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6월 어느날 베를린 독일 오페라 건물 근처에서 한발의 총성이 울린다. 서독을 국빈 방문한 이란 국왕과 서독 정치인들은 오페라 <마술 피리>를 관람하고, 학생들은 이란에서의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경찰의 총구를 떠난 그 총알은 결국 한 대학생의 목숨을 앗아간다.
독일주간지 <디 차이트>가 '서독을 바꿔 놓은 날'이라고 한 6월 2일 저녁이었다. 한 청년의 죽음이 서독을 어떻게 바꾼 것일까.
당시 베를린에서 꿈틀대던 학생 항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서독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간다. 총기를 동반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위학생이 숨지자 학생들의 분노는 폭발한다. 방관하던 다수 학생들의 급속한 연대가 형성되고 많은 지식인의 지원을 등에 업는다. 밖으로는 미국의 베트남전에 화살이 겨누어지고, 안으로 권위적인 대학과 사회구조가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이른바 '68운동'이 분출했고, 1967년의 '6월 2일 사건'은 그 운동을 점화한 '진정한 불꽃'이었다. 그런 점에서 <디 차이트>는 "진짜로는 1967년이 68세대의 해"라고 썼다.
물론 독일에서 68운동을 둘러싼 해석과 논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한쪽에게 68운동이 서독의 '두 번째 건국'이자 '참된 민주화의 출발점'이라면, 다른 한쪽에겐 대안도 없이 기존의 사회가치를 무너뜨리고 적군파 테러로의 길을 연 것이었다.
하지만 '반권위주의 운동'으로 자처한 68운동을 잉태한 당시 사회가 일상에서까지 매우 권위적이었다는 데 이견을 달기는 어렵다. 교사가 교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은 일어섰고, 교수가 강의하러 가면 조교가 가방을 들고 뒤따랐으며, 극장에서 연극이라도 볼라치면 넥타이를 매는 것이 관례였다.
68운동은 바로 이런 권위적인 관례들을 깨기를 '상상한' 것이다. 그래서다. 이웃나라 프랑스의 68운동 때 파리 오데옹 극장 담벼락에 유명한 슬로건이 새겨진 것은.
"상상력에게 권력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산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