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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주 시인 복원생가
ⓒ 김성철
27일 오전 11시부터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고 김남주 시인의 유족, 문학인, 민주화운동 동지들을 비롯하여 채일병 의원, 정화균 부군수, 박혜강 전남작가회의 회장, 송기숙 교수, 김준태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남주 시인 생가 준공식과 흉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 김남주 시인 생가 준공식 기념식장
ⓒ 김성철
이날 김규성 시인(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은 '이제 겨우 땅 끝에 움막 한 채 지었습니다'란 축시를 낭독했다.

이 땅에 태어난 의미와 역사의 절반을 혼자서 해내신 님이여.
살아 계실 대는 의자 하나 만들어 드리지 못하고
이제야 겨우 땅 끝에 움막 한 채 지었습니다.
아무쪼록 편히 쉬십시오.
그러나 당신은 아직도
차마 그 걱정과 피곤의 행장을 부리지 못하십니다.
당신이 남겨놓으신 절반을
우리가 완성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여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듯
이 움막도 님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습적 형벌인 가난이 싫은 그만큼이나
죄도 없이 가난한 부모형제들을 사랑하던 당신이,
버젓이 그 가난을 낳아 사생아처럼 내버리는
한 무리의 민족 아닌 부족들을 향해 토하시던 분노를
우리는 끈끈한 어깨동무로 다독여야하겠습니다.
오! 그리하여, 무명의 우리를
비로소 민중이란 이름으로 불러주신 당신께
그 본명인 민주조국의 이름값을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까지는 님이여,
부디 실망하지 말고 우리를 지켜봐 주소서!


▲ 김남주 시인 흉상
ⓒ 김성철
김남주 생가 복원 및 시비공원은 '민족시인 김남주기념사업회'에서 지난 2006년 8월에 착공하여 지난 4월에 준공했다.

시비공원에는 조각가 김기범씨가 제작한 흉상과 함께 시인의 대표작인 '조국은 하나다' '노래' 등을 새긴 조형물들과 더불어 80년대 독방감옥을 재현한 창작 체험실을 조성했다.

▲ 김남주 시인 '노래'시비
ⓒ 김성철
노래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에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김남주 시인 흉상 제막식 기념사진
ⓒ 김성철
김남주 시인은 한국민족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사회변혁운동의 이념과 정신을 온몸으로 밀고 나간 '전사(戰士)시인'이며, 혁명적 목소리로 한국문단을 일깨운 '민족시인'이다. 또한 청춘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등 반독재투쟁에 앞장선 '혁명시인'이었다.

1945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삼화초등학교, 해남중을 거쳐 광주일고에 입학하였으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대, 자퇴하였고 이후 검정고시로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3선개헌 반대투쟁'에 참여하는 등 반독재 학생운동에 투신한 그는 1972년 이듬해에 전국 최초의 반유신투쟁 지하신문 '함성'과 '고발'을 제작·배포하여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1974년 '창작과비평'에 시 '진혼과' 등으로 문단에 나온 이후 작가 황석영 등과 함께 '민중문화연구소' 등을 결성하고 1977년 해남에서 한국기독교농민회의 모체가 된 해남농민회를 결성했다.

▲ 김남주 시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시비
ⓒ 김성철
1978년 가장 강력한 반유신투쟁 지하조직 '남민전'의 '전사'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10월 동지들과 함께 체포·구속되었으며,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광주교도소 등지에서 복역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도합 10년 세월을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그가 남긴 170여편의 시 가운데 300여편이 옥중에서 쓴 시로, 그의 옥중시는 80년대 한국시의 한 절정을 이루었다.

▲ 김남주 시인의 독방 감옥을 재현한 창작체험실
ⓒ 김성철
1988년 1월 가석방되어 출소한 그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민예총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단재상, 윤상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작고 이후에 민족예술상이 수여되었다.

옥중투쟁에서 얻은 지병(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1994년 2월 13일 새벽 2시 30분 불과 마흔아홉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했다. 유족으로 부인 박광숙 여사와 아들 토일군이 있다.

▲ 광주 중외공원에 있는 김남주 시인의 묘비
ⓒ 김성철
2000년 5월 20일 광주 중외공원에 민족시인 김남주 시비가 건립되었고 묘비에는 "온 몸을 불태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시인의 영혼, 여기에 잠들다."

▲ 김남주 시인 '사랑은' '자유'시비
ⓒ 김성철
시집으로는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 '사상의 거처' '이 좋은 세상에'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사랑의 무기' 등이 있고, 옥중 서한집으로는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 등이 있다.

태그:#김남주, #송기숙, #김준태, #채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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