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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 대선을 앞두고 속속 후보자들이 나서고 있다. 현재까지 민주당 8명, 공화당 11명의 후보들이 도전장을 냈다. 이들은 '준결승전'인 당내 경선을 통해 각당 최종 후보로 추려져 내년 11월 4일 최종 대통령 선거전에 임하게 된다.

지금까지 선두 그룹으로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인물로는 민주당의 배럭 오바마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공화당의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미트 롬니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 등이 꼽히고 있다.

공화당 후보인 줄리아니의 개인적 인기가 민주당 후보들에 비해 현재까진 한 수 위다. 하지만 작년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 현 부시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본선 경쟁력은 민주당에 있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누가 민주당 후보가 되느냐가 실질적인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경선은 내년 1월 14일 아이오와주에서 시작된다. 현재까지 민주당원들이 쥐고 있는 선택지는 '첫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오바마, '첫 여성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힐러리라는 '2지선다'형이다.

하지만 '첫 히스패닉 대통령'을 모토로 나온 빌 리차드슨(59) 뉴멕시코 주지사가 가세하면서 3지선다형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리차드슨은 흑인을 제치고 미국 내 최대 소수인종으로 떠오른 히스패닉의 우상이기 때문이다.

"나를 봐주세요" 미 대선의 새로운 다크호스 빌 리차드슨 뉴멕시코주지사가 지난달 26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에서 열린 미 민주당대선주자 첫 토론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히스패닉 정치력의 리트머스 시험지

"오늘 자랑스럽게 선포합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 대통령이 되겠다고."

지난 21일 리차드슨은 캘리포니아 LA에서 수천명의 지지자들에게 영어와 스페인어로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리차드슨은 지난 1월 ABC 방송과의 회견에서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을 밝혔다. 하지만 이 날 선포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의 8번째 공식 주자가 되었다.

그는 후보 출마 선언이 다른 후보들보다 늦었고, 대중적 인지도에 있어서도 그가 '록스타(rock star)'라고 표현한 오바마나 힐러리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리차드슨과 같은 히스패닉은 공식 집계만 미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해 흑인보다 많다는 점은 무시 못할 변수다.

히스패닉은 2004년 7월 현재 약 4130만명으로 집계되고, 2003년부터 1년간 인구증가율은 3.6%로 미국 전체 인구증가율 1.0%의 3배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같은 증가 속도라면 2050년에 히스패닉은 1억명을 넘어 미국 인구의 25%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공식 집계에서 제외되는 불법 체류자 등을 포함하면 이 수는 기하급수로 늘 것이 분명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민간 기업의 제품 설명서는 물론, 공식 문서에도 스페인어가 영어와 병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히스패닉계를 차지하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화폐인 '페소'가 달러와 같이 유통되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 학력이 낮고 가난한 히스패닉계의 정치력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치부돼 왔다. 하지만 최근 이민법 개정 등의 이슈에서 히스패닉들이 단결하고 있어 2008년 미 대선은 히스패닉 정치력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백인 아버지와 멕시코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리차드슨은 자신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뉴멕시코 주지사인 리차드슨이 캘리포니아주 LA시에서 출마를 선언한 것도 미국 내 최대 히스패닉 거주지이자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가진 캘리포니아를 먼저 공략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노련한 외교관... 행정경험 갖춘 유일한 민주당 후보

"나의 능력은 내 말이 아니라, 내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경험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연방 하원의원, UN대사, 에너지부 장관, 뉴멕시코 주지사…. 리차드슨은 그가 말한 대로 화려한 정치 경력을 쌓아왔다. 특히 북한·수단·니카라과 등 세계의 분쟁 지역을 돌며 보여준 노련한 외교관 이미지는 폭력적인 현 부시 정권과 대비되고 있다. 대표적인 '지한파'로 지난 4월 8일에도 부시 정부의 요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6자회담 2·13 합의 이행조치와 관련한 협상을 하기도 했다.

