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방연에 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마왕>(KBS 2TV 수목드라마)이 좋았고 작가님을 보고 싶었고 종영의 여운을 느끼고 싶었지만, 집을 비우는 데 대한 부담감이, 평범한 아줌마인 내게는 너무 컸다. 경험상 망설임이 있을 때는 시도하는 게 후회가 적었고, 딱 한 시간만 보고 오면 저녁 준비에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내 출발했다.
도착 후 행사장까지 올라가면서도 계속 갈등했다. 젊은 사람들만 올 텐데, 서있기조차 불편하지 않을까? 주책없는 아줌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에 내딛는 한 걸음이 힘겨웠다. 그래도 왔는데 들어는 가야될 것 같아 용감하게 식장에 갔다.
도착한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내 두려움과는 달리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일단 사람이 많았고, 대부분이 여자였는데 나이대는 다양했다. 20대가 다수였지만,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고 대부분 동행이 있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마음 편히 들어가 좌석에 자리잡고 시간이 흘러감과 동시에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처음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진다 싶었는데 무대에서 누군가 배우 중 한 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정도 시간이 더 지나 그냥 행사가 시작됐고, 입장한 마왕 스태프와 연기자를 대표해 PD님이 인사말을 하는데 키가 크고 마른 남자 한 명이 무대 위로 바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그런 줄 알았는데, 말을 시작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주지훈이었고 몸이 아파 인사만 하고 떠난다고 했다. 마음 속에서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아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거나 팬들을 가볍게 보고 있구나 그런 생각에서가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종방연에 참석하기를 고민하던 순간부터 이상하게 난 주지훈이 종방연에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관적인 느낌이었는데 비슷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주지훈씨 팬들이 서운해 하지 않을까,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분위기는 여전히 좋았다. 나왔던 한 명 한 명의 배우들에게 똑같이 열렬한 환영의 박수를 보냈고 고생한 스태프의 영상에서는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박수를 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 편의 작품에는 수많은 보통 사람의 땀과 노력이 필요한데 나는 잊고 있었다. 배우, 작가와 PD가 드라마를 이루는 세 축이라고 생각하며, 이분들 외에 드라마 한편이 만들어지기 위해 음지에서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보통 사람인 나도 행복해졌다.
좋은 작품을 만들며 행복했다는 PD와 작가님의 말을 들으며 인생이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는 나이와 함께 돈과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도 커져왔다. 정신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했던 젊은 날의 나를 비웃으며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했고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사람들을 볼때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하는 의심의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불현듯 눈에 보이는 성공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작가와 PD님과의 대화시간은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좋은 대화가 오고 갔다. 오수가 오이디푸스를 나타낸다는 것은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진실을 찾아가는 사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고 해인이가 가진 초능력은 일종의 핸디캡이었으며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는 얘기들이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은 많았지만 손들고 질문할 만한 용기가 없어 듣기만 했는데, 시간이 짧았던 것은 아쉽다. 상대적으로 길었던 마왕 퀴즈쇼 시간을 좀 줄이고 시청자와 배우, 작가, 스태프들과의 대화시간을 더 길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번에는 나도 한 번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정도로, 상연된 모든 UCC들은 번뜩이는 감성과 마왕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담고 있었다.
아, 그리고 배우들. 끝까지 즐겁게 팬들과 혼연일체로 참여해준 여러 배우들에게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엄태웅씨. 출중한 연기력에 몸에 밴 겸손한 태도, 위트 넘치고 지적인 대답…. 한 20년쯤 후 지금의 안성기씨 같은 대배우가 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예감이 들었다. 존경할만한 배우 그야말로 우리 시대 바람직한 스타의 표본을 보고 왔다는 뿌듯함에 무심코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덧붙이는 글 | <마왕> 종방연은 27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신관 오디토리움에서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