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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머니는 눈길을 피했다. 이틀만에 일어나신 어머니가 반가워서 빨래 장갑을 낀 채 밀 창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됐다. 니 할 일 해라."
어머니는 다시 누우시더니 몸을 돌려 나를 등졌다. 이불을 여며드리고 오후에는 밭에 나가 일을 했는데 그날 밤 놀라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어머니 기분이 회복되는 것으로 믿었다. 이 밤을 고비로 어머니는 홍역을 치르고 난 아이처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저녁 때 밭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저 왔어요. 어머니. 밭에 골 다 탔어요. 거름도 넣고요."
대답이 없어서 잠드셨나 하고 부엌으로 가서 불부터 모았다. 쌀도 씻고 멸치랑 미역을 넣고 청국장 끓일 육수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다가 섬뜩한 느낌이 나서 후닥닥 방으로 들어갔다. 허공을 거머쥐고 휘젓는 어머니 손을 가만히 잡아드렸다. 눈을 치켜뜨셨는데 한 쪽 눈만 뜨이고 한 쪽 눈은 감긴 채였다.
"어머니."
가만히 불렀다.
"어머니 좀 어떠세요?"
나는 손을 매만지면서 다시 어머니를 불렀다. 나를 확인한 어머니는 한쪽 눈마저 감으셨다. 가슴에 귀를 대 봤다. 가는 숨소리가 금세 꺼질 것 같았다. 식구들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가 다시 어머니를 불렀다.
"자꾸 와 부르노."
겨우 입술을 달싹이며 들릴락 말락 어머니가 말을 했다.
"부른닥꼬 갈 사람이 안 가나. 아무래도 내가 오늘 가야 될랑가 보다."
나는 마음을 가지런히 했다. 자세도 곧추세우고 잠시 무아명상에 들었다. 그리고 양 손을 비벼 잘 털고는 어머니 장심에 내 장심을 맞닿게 하고 다른 손으로 어머니 손 등을 감싸 쥐었다.
머릿속에 어머니 몸 윤곽을 그렸다. 효소 담고 건져 낸 매실껍질 같은 어머니 쪼그라진 몸이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천천히 장심을 통해 내 몸뚱이 전체를 어머니 몸 속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내 원기가 어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쪼그라진 몸 주름들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희식아."
"네. 어머니."
"새들마을 우리집에 가믄 아래채 더금우에 널 있다. 내가 쓸락꼬 뒀다. 둘둘 말아 지고 가짐택꼴 밭가에 가서 묻어라."
"어머니…."
"싹 불살라 삐라. 연기 돼서 하늘로 올라가고 재가 남으믄 묻어라."
어머니는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흔들고 다시 기를 넣기 시작했다. 아주 좋은 느낌이 왔다. 어머니의 유언은 계속되었지만 밝고 훤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인자. 너는 너대로 살거라. 내가 니 애만 멕이다가 가는구나."
나는 어머니 얘기를 남김없이 다 들어줘야겠다 싶어 예 예 하며 추임새를 계속 넣었다.
"새날이 새들이 잘 키워라. 그놈들이 나중에 훨훨 날아 다닐끼다. 애들 엄마도 잘 돌봐라. 그만한 여자 없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부스스 일어나셨다.(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