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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에는 고구마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30년 전의 '함평 고구마 사건'에 대한 기억이 있을 터이지만, 아쉽게도 함평에는 고구마가 별로 없었다. 고구마가 없어진 그 자리를 '함평나비축제'가 대신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주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주는 광주에 인접해 있는 도시인데다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지방의 거점도시였지만 지금은 인구 9만명 남짓한 작은 도시에 불과할 뿐이다. 서울 인근 도시가 대체로 수십만 명 이상의 인구를 자랑하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주는 역사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잘 열려진 도시이다. 최근에는 <주몽>의 촬영지로, 과거에는 <왕건>으로 나주가 알려졌다. <주몽> 드라마가 끝날 때 '광주전남 혁신도시 나주시'라는 협찬 자막이 뜨곤 했다. <왕건> 드라마에서는 왕건이 견훤의 지배지역인 나주 지역의 나주 오씨와 연대하여 전쟁을 하는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물론, 함평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나주가 광주에 인접해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일 뿐, 광주라는 도시와 거리를 두고 있는 함평에 사람이 없는 것은 오히려 별로 이상하지 않다.

이것이 오늘날 지역이 처한 현실이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낸다"는 속설을 반영하듯 모두가 서울로 가버린 지역과 농촌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함평과 나주의 전설

순례 첫날밤을 목포에서 보내고 다음날 삼합으로 유명한 음식점 '인동주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목포사람이면 누구나 존경하는 서한태·박광웅·최태옥 등 원로선생님을 비롯해서 목포지역의 시민사회활동가들이 우리 순례단을 위해 맛있는 점심을 제공해주셨다. 여러 가지 덕담도 오고갔고 대선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순례단이 건강하게 목적을 달성하길 바란다는 격려의 말씀이 많았다.

함평을 가로지르는 들녁에는 봄농사로 일손이 바쁜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아무리 붐비는 농촌이라고 해도 콩나물시루 생활에 익숙한 도시사람의 눈에는 한가로운 풍경에 불과했다. 함평에서는 함평군민연대와 가톨릭농민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농사일을 보아야 하는 오후 시간에 많은 시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광주와 인접한 나주는 역사적으로 정치의식이 매우 높은 곳이다. 시민사회의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저녁 무렵 나주사랑시민회가 주최한 토론회는 뒷풀이 시간을 거쳐 다시 숙소로 계속 이어졌다. 오후 7시에 시작된 이야기가 새벽 3시 경에 끝났으니 상당히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이틀에 걸쳐 목포·함평·나주에서 나눈 이야기의 골자는 대략 다음과 같다.

진보개혁진영의 단일국민후보는?

6월민주항쟁 이후 20년간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이후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했으며, 올해 대통령선거는 우리 사회의 미래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선거결과에 따라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민주주의로 발전하느냐 역사적 퇴보를 경험하느냐, 균형사회로 발전하느냐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느냐,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느냐 갈등과 전쟁의 상황을 계속하느냐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우리 사회가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역사적 전환의 핵심은 수구보수세력의 집권 가능성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은 수구보수세력, 양극화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고 진보개혁세력의 대선승리를 목표로 발족했다.

이를 위해 미래구상은 '진보개혁진영의 단일국민후보 선출'을 대선전략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그 방법론으로 선거연합과 연립정부를 제창했다. 진보진영과 개혁진영의 연합을 바탕으로 단일국민후보를 선출하여 수구보수세력과 맞서자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 복잡하고 심각하다. 단일국민후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의 정립이 필요한데,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과 달리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개혁진영은 지리멸렬의 상태에 빠져 낮은 지지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말하자면 단일국민후보의 전제조건인 개혁진영의 정립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지리멸렬 상태에 빠진 개혁진영을 재편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시민사회가 중심이 된 개혁진영 재편

어떻게 개혁진영을 재편할 것인가? 결국 이 문제가 현 대선국면의 핵심 정세이자 대선승리의 관건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난국을 풀기 위하여 '정당통합론' '후보연합론' '원탁회의' '후보단일화론' 등 여러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기존 정당과 후보를 중심으로 한 논의들은 실현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수구보수세력에 맞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길은 외통수이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개혁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대안은 정치권 바깥의 다양한 시민사회가 새로운 정치의 중심을 형성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원칙과 기준에 따라 개혁정치권을 재편하는 방향으로 정치의 틀을 다시 짜는 것뿐이다.

이 새로운 틀 안에서 개혁정치권의 예비후보와 문국현 등 정치권 바깥의 주목받는 인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 즉 국민경선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혁진영의 후보가 선출된 후 선거 막바지에 수구보수세력과의 대결이 정점에 이르면 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의 선거연합에 관한 논의가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략에 불과한 것인 만큼 이 전략이 실행될 수 있느냐, 전략에서 설정한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현 상황에서 속단하기 어렵다.

