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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 특별히 뭔가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그냥 막연히 공부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고,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대학 원서 쓰기 직전까지 그랬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데 있어 어떤 심리적 저항도 느끼지 않을 만큼 선택의 기준은 오로지 절대 떨어지지 않을 안정권의 합격선과 취업 보장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난 나 자신을 모른다. 내가 어디에 소질과 적성이 있는지 아니 소질과 적성이 있기는 한 것인지 자신할 수 없을 뿐더러 무슨 일을 하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 적어냈던 수많은 희망 직업은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직업과 내 성적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비웃지 않을 수준의 타협이었을 뿐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만은 기억속에 뚜렷이 존재한다.
당시 우리 학교는 서울시에서 일반계 고등학교로서는 최초 시도된 남녀 합반에 남녀 짝이었다. 지금이야 흔한 풍경이지만 여중에서 3년을 보낸 후 사춘기에 접어 든 뚱뚱하고 소심한 여학생이었던 내겐 매일 매일이 부끄럽고 어색한 날들이었다.
어느 시간인가 선생님이 희망직업에 손을 들라고 하는데 우리반 제일의 꽃미남에 자상한 성격의 착한 짝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곳에서 손을 들 기회를 놓쳤고, 생각도 못했던 기자에 손을 들었다. 그 때 짝이 한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야, 기자 멋있는데! 어울린다."
그 말 덕분에 이과를 택한 고3 때에도 가끔씩 신문방송학과를 생각했다. 대학에서 고 3때처럼 공부해야 한다는 주변의 얘기에 바로 포기하고 안정적인 길을 선택했고 별 탈없이 나이 40을 바라보게 되기는 했지만 가끔 아쉬움이 느껴진다.
내가 누군지 뭘 원하는지 생각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학창시절에 대한 안타까움, 지금도 나를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씩 나를 사로잡는다. 어쩌면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진행중인 현실일지도 모른다.
진로교육은 부재하고, 이루어진다 해도 대학 학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실과 부딪치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대학의 이름만이 중요하고, 그 이름은 평생동안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해 나이 들어 시도되는 새로운 길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주어진다.
주어진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 그 과정 중 생겨나는 애정과 지식이 중요하다 믿어왔고,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더 이상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싶지 않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돈과 성공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 자신을 알고 싶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표어가 내 눈에 새롭게 들어온 것도, 학창시절 격려의 말을 했던 친구가 생각나는 것도 이 즈음이다. 나이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방법을 몰라 포기하기보다 마음이 가는 것부터 시도해 보려한다. 더 늦기 전에 나를 알고 싶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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