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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유미 기자

장애와 비장애 사이

오늘 멀쩡한 사람도 내일 장애인이 된다. 현대 사회의 복잡한 삶은 우리의 인생을 예측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자신은 늘 안전할 거라 굳게 믿는다. 물론 안전해야 한다. 하지만 길고 긴 인생을 살면서 천재지변이 나를 피해갈 거라는 생각은 바보스러운 생각이 아닐까.

툭하면 터지는 재해사고는 물론, 지진과 해일 등 교통사고와 비행기 사고 등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미국 무역센터의 어의없는 붕괴와 서서히 북극이 녹아내리는 기후의 이변과 영화 <괴물>처럼 바다에는 바다의 흡혈귀가 나타나고 있다.

세기말의 징후와 천재지변에 대해 불안함과 공포를 가져도,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재지변이나 재해를 당해 장애인이 된 이들에 대해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다. 왜 일까. 내가 만약 재해를 당해 장애인이 되었다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한다면, 장애인을 대하는 이해의 태도는 약간이나마 달라지지 않을까.

동정 없는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선물

김복주 할아버지 역시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이 아니었다. 건설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장애인이 되었다. 하반수 마비와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눈을 잃게 되었다. 이런 자신의 앞가림도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 20년간 남모르게 장애인 돕기를 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숙연해 질 것이다. 더구나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남을 조용히 돕고 살던 사실이 점점 입소문으로 알려져, 초입의 더위에 시원한 인정미담을 뿌리고 있다.

김복주 할아버지는 그동안 수십차례,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지체장애인 시설 신애재활원 등을 방문, 이불 등과 과일을 비롯해, 휠체어을 전달했다.

워낙 가격이 비싸 휠체어는 중고를 구입해서 선물하였다는 김복주 할아버지는 지난 80년 건설 공사장의 미장일을 하던 중, 2층에서 떨어져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과 시력을 하나 잃게 되었다. 이로 인해 1급 장애인이 되었으나, 김복주 할아버지는 이를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면서 돈을 모아 틈틈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애인 돕고 있다.

외눈박이의 사랑을 목도장으로 새기며

김복주 할아버지의 목도장가게는 부산 해운대구청 담벼락의 노천가게나 다름없다. 1평도 안되는 작은 샷시문으로 짠 목도장가게에서 인장업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본인 역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그러나 제 2의 인생을 장애인들과 함께 한다는 신념으로 이같은 선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1남 3녀를 둔 할아버지는 한때 비관, 자살을 여러차례 시도한 바도 있다. 하지만 죽을 용기로 한번 아름답게 살아보자고, 결심하고 도장 일을 배우길 결심했으나, 당시 휠체어 한 대 살 돈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1년여동안 가족에게 업혀서 행정관서를 찾아다닌 결과 87년 구입비를 보조 받아 휠체어를 샀다.

그때 휠체어가 없어 고생했던 기억때문에 휠체어 없는 장애인들에게, 중고나마 선물했다. "당시, 식구들과 먹고 사는데 절실히 필요했던 휠체어를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애가 타는 듯 합니다"라고, 할아버지는 목메이게 지난 날을 회억키도 한다.

남을 돕는 일, 나를 돕는 일

김복주 할아버지는 돈을 벌어 가난으로 고통받는 장애인을 도와야겠다고. 열심히 인장일을 배운 할아버지는 무수히 길거리의 경찰에게 내쫓기면서도, 도장일을 계속해 돈을 모았다. 하루 만원 벌면 6천원을 저축했다. 그리고 그 돈을 선행에 아낌없이 썼다. 할아버지는 "사회의 냉대를 받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자활의지를 키울 수 있는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번듯한 자신의 가게 하나 없고, 전깃불 공급이 열악한 사정에서 일을 하고 있다. 말로는 장애인을 돕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할아버지는 구청 담벼락에 세들어 살아도, 법에 어긋난다고 구청에서는 그 흔한 전깃불 하나 빌려 주지 않는 몰인정 속에서 외로운 선행을 남몰래 베풀고 있다.

"눈이 외눈인데다, 전기기계도 없이 손수 도장 파는 일이 점점 힘들어요. 소원은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인장을 파는 전기기계 하나 마련하고 싶고, 낙도 어린이들에게 내 손으로 판 목도장들을 선물하고 싶어요."

할아버지 작은 몸 어디에서 이렇게 샘처럼 맑은 아름다운 마음이 솟구치는 것일까. 최근에는 아프리카 난민 어린이 돕는 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해서 매달 성금을 내고 있다.

몸이 건장한 사람도 남을 위해 선뜻 동정을 베풀지 못하는 사회이다. 길거리며 지하철, 버스 안에 나타나는 걸인을 외면하는 우리에게 할아버지의 선행은 우리의 동정 없는 세상에 대한 죽비를 내려치는 소리와 같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선행의 길은 그리 쉽지 않은 길이다. 구청 담벼락에 사정사정으로 더부살이 하고 있지만, 추운 겨울에는 난로 없이 일을 하고 있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할아버지의 선행은 그래서 더 가슴이 서늘해 온다.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나를 돕는 일이라는, 할아버지 앞에서,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봉사#선행#김복주#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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