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들에게 수랏간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켰던 국민드라마 <대장금>이 뮤지컬로 다시 돌아왔다. 2003년 9월부터 무려 6개월 동안 대장금 신드롬을 만들어가며 한류열풍으로까지 이어졌던 대장금이 뮤지컬에서는 어떤 느낌으로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대목은 54부작의 대하드라마를 단 2시간 20분에 압축시킬 수 있느냐일 것이다. 제작자인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도 기획단계에서부터 이 부분이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여느 뮤지컬과 달리 별도의 프리뷰 공연 없이 곧바로 본 공연에 들어간 뮤지컬 <대장금>을 보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드라마의 내용 중 굵직한 줄거리를 대부분 소화해 내느라 막이 올라가면서부터 스토리는 눈깜짝할 새 없이 빠르게 진행된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극의 전개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드라마를 봤던 관객들은 예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감상할 수 있겠지만, 혹여 그렇지않은 사람들은 스토리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뮤지컬 <대장금>에는 걸출한 뮤지컬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명성황후>의 히로인 이태원이 최상궁 역을 맡아 특유의 카리스마로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 한상궁은 탄탄한 연기력과 빼어난 가창력으로 마니아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양꽃님이 맡아 열연을 펼친다. 두 배우는 극 중 곡 '명희를 생각하게 해'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보여주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종사관 민정호는 드라마 <주몽>에서 영포왕자로 인기를 끈 원기준과 <지킬앤하이드>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김우형이, 장금 역에는 뮤지컬계의 흥행 보증수표라 할 배우 김소현과 신예 안유진, 최보영이 트리플 캐스팅돼 각자의 매력을 뽐낼 예정이다.
이 중 장금 역을 맡은 김소현의 변신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보여줬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정통 성악 발성으로 대장금의 흐름을 부드럽게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소현의 가창력과 풍부한 성량은 흡사 미래의 이태원을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금영의 마음을 애타게 하면서 한편 중종과의 신의와 장금이를 연모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민정호 역을 무난하게 소화해 낸 원기준은, 자신의 연기력과 노래실력을 기본으로 드라마 <주몽>을 통해 쌓은 사극 이미지로 어드밴티지를 충분히 얻은 느낌을 준다.
뮤지컬 <대장금>에는 제작진 또한 최고의 꾼들이 모여 세계적인 뮤지컬을 탄생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한다. 연출 한진섭, 극작 오은희, 작곡 조성우, 음악감독 원미솔, 안무 강옥순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사람들 뿐이다. 이들 중 공연을 보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람은 무대디자인을 맡은 서숙진과 의상디자이너 이혜란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극의 전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장치는 하나하나가 다 예술작품이라 할 정도로 빼어나게 아름답다. 특히 제주바다를 배경으로 노을이 지는 장면과 보문사에서 벚꽃나무 아래 장금과 스님이 정담을 나누는 장면은 가히 객석의 탄성을 자아낼 만하다. 전통사극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를 넘어서 공간에 대한 예술적 승화과정을 중요시했다는 무대디자이너 서숙진은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무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우리 고유의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을 잘 살려낸 의상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드라마 <허준>과 <주몽> 등을 통해 사극의상에 정통한 디자이너 이혜란은 "색감과 문양 등에서 한국적인 것을 최대한 반영하되, 상징성과 간결함에서 모티브를 찾았다"고 의상디자이너의 변에서 밝히고 있다.
뮤지컬 <대장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창작뮤지컬이라 할 <명성황후>의 그것과 일견 흡사해 보인다. 장중한 분위기와 무게감이 그렇고 무술장면의 등장으로 긴장감을 더해가는 것 또한 그렇다. 반면 그렇기에 드라마에서 보여준 재미와 감흥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세계 공연시장에 내놓을 야심찬 계획을 품고 있는 PMC프로덕션이 고민해야 할 부분을 찾을 수 있겠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접시춤 등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은 높이 평가받을 수 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려다 섬세한 감동을 자칫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감동과 재미가 공존해야만 흥행에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뮤지컬 <대장금>이 부족한 점을 하나씩 보완해 나가며 더욱 박차를 가해 한국 뮤지컬계의 부흥기를 이끌어 나갈 킬러 콘텐츠가 될 날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뮤지컬 <대장금>은 6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후 지방공연을 마치고 다시 8월 25일부터 9월 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어집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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