주지사로서 국내 문제에 관한 능력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민주당이면서도 대담한 감세 정책과 사회간접자본 확충 정책으로 뉴멕시코주 최대도시인 앨버키키를 <포브스>지가 선정한 '2006년 기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만들었다.

유명 정치연구소인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는 그를 '재정적인 면에서 가장 능력 있는 민주당 주지사'로 수 차례 선정하기도 했다. 이런 경력은 리차드슨이 작년 뉴멕시코주 역사상 가장 큰 표차로 재선에 성공하는 밑거름이 됐다.

북한에 간 리차드슨 빌 리차드슨 뉴멕시코주지사(맨왼쪽)가 지난달 10일 평양에서 김영대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부위원장, 앤서니 프린시피 전 미 재향군인담당서기 등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리차드슨은 지금까지 출마를 선언한 8명의 민주당 후보군 중에서 행정경험을 갖춘 유일한 후보이기도 하다.

오바마 후보는 2년여의 연방 상원의원 경력이 전부다. 오바마가 뜰 수 있었던 건 그의 화려한 연설 때문이다. 2004년 보스턴 민주당 전당대회의 '대담한 희망'이라는 연설을 비롯, 그의 언변은 대중을 휘어잡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젊은 날 민권 변호사 활동을 했던 그에게는 내각을 구성할 걸출한 인물들이 없다. 이를 두고 AP통신은 "스타일은 있지만 실질(substance)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한 칼럼을 통해 "힐러리팀을 보면 그들이 어떻게 나라를 이끌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오바마 옆엔 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힐러리는 순전히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광 덕을 보고 있다. '좀 똑똑한 퍼스트 레이디'라는 이미지로 2001년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주변엔 클린턴 전 행정부 시절의 민주당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내각을 이끌 능력이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오바마·힐러리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는 존 에드워드 전 연방 상원의원도 유명한 기업·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라는 이미지가 전부다.

가파른 지지율 상승... 순식간에 4위 도약

빌 리차드슨 지지율 추이

날짜지지율

1. 19

1%

(ABC방송)

4.   3

2%

(Zogby 연구소)

4. 12

3%

(ABC방송)

5. 16

10%

(Des Moines Register)

리차드슨의 숨은 파괴력은 최근 가파른 지지율 상승으로 증명되고 있다.

지난 1월 언론을 통해 대선 출마를 밝혔을 때 리차드슨의 지지율은 1%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가장 먼저 민주당 경선이 시작될 아이오와주에서 지난 12~16일 <데스 모인스 레지스터>라는 언론사에 의해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리차드슨은 10%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는 오바마·힐러리·에드워드의 뒤를 잇는 것으로 다른 군소 후보들을 모두 제치는 결과였다. 두번째와 세번째 민주당 경선을 치를 네바다와 뉴햄프셔주 여론조사에서도 리차드슨은 각각 6%, 10%를 얻어 '다크 호스'로서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세력은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흑인표는 흑인인 오바마와 옛 클린턴 시절의 향수를 기억해 힐러리를 지지하는 표로 양분돼 있다. 여성 표도 여성인 힐러리에서 남성이지만 잘 생기고 달변인 오바마 쪽으로 많이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히스패닉 표는 리차드슨 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점이 리차드슨의 또 다른 강점이다.

리차드슨은 오바마나 힐러리처럼 이번 선거에 사활을 걸 필요도 없다. 차기를 위해 유권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얼굴 알리기' 정도에 그쳐도 대성공이다. 히스패닉이라는 태생적 강점은 4년 뒤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히스패닉 표를 의식한 오바마나 힐러리 진영에서 제안하는 부통령직을 수락할 수도 있다.

오바마든 힐러리든 민주당 대통령의 재선 후 8년 뒤를 기약하면 된다.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8년쯤의 시간은 리차드슨에게 아깝지 않음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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