난 시대의 전통을 되살리며 고심과 수정을 거듭한 끝에 복잡하고 심오한 음악을 만들어냈고, 헨델은 동시대 청중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해 화려하고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엄청난 속도로 써내며 표절도 서슴지 않았다."
-<오페라, 행복한 중독> 중에서.


런던에서 오페라로 최고의 성공과 완전한 파산을 경험한 헨델은 그후 오라토리아에 전념하게 되고, 급기야 <메시아>를 완성하게 됩니다. <메시아>는 6주 만에 완성된 곡이지만, 그것은 헨델의 일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헨델의 모습이기도 하고요.

"음악을 통한 사회봉사는 헨델의 간절한 계획 중 하나였다. 후에 헨델은 런던의 병원에 <메시야>와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 공연에서 생긴 수익금인 11.000파운드를 모두 기부했다."
-<음악에 미쳐서> 중에서.


어쨌든 <리날도>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의 문화적 전통을 영국 런던에 도입한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 사라센왕 아르간테와 여자마법사 아르미다. 붉은 색 의상으로 이들을 나타냈다.
ⓒ 한국오페라단
<리날도>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때는 십자군 전쟁 시대(11세기-13세기), 십자군의 사령관인 고프레드는 십자군의 영웅인 리날도에게 사라센(이슬람교도)에게 점령당한 예루살렘을 정복하라는 명을 내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딸 알미레나와 혼인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미 리날도와 알미레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리날도는 자신감과 사명감을 지니고 예루살렘을 향해 떠납니다.

사라센 왕 아르간테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의 연인이자 마법사인 아르미다의 힘을 빌려 알미레나를 납치합니다. 리날도는 그 사실을 알고 알미레나를 구하기 위해 아르미다의 마술궁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도 잡히는 신세가 됩니다.

게다가 리날도를 처음 본 마법사 아르미다는 그만 리날도를 사모하게 됩니다. 한편 아르간테도 잡혀 있는 알미레나를 흠모하게 됩니다. 이렇게 두 쌍의 연인은 상대의 연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갈등 구조로 진행됩니다.

잡혀 있는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또 유혹은 어찌 물리칠지….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의 사진은 <리날도> 공연을 주최한 '한국오페라단'의 허락을 받고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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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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