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에 시혜를 베푸는 건가. 언론관에 문제 있다." - 이영식 전국언론노조 사무처장
"기자들이 비양심적 집단이라고 매도당하는 등 감정적 발언까지 들어야 하나." - 정일용 한국기자협회 회장
"초등학생처럼 받아쓰기만 하라고 강요해온 게 현행 '개방형 브리핑제도'다." -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실장
정부가 8월 시행을 목표로 추진중인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둘러싸고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29일 '기사 송고실 폐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혀 언론-정부간 대립이 극한을 향해 달리고 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개방형 브리핑제도에 찬성해온 시민단체들까지도 노 대통령의 '대언론 협박성 발언'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사전에 아무런 논의 없이 '기자실 통폐합 안'을 발표하고, 나중에 논란이 일자 토론하자고 나선 것은 문제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언론개혁시민연대·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 주최한 토론에서다.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언론단체, 현직 기자들은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과 노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양문석 "기본방향에는 동의, 방법론에는 반대"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실장은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기본 방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방법론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양 실장은 이날 토론에서 "참여정부가 추진한 개방형 브리핑 제도 실시 이후 제기돼 왔던 브리핑 내실화에 대한 개선책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겨우 내놓은 안이 ▲전자브리핑 시스템 활용 ▲Q&A 중심의 브리핑 활성화 ▲브리핑서비스 여론수렴 및 개선 ▲우수브리핑사례 정책홍보 평가반영이냐"고 꼬집었다.
이어서 "이번 방안이 추진되면 인터넷언론 기자들은 정부부처와 근거리 공간 확보의 어려움에서부터 정보접근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며 "학연·지연·혈연 등의 구태의연한 취재원 접근방식이 활개를 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국정홍보처 측은 이번 정부안이 '정보 개방 확대'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안영배 국정홍보처 차장은 "그간 정부 브리핑이 부실하게 진행돼왔다는 지적이 있지만 일부는 수준급이었다"며 "브리핑 문화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측면은 있다"고 일부 문제점을 시인했다. 또한 브리핑 내실화를 위한 취재지원지침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안 차장은 이어 "개방형 브리핑제도 이후 애초 목표였던 '정보공개 확대'가 실제 이뤄진 게 없다는 지적은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한다"면서 "참여정부 들어 정보공개 결정처분도 기존 15일에서 10일로 줄이는 등 여러 노력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공개에 소극적인 정부... 취재활동 위축될 것"
이날 첫 번째 토론자로 참석한 이영식 언론노조 사무처장은 "대통령이 마치 언론에 시혜를 베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이 같은 대통령의 언론관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30일) 아침 조간에 보도된 대로 노 대통령은 토론에 직접 나서라"며 "언론노조는 노 대통령과의 토론에 나설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정일용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협회 안에 '정보접근권 쟁취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히고, ▲정보공개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 개최 ▲질의·응답식 브리핑제도 도입 ▲공무원의 기자 면대면 접촉상황 보고 금지 ▲기자의 사무실 무단출입 금지 반대 등을 제기했다. 이 같은 내용이 충족돼야 정부의 제도개선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스탠더드가 합당한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환균 한국프로듀서연합회장은 "출입처 관행을 폐지하고 탐사보도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대중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매일 일어나는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정부가 정보공개에 소극적인 상황에서는 언론인들의 취재활동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피력했다.
신태섭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이번 조치는 공공정보를 확대 공개한다는 게 아니라 역으로 축소 공개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참여정부 들어 발생한 공익정보들이 대부분 비공개됨으로써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축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내놓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일단 유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브리핑제도의 내실화 ▲정보공개 등 취재지원의 능동적 태도 허용 ▲취재지원 매뉴얼화 ▲내부 고발자 보호제도 확대 실시 등 제도개혁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입기자단 운영의 폐해를 둘러싼 '기자'간 논쟁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주요 정부부처 출입기자단 운영의 폐단에 대해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정일용 회장은 "2003년 개방형 브리핑제도 실시 이후 기자단과 기자실이 없어졌는데도 정부는 계속 기자실과 기자단의 폐해를 주장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실례도 들지 못하면서 이같이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 부처 출입기자단의 폐쇄적 운영을 언론 전체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장윤선 <오마이뉴스> 기자는 현장상황을 전달하면서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 기자는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경찰청 기자실에 찾아갔을 때 경찰로부터 '등록된 17개 언론사 외에는 출입금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사례를 들었다.
또한 그는 "출입기자가 아니면 관료사회의 취재 자체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면서 "출입기자제도는 기자와 공무원간의 공생관계에서 비롯된 잘못된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브리핑은 취재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면서 "기자들의 정보접근권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취재지원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 방안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번 정부의 방안대로 추진된다면 인터넷 등 작은 매체 기자들의 취재활동은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