물론, 분명한 사실은 이 방법을 제외하고는 진보개혁진영의 역량을 집결하기 어렵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어려운 만큼, 다른 방식으로는 올해 대선에서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침 '창조한국 미래구상'이 '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운동'과 5월 15일 조직통합을 한 데다 5월 17일에는 시민사회의 각계각층 인사들이 뜻을 모아 시국선언을 했다. 통합된 미래구상은 창립대회에서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국선언은 새로운 정치를 지향하는 것과 거리가 있지만 시민사회의 성찰과 더불어 대선에서의 역할을 확인했다. 우리 순례단은 전국 각 지역을 방문하여 이러한 흐름을 공유하고 전략을 협의하면서 국민들의 참여를 호소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순례단에는 '서민의 힘' 소속 전철협 회원들이 동행하고 있다. 전철협은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의 약칭으로 억울하지만 하소연할 곳 없는 철거민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다. 철거민과 민속 5일장을 포함한 여러 서민단체들이 '서민의 힘' 유권자운동본부를 결성하여 대선에 참여하고 있으며, 미래구상의 대선전략을 지지하기로 결의한 후 방송차를 몰고 미래구상의 전국순례를 함께 하고 있다.

철거민들이 대선판에 뛰어든 이유

21세기 미래한국의 새 정치를 구현하자는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의 전국순례가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첫날 목포 바닷가 부근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 토론회를 시작하는 것을 기점으로 일주일째 강행군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순례단에는 정치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붉은 조끼를 유니폼으로 입고 열심히 유인물을 돌리며 방송차를 몰고 가두방송을 하는 ‘서민의 힘’ 소속 전철협 회원들이다. ‘서민의 힘’은 전철협과 민속5일장을 포함 12개 단체로 구성된 전국조직이며, 전철협은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의 약칭이다. 언제 강제 철거될 지도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오직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가 왜 대선판에 뛰어들었나? 그 이유를 말하려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우리 철거민들이 설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생존을 위한 우리의 몸부림과 아우성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관에서는 우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시행처 용역깡패를 동원한 공갈, 협박, 강제철거로 우리의 생존권은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정치권에 호소해도 모두가 남의 일 취급한다.

개발이 무엇인가? 개발지역을 번영시킬 뿐만 아니라 그 지역주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개발업자만 배불리고, 단지 협의가 안되었다는 이유로 그 지역에 터 잡고 사는 주민들을 강제철거하고 길거리로 내쫓아 철거민으로 만드는 것이 개발이란 말인가? 개발이 되면 개발지역의 주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현행 개발법 및 개발정책은 개발지역 주민들의 삶을 철처히 외면하면서 그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강제철거 규정은 더욱 문제가 많고 심각하다. 그래서 우리는 철거민 스스로를 잘못된 법과 제도에 의해 희생된 장애우라 부른다. 우리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이주대책과 생계대책을 세워주고 현실적인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이러한 우리들의 요구가 무리한 것인가?

정부와 정치권과 언론이 약속이나 한듯 우리들의 처지와 요구를 외면하고 있을 때 새로운 정치, 새로운 미래사회를 위해 나섰다고 하는 미래구상이 이와같은 서민들의 애환과 외침을 정책에 반영하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렵지만 우리 철거민들이 미래구상의 전국순례에 동참하게 되었다.

우리 철거민들에게도 삶이 있고 가정이 있다. 우리도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비록 미력하지만, 우리의 작은 힘과 노력이 일백만 철거민, 오백만 서민이 소외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발 더 이상 강제철거가 없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쓴 배정택 씨는 '서민의 힘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 고양시 덕이동 이주대책위원회' 감사입니다. / 배정택

덧붙이는 글 | 전국순례 방문지역 5월 26일 울산(현대자동차 방문 등) 5월 27일 포항(포항공대 교수 간담회 등) 5월 28일 안동(대선토론회 등) 5월 29일 대구(경북대 교수-영남개혁21 간담회 등) 5월 30일 대전(대학교수 간담회-충남대, 목원대 등) 5월 31일 천안(시민사회단체 간담회 등) 6월 01일 서산 홍성(시민사회단체 간담회 등) 6월 02일 전주(문국현 사장 강연 등) 6월 03일 익산 김제(시민사회단체 간담회 등) 6월 04일 청주(충북대/서원대 교수 간담회 등) 6월 05일 원주(토지문학관 박경리 선생 방문 등) 6월 06일 충주(건국대 교수 간담회 등) 6월 07일 춘천(정동영 강연(추진중) 등) 6월 08일 강릉(강릉대/관동대 교수 간담회 등)6월 09일 속초(전국순례 평가회 등) 6월 10일(귀경 및 순례단 일정 종료) 6월 13일(평택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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